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아님이 심상선님이시군요!
오늘 서머나교회에서 선생님의 글에 대한 댓글들 다 읽어보았습니다. /
그런데 체험이라는 말과 통전적 나가 감지 한다는 것의 차이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위의 글로 가름합니다.
한가지 바울의 이야기만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예수님 만난 사건을 간증한 부분은 성경에서 두 번 나타납니다.
한번은 사도행전 22장에서 유대인들 앞에서 하였고
한번은 사도행전 26장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곳을 읽어보면 자신의 거듭난 간증의 체험을 말하고자 함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핍박한 그 예수가 지금 살아서 일하고 계심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을 증거 합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지난 주일 설교결론입니다.
새번역 갈라디아서 6:14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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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아님이 심상선님이시군요!
오늘 서머나교회에서 선생님의 글에 대한 댓글들 다 읽어보았습니다. /
그런데 체험이라는 말과 통전적 나가 감지 한다는 것의 차이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위의 글로 가름합니다.
한가지 바울의 이야기만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예수님 만난 사건을 간증한 부분은 성경에서 두 번 나타납니다.
한번은 사도행전 22장에서 유대인들 앞에서 하였고
한번은 사도행전 26장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곳을 읽어보면 자신의 거듭난 간증의 체험을 말하고자 함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핍박한 그 예수가 지금 살아서 일하고 계심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을 증거 합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지난 주일 설교결론입니다.
새번역 갈라디아서 6:14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