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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7:1~7 복을 주소서! 2021. 9. 8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3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1)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4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셀라) 5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6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7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표제어는 시 곧 노래,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것입니다. 모든 시가 노래가 되지 않습니다. 시에다 곡조를 붙여야 노래가 됩니다. 그래서 시 곧 노래라고 표시하고, 어떤 악기에 맞춘 노래, 인도자를 따른 노래라는 말은 다 노래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67편의 곡은 찬송가 74장이라서 오랜만에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은 복을 주소서입니다. 그 복이 무언지 보겠습니다.

 

본문 1절을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달라고 합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결과가 복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이란 여러분도 들어보신 바라크라는 단어에서 온 내용입니다만 먼저 구약의 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약에서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복을 말하는 성경이 어디입니까? 신명기 28:1~14절입니다. 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계명을 다 지켜 행하여야 하지만 우선 그 복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주 소박한 복입니다.

 

자녀가 많은 것, 토지의 소산이 잘 되는 것, 가축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복을 받으려면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때를 따라 적절하게 와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 놓아도 적들이 쳐들어와서 다 빼앗아가면 헛되기에 여호와께서 적들을 막아주셔야 합니다. 이런 내용을 복이라고 합니다. 이삭이 농사를 지어 그해 백배나 거두었습니다(26:12). 그리고 가축도 많아서 거부가 되었습니다(26:13).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우물을 막아 버리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표가 농사나 가축이 잘 되는 일로 이 시대에는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이들과 함께하시는 것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28:10).

 

그런데 이런 복을 말하면 우리도 하나님을 잘 섬기면 거부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삭이 농사를 지어서 백배나 되었다는 말은 지금 우리의 경제개념으로 보면 안 됩니다. 일 년에 수익이 일억인 사람이 백배가 되면 백억이 되는 겁니다. 이런 경계 개념 자체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에서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4:20). 이 비유는 말씀의 생명력을 농사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지 하나님 잘 섬기면 최소한 삼십 배 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엉터리 부흥사라는 자들이 헌금하면 최소한 삼십 배라고 하는 소리를 들어봤습니다. 농사짓는 일은 씨앗 하나 뿌리면 농사가 못 되어도 한 알에 삼십 알 정도 맺힙니다. 평년작은 육십 알이고 풍년이면 백 알이 맺힙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복이란 농사를 짓든지 목축을 하든지, 병충해 없이 낙태 없이, 적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심은 대로 거둠을 복이라고 합니다.

 

본문 1절을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 그가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셨다라는 완료형입니다. 그러므로 셀라가 나옵니다. 우리 번역은 2절과 연결하니 중간에 셀라가 들어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기도형식으로 번역하였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허락하셨기에 우리가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 가지 동사로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시고, 얼굴빛을 비추어주시는데 오늘 복의 초점은 세 번째 그의 얼굴빛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주의 은혜와 복과 얼굴빛을 이스라엘에 비추어주시면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 알리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돌보심을 통하여 모든 나라의 주의 도와 주의 구원을 알리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의 도와 주의 구원이 어떤지를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세상에 알리시면 그 소식을 듣고 모든 민족을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복과 얼굴빛을 비추어주심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기들만이 복을 받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복을 받게 하는 겁니다.

 

본문 4~7절입니다. 온 백성이 기쁘고 즐겁게 노래합니다. 여기서 온 백성이란 이스라엘을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을 알고 믿는 자들이 함께 찬송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모든 민족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다스림을 받는 나라들이 주를 찬송하게 됩니다. 이들이 주를 경외함으로 땅이 그의 소산을 내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찬송합니다. 전에는 비와 바람을 부는 신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인 줄 알았는데 이스라엘을 통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구원하시는 주님을 알게 되었기에 찬송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심으로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란 이스라엘이 먼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이행하지 못함으로 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신명기 28:15절 이하에 나오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저주의 내용은 복의 내용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그 저주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 나타났습니다. 자녀를 잉태한 여인이 해산할 힘이 없습니다. 적들이 쳐들어오면 임신한 여인의 배를 갈라버립니다. 심지어 적이 포위하고 있을 때 자기의 자녀를 삶아 먹었습니다. 기근이 오면 땅이 소산물을 내지 않기에 가축도 먹을 풀이 없습니다. 이러한 저주가 임하여 나라가 망합니다. 그렇게 망하게 하시는 일도 하나님의 일임을 온 세상에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복이 어떤 것인지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주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셨을 때 그들은 주의 낯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나니 두렵고 부끄러워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에 숨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낯을 피하였다는 말씀이 최초의 타락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가 두려워 숨는 일이 인간의 타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찾아오셔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뱀의 후손이 여인의 후손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지만 여인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란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일이 죄입니다.

 

창세기 4:3~8절입니다.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3)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을 받아주십니다. 가인의 안색이 변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분노가 그 얼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가 선을 행한다면 왜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고 하시면서 죄가 네 앞에 엎드리고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죄를 다스릴 수 없기에 아벨을 들에서 돌로 쳐 죽이고 맙니다. 이리하여 가인이 여호와 앞에서 쫓겨나는 일 역시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뵐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가인이 받은 저주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인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어떻게 말합니까?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때 하는 말이 얼굴 한번 보자고 합니다. 그렇다고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이란 사람의 감정들이 다 드러나는 곳이기에 그 얼굴을 보면 사람의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顏)이라고 하는데 신하들이 임금의 얼굴을 살핍니다. 임금의 얼굴색에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합니까? 하나님의 안색을 살피십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고 하니 자기 소원 성취를 구하는 자도 있습니다. 또는 꿈에 봤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성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구하라는 말씀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가시나무 떨기에서 불이 붙어서 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불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실 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합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립니다(3:6). 모세의 하나님 경험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여 자기 얼굴을 가립니다.

 

이런 모세가 바로 왕에게 가서 재앙을 내릴 때 바로 왕이 아홉 번째 재앙에서 모세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너는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합니다. 지금 바로 왕은 자신이 신이 되어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아홉 번째 재앙에서 모세가 자기 얼굴을 보면 죽을 거라고 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 어떤지 보여줍니다. 이런 바로 왕이 열 번째 재앙에 그 아들이 죽고 이스라엘 백성을 나가게 합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얼굴을 구하고 살피고 있습니까?

 

출애굽 한 후에 모세가 시내 산에서 사십일 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내려옵니다. 그러자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서 사람들이 가까이하지 못하였습니다(34:29,30). 그래서 모세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이 내용을 바울 사도는 율법도 광채가 났지만 그 율법은 점점 빛을 잃어가기에 그 없어질 것의 결국을 보지 못하도록 수건으로 가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옛 언약의 일꾼이지만 새 언약의 일꾼들은 그런 수건을 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세의 수건이 가려졌다는 말은 율법의 수건이 벗겨지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께로 돌아가면 모세의 수건이 벗겨질 것이라고 하면서 주의 영이 주시는 자유를 말씀합니다(고후3:13~17). 그러므로 복이란 주의 얼굴을 뵙는 겁니다.

 

민수기 6:24~27절입니다.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구약 제사장들이 축복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나오는 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고, 얼굴을 비추어주시기를 구합니다. 다른 복의 내용도 결국은 그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시는 일입니다. 은혜로 그 얼굴 비추심이 복이며 구원입니다.

 

신명기 31:14~16절입니다.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1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 문 위에 머물러 있더라 16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모세가 마지막으로 전하는 여호와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어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길 것임을 알고 율법을 주신 겁니다. 그러나 율법을 어긴 결과는 어떻습니까?

 

이어지는 17~18절입니다. “17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18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을 어기지 않겠다고 시내산 앞에서 언약을 체결하였지만, 그러나 옛 언약은 이미 어길 것을 하나님께 알고 주셨습니다(19~21). 그러나 언약 어기면 얼굴을 숨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심이 저주이지만 얼굴빛을 보이시면 구원입니다.

 

시편 80:3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가 없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돌이켜 주셔서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달라고 합니다. 이런 시편을 기록한다는 것은 이미 모세 율법의 뜻을 아는 자들이며 은혜를 입은 자들이기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주의 얼굴빛을 비추심이 우리의 구원이라고 합니다.

 

시편 89:15절입니다.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빛 안에서 다니리로다즐겁게 소리친다는 것은 오늘 본문에서 구원을 받아 주의 얼굴빛을 보는 자들이 찬송하는 겁니다. 이러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의 얼굴빛 안에서 다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얼굴빛이 진노가 아니라 은혜와 긍휼과 사랑의 빛이기에 그 안에서 기쁨이 있습니다.

 

시편 10424~31절입니다. “24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25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2)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26 그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3)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27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28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31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세상 만물이 주의 얼굴빛으로 삽니다. 바다의 괴물로 불리는 리워야단도 하나님의 얼굴 빛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면 당일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아서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기도합니다.

 

다니엘 9:17절입니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면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남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중에 다니엘 선지자가 기도하기를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어 달라고 합니다. 우상 숭배로 무너진 성소가 다시 회복되는 길은 예수님의 자기 죽음과 부활과 성령 보내심으로 세워지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을 만드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사람들의 손에 그 얼굴이 주먹으로 맞고 침 뱉음을 당하였습니다(14:6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5). 그 십자가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예수님께서 그 일을 기꺼이 감당하심으로 하나님의 만족이 되십니다(53:10,11).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그 얼굴을 나타내신 곳이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의 얼굴을 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영광의 얼굴을 이 역사 속에서 보여주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2:6~11). 이런 자들은 이 역사 속에서 말씀으로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이들은 이런 찬송을 합니다.

 

찬송가 27장 가사입니다. “(1)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나네 해 같이 빛나네 (2) 지극히 높은 위엄과 한없는 자비를 뭇 천사 소리 합하여 늘 찬송드리네 늘 찬송드리네 (3) 영 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떠나서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날 위해 지셨네 (4)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혜요 저 사망 권세 이기니 큰 기쁨넘치네 큰 기쁨넘치네 (5)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뵈올 때 내 기쁨넘치리 내 기쁨넘치리 아멘

 

요한계시록 22:1~5절입니다. “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