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상담

  1.  신앙상담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338-3 아카
데미 빌딩4층 담임목사 이장우
055-285-3726 HP:010-3848-3726

신앙 상담실
개인정보보호를 원하시면 글작성시 게시판 상단 [비밀글기능]에 체크후 작성바랍니다
  • Skin Info
  • Tag list
  • List
  • Webzine
  • Gallery
이장우목사
2011.09.19 20:37

(간단히 답할 수 있는데 출애굽기가 마무리 되어서 10년 전의 원고를 올립니다. 성경구절은 직접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4:18-31 장자 만들기 2001. 2. 18.

 

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결국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지 않고 다른 종교나 신을 믿는다는 자는 어떻습니까? 이들도 역시 자기 자신이 주인으로 있고 신이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섬기게 된다면 결국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죄란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인생이 자기의 주인이 되어있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벗어버리고 스스로 독립하고자함이 곧 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고 중심이라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신앙이란 나를 섬기던 자가 주님을 섬기는 자로 바뀌는 것이며, 내가 주인인 자가 주님이 주인인 자로 바뀌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삶이 얼마나 생소한지 모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주여, 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내가 필요한 일에 도움을 주는 그러한 자로서 믿는다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어떻게 만들어내시는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거절하다가 하나님의 설득에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시기까지 하시면서 모세를 보냅니다. 그런데 말을 못한다고 하니 아론을 붙여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아론이란 모세가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편도 되지만 모세가 아론과 함께 사역을 할 때마다 무엇을 보게 됩니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듣지 않았는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사라가 이삭을 주신다는 말씀에 웃었지요. 무슨 그런 일이 있느냐고 웃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아이는 태어났고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삭아, 하고 부를 때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였음을 고발당하는 것입니다. 모세도 계속 아론과 함께 다니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순종하지 못한 증거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론까지 붙여주신다는 말씀을 듣고서는 자기 장인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납니다. 아내와 자식과 함께 길을 떠날 때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갑니다. 지금까지 단순히 양을 치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누구의 손에 들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양떼를 치던 지팡이가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거대한 애굽을 심판하는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가는데 ,그 가는 일의 목적이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입니다만 그렇게 하여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고자 하는 것입니까? 왜 출애굽을 시키시는 것입니까?

 

22절입니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절.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이것이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시는 목적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장자로 세우시기 위하여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장자로 세우시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하나님의 아들 장자가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아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장자를 만들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모세가 애굽에 가서 바로 왕에게 자기 백성을 내어 보내라고 하는 이유가 분명하여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장자를 만드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분명한 명령을 받고서 가다가 길의 숙소에서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십니다. 지금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가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왜 죽이시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24-25절입니다. “봉독” 할례 때문입니다.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아들의 양피를 베어서 모세의 발 앞에 던집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나의 피 남편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십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모세를 죽이시려고 하신 것은 할례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는 것이 아브라함 때부터 나온 하나님의 백성 됨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모세의 아들은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모세가 아들의 할례를 하라고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할례를 행하라고 하였는데도 십보라가 하지 않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행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죽이려고 하셨고 할례를 행하자 하나님께서 놓아주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장자로 삼으시는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신 것은 99세 때입니다. 그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후손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첩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방법으로 자기 백성을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언약에 의하여 만들어진 백성을 원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실력이 아님이 드러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할례를 행하고서, 낳는다는 것은 오늘날의 포경수술과 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할례를 행함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람의 혈통이 아님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12-13절에서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난 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장자를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능력으로 만들어내신다는 것이 할례에 담겨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을 만들기 위하여 심부름을 하는 모세가 자기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를 하나님께서 죽이시려고 하시자 십보라가 할례를 기억하고서 얼른 자기의 아들에게 차돌로 할례를 행하여 그 피가 묻은 양피를 자기의 남편에게 던지면서 뭐라고 합니까? 실로 당신은 피 남편이라고 합니다. 피가 있어야 되는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어 본문에 모세라고 명백히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세의 아들을 죽이려고 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지 간에 지금 하나님께서 죽이시려다가 물러가신 것은 할례를 인하여 물러가신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알 수가 있는 것은 지금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 즉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장자를 만드시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만드시는지를 보여주는 계시적 사건입니다.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도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40년 전에 행한 그러한 인위적인 모세의 열심으로 인한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무엇을 바르고서 나옵니까?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행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혈통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낼 수가 결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피를 통하여, 죽음을 통하여 새롭게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 만들기, 장자 만들기에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제거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장자로 이스라엘을 불러내시지만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장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실패합니다. 우리가 출애굽기 시작할 때 보았던 말씀을 한 번 더 보고자 합니다.

 

호세아 11:1-7절입니다. “봉독”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고 바알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팔로 안으셔서 인도하시는데도 그들은 자기들을 고치는 줄을 알지도 못한 것입니다. 사랑의 줄로 이끌고 목에 멍에를 벗기고 그들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데도 돌아오기를 싫어하여 앗수르 사람이 그들의 임금이 되어도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로 불러내신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참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보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14-15절입니다. “봉독” 아기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신하셨다가 헤롯이 죽고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을 마태는 무엇의 성취로 보는 것입니까? 호세아 11:1절의 성취로 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아들로, 장자로 불러내셨건만 그들이 아들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장자의 역할을 완전하게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이제 이 하나님의 완전하신 아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십니까? 역시 사람의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을 받은 자에게 주의 영이 임하시니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진 것은 피 없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실 때에 피를 흘린 것처럼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아들들의 맏아들, 즉 장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그 맏아들을 양자들이 본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로마서 8:15-17절. “봉독”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됨. 로마서 8:28-29절. “봉독”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장자로 만드시기 위하여 오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이시고 살리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11-15절입니다. “봉독”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즉 죽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무엇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까? 죽음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나는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부름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짜 아들을 욕보이고 죽인 자입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자는 세상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만족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계시는데 아이들이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피로 만드신 아들이라면 세상의 환난이나 곤고나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구약과 신약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내시는 하나님의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에서도 피 없이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내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짐승의 피가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을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 놓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4:22-23절입니다. “봉독” 하나님의 자기 아들 만드시는 길에 방해가 되면 무엇이나 제거하여 버리십니다. 그렇게 하셔서라도 자기의 언약을 이루어내셔서 자기의 아들을 만들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것이 인생의 본분입니다. 이제 제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피로 값을 주고 사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하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이것은 섬김으로 복을 받아 낸다거나 섬겨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아들로 만들어 놓았기에 주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임을 고백하면서 사는 것이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아무나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주님을 알아 갈수록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감사요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임을 알아 이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며 사는 것 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 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0MB
파일 제한 크기 : 20.00MB (허용 확장자 : *.*)
Copyright ⓒ 1999-2021 Nulpurun churc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