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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목사
2015.08.13 10:17

성경강해 모음 코너에 전체 강해란에 들어가니 로마서는 잘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파일이 깨어져서 다시 올려두었습니다.

로마서 부분은 설교 원고 그대로 올려둡니다.


로마서 1:18-25 하나님을 알되 2003. 7. 20.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3)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어느 목사님의 세미나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내가 성경을 읽으면 교만하여 지지만 성경이 나를 읽으면 회개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타당한 말이라고 봅니다. 내가 성경을 좀 보고서 구약도 알고 신약도 알고 언약이 무엇이니 율법이 무엇이니 복음이 무엇이니 하면서 이야기 하지만 그것으로 얼마든지 교만하여 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성경이 나를 읽어버리면 내가 말씀 앞에서 죄인임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2-13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인체의 신비전을 알리는 메일을 받아 보았습니다. 사람의 신체를 화학 처리하여 플라스틱모양으로 만들어 전시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완전히 해체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경, 힘줄, 핏줄, 뼈 등을 분해하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신체는 몇 센티 정도의 두께로 전부 잘라 놓았습니다. 그리고서는 전시회를 한다는 선전이었습니다.

 

사람의 신체를 그렇게 해부하여 놓아도 그 마음의 생각과 뜻을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다 감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수술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제대로 진단을 받아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이 드러나게 되면 우리를 상관하시는 분 앞에서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였음을 오늘도 말씀으로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불의에 대하여 나타나는데 그 불의한 모습 중에 경건치 아니함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모든 이방인에게 다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먼저 이방인의 죄악을 지적하고 나서 그 다음에 유대인의 죄악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죄 아래 갇혀 있다고 전개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모스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하기 위하여 주변 국가들의 죄악을 먼저 공격하면서 들어오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도 모르고 우상을 섬기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이야기로 들려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돼지머리를 두고 고사를 지내고 피조물을 섬기는 그런 것을 우상 숭배라고 여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미신이며 우상숭배라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교회 다니기 때문에 그러한 우상을 섬기지 아니한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섬기고 경배하는 것이 다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18-20절입니다. 이러한 우상숭배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좇아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기에 핑계치 못하는 것입니다.

 

김용옥씨가 세상의 신비란 들풀 하나보다 더 신비로운 것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들풀 자체의 신비만 보았지 그 들풀을 만드신 창조주를 모르기에 그는 비록 어려서부터 요절을 외우면서 자라고 신학대학을 나왔지만 우상숭배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특별하게 형상물의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을 믿는 것입니다. 자기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도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설 것이며 핑계하지 못할 것입니다.

 

21-22절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여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고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나 어리석어서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짐승들과 벌레를 형상화 하여 놓고 신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런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썩어질 사람을 우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우상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사람의 형상을 동상으로 만들어 절하는 것만을 우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도 얼마든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는 사람의 생각과 사상들이 결국 우상숭배입니다. 인생의 사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하는데 모든 인생들이 한결같이 자기 영광만 챙기고 있으니 어찌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방인들은 특별계시를 받지 않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제대로 돌렸습니까?

 

요한복음 5:44절에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지금까지 자기들이 쌓아둔 의는 다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영광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인데 그 영광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에 나선 것이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께 불경건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나 자신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24-25절을 봅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그대로 내어버려 두시니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보다 더 사랑하고 있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모든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피조물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가 주님보다 얼마다 더 사랑하고 있는지 인식이나 하고 사십니까?

 

예를 들어봅니다. 청년 때와 결혼하고 나서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결혼 전에는 그래도 주를 기쁘시게 하고자 교회 일에 열심을 내고 헌금도 힘써 하고자 하지 않았습니까?-그런 사람도 드물지만-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어떻게 마음이 달라집디까? 어서 빨리 내 집이라도 마련하자는 생각이 우선이지 아니합디까?

 

지난주일 학생회 시간에 학개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은 황무하여 있는데 자기 집들 짓기에 바쁘다고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마침 그 시간에 모기가 한 마리 돌아다녀서 시선을 빼앗고 있었습니다. 방충망에 구멍이 나 있어서 모기가 들어온 것입니다. 예배당 건물이 성전이 아님을 이미 알지 않습니까? 그러나 자기 집에 방충망이 구멍이 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의 관심사가 어디에 더 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홈페이지 복음칼럼란에 교회와 집을 비교한 글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집을 싫어하여 나가는 경우를 여러 가지 말하였습니다. 보모의 지시를 따라야 하고, 가족을 배려하여야 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고, 아무의 간섭도 받기 싫다고 집을 떠나 독립하겠다는 생각을 교회와 비교하여 성도들의 눈치가 싫고, 목사의 운영방침이 싫고, 내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싫고 하는 것으로 비교를 하면서 그래서 교회를 옮긴다는 것을 잘못이라고 봅니다. 그런 자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사람들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기 시작하면 그곳이 우상숭배의 현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믿는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자기들의 죄를 알고 하나님의 의가 없는 곳에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짐을 알아서 복음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복음입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의로는 저주와 진노 외에는 받을 것이 없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달리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모인 교회라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교회마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취미단체와 같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구들을 채워주겠다는 것입니다. 취미단체는 어떻습니까? 자기가 선호하는 취미를 따라 등록을 하고 회비를 내면 됩니다. 같은 취미그룹이라도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취미단체에 등록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취미와 기호는 너무나 다양하고 예민하기에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옮길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이 교회는 기도가 부족해, 전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전도가 부족해, 구제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구제가 부족해, 이 교회는 사랑이 부족해 하면서 그러한 곳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러한 부족이 보이면 말없이 충성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은사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자기만족과 자기 과시가 있는 것이라면 분명히 자기 잘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보라 성경에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는가!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잘하는 개인적인 취향을 가지고 그것이 전부인양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것이 교회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내 마음에 맞는지를 좋은 교회의 기준으로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한번 와보고는 목사가 아버지처럼 나이도 지긋하고 기댈만한 그런 목사여야 좋다고 하면서 간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신칭의에 대한 설교를 듣고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해 놓고서 한 일년 정도 다니다가 나가면서는 대표기도 한 번 안 시켜주는가를 말하면서 나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5-6절입니다. “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모든 이론과 생각까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을 다 부수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지금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목사든 집사든 자기의 이론과 생각으로 교회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교만하여진 인간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건치 아니함에 대하여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감사치도 아니하는 우리의 모습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그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목적과 방향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잡혀져 있기나 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나를 영화롭게 하고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하여서만 살아가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러면 과연 예수님의 그 공로를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으로 믿고 살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알기를 원하지도 않고,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도 없는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까? 나는 죄인중의 괴수이지만 예수님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는 이것을 가장 복된 소식을 믿고 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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