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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5:25~33 교만과 겸손 2017. 9. 13

 

25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26 악한 꾀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27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되느니라 28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29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30 눈이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31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에 있느니라 32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오늘은 교만과 겸손함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이 언제부터 교만하여 졌습니까? 선악과의 유혹을 받은 결과 그 유혹에 넘어감으로부터 교만하여 졌습니다. 그 유혹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이것을 타락이라고 합니다. 이 타락이후로 모든 인간은 다 교만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주변에 겸손한 사람도 많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겸손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겸손함이라는 것도 그 사람이 가치를 높이는 다른 모습니다. 물론 본인은 그런 의도가 없다고 할지라도 그런 겸손함이 그 사람의 가치가 되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겸손한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본문 25절입니다.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를 지계를 정하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교만한 자와 과부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허무시지만 과부의 지계는 정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구약을 배경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여호와의 전쟁의 결과로 받았습니다. 각 지파별 가문별로 공평하게 땅을 나누어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사고팔고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지계 표를 옮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땅의 경계를 옮긴다는 것은 남의 땅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7:17절입니다.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이웃의 경계표(境界標)를 옮기면 저주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전토에 전토를 더하고 가옥에 가옥을 더하였습니다(5:8).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자들의 집은 허물어 버리시고 과부의 경계표는 정하여주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자기 힘으로 살기 위하여 힘을 비축하며 살아가는 교만한 자는 허물어 버리시고 약한 자를 붙들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2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악한 꾀를 내는 자를 미워하시고 선한 말은 정결하다고 합니다. 전도서 7:29절입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많은 꾀들을 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한 자의 모습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다 많은 꾀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꾀를 내지 않고 말을 하는 사람은 꾀를 내는 사람들에게 당하기 마련입니다.

 

27절입니다.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보면 교만한 자는 악한 꾀를 내는 자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익을 탐하기 위하여 그렇게 합니다. 이러한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됩니다. 교만한 자가 악한 꾀를 내는 그 근원에는 탐심이 들어있습니다. 이러한 탐심이 유혹의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탐심이 우상숭배입니다(3:5). 그러면 우리는 교만한 사람입니까? 겸손한 사람입니까? 대답을 빨리 하지 마세요!

 

본문 28절을 봅니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는다고 합니다. 내가 교만한 사람인지 겸손한 사람인지 급하게 대답하지 말고 깊이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뭘 그리 교만 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깊이 생각하여 보면 내가 교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과정에 나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월요일 노회 목사님 부친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다 갈 수는 없기에 친분이 좀 있는 사람은 갑니다. 부조를 얼마 하느냐는 고민도 합니다. 결국 나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교만하고 나의 이익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29절입니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악인입니까? 의인입니까? 나의 이익을 탐하는 사람이기에 악인입니다. 그러면 나의 기도도 나의 이익을 바라고 있기에 악인의 기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제물을 바치고 많이 기도할지라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는 이유는 그렇게 제사를 드리면서 악을 행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를 멀리하십니다.

 

이사야 1:11~15절입니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주님이 싫어하는 모습입니다.

 

본문 30절입니다. 눈이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눈이 밝다는 것은 시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이 밝다는 것은 마음의 눈을 말합니다. 마음의 눈이 밝으면 무엇이 교만하고 악하며 이익을 탐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책망을 받아들입니다. 눈이 어두운 자는 그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망을 받는 자는 마음이 기쁘고 뼈가 윤택하게 됩니다. 뼈는 전인을 말합니다.

 

이사야 1:16~20절입니다.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죄를 회개하는 것은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고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한 자가 악한 꾀를 내어 이익을 탐하는 자는 과부의 지계도 침범하여 자기의 것으로 취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죄를 알고 회개하게 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는다는 것이 좋은 소식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한 자들이었기에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부분적인 회개가 부분적인 용서와 돌이킴은 있었지만 근원적으로 교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본문 31~33절입니다. “31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에 있느니라 32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교만한 자와 대비되는 말씀입니다. 교만한 자는 악한 꾀를 내는 자이며 자기의 이익을 탐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겸손한 자는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가 있습니다. 이들은 지혜로운 자입니다. 훈계와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지만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의 어떤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하여 우리의 심령과 관절과 골수를 찌러 쪼개어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다 드러냅니다. 이러한 말씀의 역사가 있는 자들의 눈이 밝아진 자들이며 이들은 자기의 벌거벗음을 알기에 대 제사장에게로 달려가게 됩니다. 이들이 겸손함 입니다.

 

히브리서 4:12~13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우리는 다 교만하고 악을 꾀하고 이익을 탐하는 자들임이 이런 말씀 앞에 세워지면 다 드러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어지는 14~16절입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말씀의 책망을 받고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아야 하는 자들이 겸손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겸손함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나의 힘으로 살겠다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며 악을 꾀하는 자들이며 자기 이익을 탐하는 자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한 쪽은 세상의 힘으로 자기의 교만을 세워가는 것이라면 다른 편은 종교적인 업적이나 자신의 선행으로 의를 쌓아가는 것입니다. 이것도 교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두 종류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 다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오늘 본문 25절을 다시 봅니다.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이 말씀을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교만한 사람으로 자기의 집을 지어가면서 살아갑니다. 세상의 힘과 권력으로 자기 집을 세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의 선행이나 의로움이나 종교적인 헌신으로도 자기의 집을 세워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자의 집을 허무셔서 과부의 모습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른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과부처럼 되게 하시고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685절입니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하나님이 어떤 분의 아버지입니까?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어떤 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나는 고아도 아니고 과부도 아니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힘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이스라엘이 망하는 이유는 고아와 과부로 있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힘을 추구하였기에 멸망하였습니다.

 

에스겔 28:1~5절입니다.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3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5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두로 왕의 교만한 모습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상황에서 에스겔을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그 영광을 가지고 한 일이 바로 자신을 높인 교만이었습니다.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았다고 하고 싶은 것이 모든 인간의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완전히 낮추어 고아와 과부처럼 만들어 주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일이 구원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은 두로 왕과 같은 모습을 구원으로 생각합니다.

 

요한계시록 18:7~8절입니다. “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요한계시록이 누구에게 주어진 말씀입니까? 복음으로 인하여 핍박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핍박하는 세상이 추구하는 모습이 두로 왕과 같고 바벨론 곧 로마의 모습과 같다고 합니다. 이들의 교만한 모습이 나는 신이라고 하거나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라고 하면서 자신은 과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러한 말씀이 세상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이런 모습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만이란 고아와 과부의 심정이 안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지금 이 역사 속에서 심판하셔서 고아와 과부처럼 주님만 의지하게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시편 146:1~5절입니다.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귀인을 의지하지 말고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의 모든 생각과 계획들이 소멸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셔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야곱,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다가 환도 뼈 까지 침을 당하고 평생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의지해야 하는 그 야곱의 하나님을 도움을 삼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주께서 그렇게 만들어 가십니다.

 

이어지는 6~10절입니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되기를 싫어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마음을 낮추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환경으로 우리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와 외로운 참새처럼 만드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눈에 십자가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영광이 보이게 됩니다.

 

빌립보서 2:5~11절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아무도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우리의 본성은 이런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보고 이런 마음을 가지라고 하시지만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이렇게 만들고야 마시겠다는 하나님의 자기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백성들의 마음을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처럼 낮추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교만한 마음이 깨어지고 겸손한 마음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이 역사 속에서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이는 자리는 언제가 교만이 꺾어지고 마음이 낮추어진 자리에게 보이게 됩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