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상담

  1.  신앙상담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338-3 아카
데미 빌딩4층 담임목사 이장우
055-285-3726 HP:010-3848-3726

신앙 상담실
개인정보보호를 원하시면 글작성시 게시판 상단 [비밀글기능]에 체크후 작성바랍니다
  • Skin Info
  • Tag list
  • List
  • Webzine
  • Gallery
이장우목사
2015.09.17 16:23

16년 전의 설교입니다. 마리아의 이야기와 도마의 이야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내용이 길지만 단답으로 할 수가 없어서 전의 설교 두편을 부분적으로 올려놓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시면 마리아가 울고 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처음에는 동산지기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니 예수님인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만져보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게 생신지 꿈인지 확인을 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꼬집어보든지, 아니면 상대방을 만져 보든지 확인을 해야 하는 순간인데 예수님께서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 만지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제가 청년 때에 어느 자매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셨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27절에 보시면 도마에게는 만져보게 하셨잖습니까? 그러니 예수님께서 왜 어떤 사람에게는 만지지 말라고 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만져보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그 자매보다 교회 다닌 지가 오래 되어서 질문을 하였겠지요. 그때 저는 주일학교 교사이기도 하였고, 또 기독교 전문서점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라서 알아보고 말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까지 나온 거의 모든 성경주석을 다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명쾌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겨우 찾아낸 결론이 여자는 남자 보다 더 감성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 만져 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볼 수도 없을 테니 미리부터 차단을 한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왜 만져 보라고 하셨는가 하면 부활을 의심하기에 모든 사람의 의심을 확인시켜주는 차원이라는 정도였습니다. 어느 정도는 대답이 되는 것 같지만 시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박영선 목사님의 요한복음 설교에서 가장 시원한 대답을 보게 되었습니다. 더 나은 해석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보다 나은 해석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거의 인용을 합니다. 설교란 설교자 자신의 잘남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며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가가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로 인하여 주의 백성들이 유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고집과 자기주장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해석을 계속하여 보는 것입니다.

 

레위기 23:9-14절을 봅니다. “9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0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1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12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13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14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찌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할 규례들 중에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가서 하나님 앞에 흔들어 바치는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제라고 합니다. 짐승을 불에 태우면 번제, 곡식을 불에 태우면 소제, 포도주나 기름을 부으면 전제입니다. 그런데 처음 익은 곡식 단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기 전까지는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곡식 단을 하나님께로 가져와서 요제를 드리고 난 후에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흔들어 바치는 날이 안식일 다음날입니다. 이러한 곡식의 첫 단뿐만이 아니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간에 처음 태어난 수컷을 모두 하나님께 돌려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 것을 돌림은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 때에 처음 태어난 장자나 짐승이나 간에 다 죽었지만 이린 양의 피를 바르고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것을 하나님께 돌려야하는 것은 사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만 처음 것이 드려짐을 통하여 나머지도 거룩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곡식 단을 제일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서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곡식 단은 사람이 손대지 못하는 것입니다. 손대지 못한다고 하여서 들고 오는 것도 금하는 것이 아니지요. 먹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 익은 열매가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의미에서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 손을 대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만져보았다, 아니다가 중요하기 보다는 예수님께서 안식 후 다음날에 부활하신 것이 무슨 의미냐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도마는 만져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8:8-18절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덥석 붙들었기에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하고 봅니다. 나는 지금 처음 익은 열매로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3절을 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곡식에 비유합니다. 처음 익은 곡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제를 드리듯이 하나님께 안식 후 첫날 다시 사심으로 구약의 그 제사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차원에서 마리아에게 만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첫 열매라고 하신 것은 다음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 열매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다음으로 나타날 열매들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라고 합니다. 그에게 붙은 자들, 그를 믿는 자들이 다 함께 부활의 다음 열매들도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은 맏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로마서 8:29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예수님께서 첫 열매가 되시듯이 맏아들이 되시는 것입니다. 맏아들이 되신다는 것은 그를 이어서 다른 많은 아들들이 나오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첫 열매로서 하나님께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음 열매들이 계속하여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처음 열매로 드려지게 되심을 통하여 죄인들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17절을 봅니다.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시고서는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안식 후 첫날 다시 살아나심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맏아들이 되심으로 이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드디어 예수님께서 아버지라고 부르신 분을 아버지라, 하나님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예수님만이 하나님 아버지를 바르게 나타내신 분이십니다. 사람들마다 각각 하나님의 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사람 만나면 열 사람의 하나님이 다르고 백사람 만나면 백 사람의 하나님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맏아들이 되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제 제대로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제 육체적인 접촉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고서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다른 차원, 다른 세계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정리로서 무덤까지 찾아오는 그러한 차원이 아니라 다시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육체대로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지고 확인하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식사를 하던 사도 요한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만나 뵈었을 때 죽은 자와 같았습니다. 그러니 부활하신 몸을 본 것과 승천하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올리우신 분은 육체대로 알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지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여전히 예수님을 육체적인 접촉을 하고 싶어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자들로 예수님을 만나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체적인 접촉을 하고, 예수님께서 안아 주시더라, 옷자락을 만져 보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참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구나, 어쩌면 나는 그런 비슷한 꿈도 꾸지를 못하는가 하면서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식으로 알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도마에게 무어라고 하십니까?

 

29절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을 복되도다 하시니라마리아나 도마처럼 신체적인 접촉을 통하여 확인하고서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지 않고서 믿는 것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이 임하심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8-9절을 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예수님을 보지도 못하고서 사랑하고 기뻐하고 있는 것이 바로 복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성도란 흩어진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들이 닥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도 못하였는데 사랑하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복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인하여 선물이 주어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6-17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예수님을 육체대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고 만져보려는 식으로 믿고 있다면 주님께서 무어라고 하시겠습니까?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실 것입니다. 아직도 자신의 이력이나 경력으로 주님을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누군데 그래도 지금까지 신앙하나로 버텨왔다고 하는 그런 오기와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한 것이 마리아의 수준인 것입니다.

 

나를 만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붙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붙든다고 하여도 잠잘 때는 어떻게 합니까? 죽어 버리면 어떻게 붙들 수가 있습니까? 내 힘과 정성과 열심이 주님을 붙들고 있는 자리에서 오히려 놓아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주님의 보좌 우편에서 자기의 택한 자들을 위하여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빌고 계시는 그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야 쉼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가장 큰 추석선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도마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아야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마의 말이 요한복음에서 두 번 나옵니다. 11장에서,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를 깨우려고 가려고 하십니다. 그곳이 베다니인데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돌로 들어 치려고 하는데 다시 베다니로 가야합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도마가 우리가 주와 함께 죽으러가자고 합니다. 그리고 14장에서 예수님께서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을 때 너희가 그 길을 알리라고 하시자 도마가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는데 어찌 그 길을 알겠습니까, 라고 말합니다. 이때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건데 도마는 어딘가 저돌적이고 분명한 사람 같습니다.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지요! 길을 보아야 아는 것이고, 부활도 직접 목격하여야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마의 의심과 불신은 두 가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가 도마처럼 불신을 하고 있는데 도마가 대신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여 주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인간이 얼마나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가를 고발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후자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도대체 믿음이 무엇인지를 한 번 더 확인을 하고자 합니다.

 

제자들이 3년 동안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이란 게 역시 보이는 것을 원하고 따라 다닌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 없음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 대표가 도마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로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24-25절을 봅니다. 내가 직접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손으로 만져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노라는 것입니다. ‘믿지 않겠노라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고 지나는데 8일을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서 모이고 문이 닫혔는데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역시 평강이 있을찌어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의 말을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도마가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을 듣고서 나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할 때는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도마의 말을 정확하게 그대로 아시고 도마의 말대로 손과 옆구리를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넣어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도마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마음속의 생각을 주님이 다 아십니다. 주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말과 행실과 마음의 상태까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앞에서 내숭떨지 맙시다. 도마의 말을 방금 들으신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도마가 직접 만져 보았을까요? 저는 감히 만져 보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상처의 흔적을 보이시면서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도마의 고백이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나의 주란 고백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를 나를 보고서 믿느냐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0MB
파일 제한 크기 : 20.00MB (허용 확장자 : *.*)
Copyright ⓒ 1999-2021 Nulpurun churc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