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 때 고향에서 죽치고 누워 TV만 보았는데, EBS 다큐 프라임에서 기획한 ‘안데스’ 프로 6부작을 재방으로 보게 되었습니다.(검색하여 보니 원방은 2008년도에 방영되었네요..)


이 프로는 남미 안데스 산맥에 사는 인디오 부족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는데, 인디오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16세기 전후로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나서 유럽인들, 특히 스페인인들이 황금을 찾아 밀물처럼 남미를 정복하게 되고, 그들은 노예보다 더 못한 환경에서 인디오들의 노동력을 착취합니다. 이전에 인디오의 인구가 7천 5백만명에서 100년 사이에 5백만명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무려 7천명이나 유럽인들의 착취에 희생을 당한 것이지요.


그들이 인디오를 착취하면서 개발한 논리는 자신들이 인디오들에게 기독교(천주교?)를 전해주기 때문에 인디오들은 그에 대한 대가로 노동력을 제공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으로 죄악을 저지른 것이지요... 당시 흑인노예들은 돈을 주고 사서 남미로 데려오지만 인디오 원주민들은 돈을 주고 살 필요도 없이, 흑인노예보다 못한 대우를 받은 것입니다.


그후 인디오들은 독립을 이루지만 여전히 백인들이 상류사회를 형성하고, 백인과 인디오 사이에 태어난 메스티조들은 중류사회를 이루고, 인디오 원주민들은 하류사회를 이루면서 중심가에서 밀려나 터전을 찾아 안데스 산맥 고산지대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요점은 지금부터입니다. 이 남미국가들에서는 독립기념일에 대대적인 축제를 행하는데, 인디오 원주민들은 별도로 ‘피의 축제’를 행하고 있습니다.


피의 축제일이 가까우면 인디오 원주민 남자들은 ‘콘도로’라는 새를 생포하여 와야 합니다. 이 축제의 핵심이 콘도로이거든요.


예전부터 콘도로는 인디오들에게는 ‘신’으로 대우받습니다. ‘하늘의 신’, ‘산의 신’... 콘도로는 현존하는 새 중에서 가장 큰, 육식을 하는 새인데, 몸집이 너무 커서 일반 하늘에서는 날지를 못하고, 안데스 깊은 계곡을 따라 부는 상승 기류를 타고 하늘을 납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콘도로를 생포하냐면, 콘도로가 죽은 동물(말)을 먹고 나면 몸이 무거워 하늘을 날지 못합니다. 그때 원주민들이 숨어 있다가 뛰어가서 손으로 생포를 합니다. 특별한 포획도구 없이 새를 잡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피의 축제’일이 되면, 행사를 진행하다가 사람들이 투우장으로 모입니다. 그 투우장에서는 콘도로와 대결할 가장 강한 황소를 뽑기 위한 투우가 진행되는데, 원주민들은 이때 극도로 흥분합니다. 그래서 황소를 더 흥분시키기 위하여 상처를 내기도 하는데, 이런 투우 과정에서 사람들이 몇 명이 죽기도 하지만 행사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여 가장 강한 황소가 가려지면, 그 황소의 양쪽 등에 상처를 내고, 그 등위에 끈을 연결하여 콘도로의 양 발을 단단히 묶은 상태에서 놓아줍니다. 그러면, 황소는 등위에 있는 콘도로를 떼어내기 위하여 날뛰고, 콘도로도 이에 자극을 받아 황소의 등을 쪼는데, 그후 콘도로가 황소를 죽이지는 않고, 단지 콘도로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황소가 지치면, 사람들은 콘도로의 승리를 선언하고, 그 콘도로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피의 축제’는 끝나게 됩니다.


이 ‘피의 축제’를 보면서 몇 가지를 느꼈는데,


먼저, 인디오들이 이 콘도로를 ‘신’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부터 인디오들은 콘도로를 신으로 여겼지만 스페인에 정복당한 역사가 있고부터는 이 콘도로에 자신들을 일치시킴으로서 스페인에 대한 복수심과 원한을 그렇게-황소에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인디오들이 이 콘도로를 ‘신’으로 여길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고대세계에서 동물을 신으로 여기고 숭배한 사상은 흔한 것입니다. 이것을 ‘애니미즘’이라고 하지요. 성경에 보면, 이방 민족들이 비물질적인 바알이나 아세라를 목상이나 석상에 새겨 우상으로 섬겼고, 해와 달, 별 등 자연도 신으로 숭배를 하였고, 애굽에서는 황소나 개구리 등 동물을 신으로 숭배하였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인디오들이나 이방 민족들이나 그들의 사고방식에서는 이 우상들이 자신들에게 실체로 느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이방 민족들이 우상을 말할 때 ‘자기 자신을 위한’ 우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우상에는 자신의 욕망과 복수심, 세계관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인디오들도 이 콘도로에 자신들의 정복당한 역사와 스페인에 대한 복수심 등을 상징화하여 신으로 여겼는데, 그 상징성이 너무 강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 우리의 ‘콘도로’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욕망이나 세계관(현대세계에서는 돈도 빠질 수가 없죠.) 등이 고도로 상징화 되어 나타나는 그 우상이 무엇이겠습니까? 혹시 우리는 이런 우상들을 하나님이나 예수님, 십자가로 착각하지는 않습니까?


다음으로, 인디오들이 그렇게 복수심에 불타는 스페인들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정복자들이 뿌려놓은 ‘투우’를 그들도 ‘피의 축제’라는 이름으로 즐기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문화의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고, 억압의 역사가 깊다는 것입니다. 정복자들을 저주하는 인디오들이 정복자들의 문화인 투우를 즐기는 듯한 모습은 마치, 폭력적인 아버지를 싫어하는 아들이 그 아버지를 닮아가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우리의 언어와 행동들이 누구를 닮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