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에 대한 질문은 교회 역사 2천년동안 계속되는 질문입니다.
종교개혁도 자유의지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구교과 신교의 해석의 차이가 있습니다.
구교는 한마디로 신인협력설입니다.
신교 특히 루터의 견혜는 인간의 개인적인 자유의지 보다는
그 개인을 누가 다스리고 있느냐는 권세개념으로 보았습니다.
노새의 의지가 있지만 노새의 주인이 노새위에 타고 있으면 주인의 의지대로 끌고 가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고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한다는 로마서 5장을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의 의지는 어떤 것이냐는 질문이 대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거듭난 양심의 문제기이도 합니다.
이 부분은 복음칼럼의 노요한 목사님의 글 양심대로 살았다고요 하는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 광주로 가는 날이라 간단히 답을 합니다.
성경과 칼럼을 보시고 미진하시면 다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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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에 대한 질문은 교회 역사 2천년동안 계속되는 질문입니다.
종교개혁도 자유의지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구교과 신교의 해석의 차이가 있습니다.
구교는 한마디로 신인협력설입니다.
신교 특히 루터의 견혜는 인간의 개인적인 자유의지 보다는
그 개인을 누가 다스리고 있느냐는 권세개념으로 보았습니다.
노새의 의지가 있지만 노새의 주인이 노새위에 타고 있으면 주인의 의지대로 끌고 가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고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한다는 로마서 5장을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의 의지는 어떤 것이냐는 질문이 대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거듭난 양심의 문제기이도 합니다.
이 부분은 복음칼럼의 노요한 목사님의 글 양심대로 살았다고요 하는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 광주로 가는 날이라 간단히 답을 합니다.
성경과 칼럼을 보시고 미진하시면 다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