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6:1~4 첫째 인-면류관과 활 2020. 11. 1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해마다 이때쯤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어제가 무슨 날입니까? 10월의 마지막 날이지요! 15171031일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여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의 질의서를 붙인 날을 종교개혁기념일로 정하여 올해가 503년째입니다. 중세교회가 타락하여 성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운동이 종교개혁운동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원리가 몇 가지가 되는데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렇게 정리를 합니다. 이런 원리에서 루터의 만인제사장설도 있고 칼뱅의 오대교리도 있습니다.

 

만민제사장이란 성당의 사제라는 신부들만 제사장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라는 겁니다. 중세시대에 목숨을 걸어야 할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개혁교회에서 목사의 직을 마치 구약의 제사장이나 중세의 사제와 같이 생각하고 있다면 개혁교회의 목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칼뱅의 오대교리란 전전타락,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적 속죄, 불가항력적인 은총, 성도의 견인입니다. 제가 간단하게나마 종교개혁에 대하여 일 년에 한번이라도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봉독이 내용은 지난주에 보았습니다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또 구약에서 말 탄 자에 대하여 살펴보느라고 간략하게 보았습니다. 스가랴서에서 말과 그 탄자를 사방에 보내는 바람이라고 합니다(슥6:5). 바람이란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바람으로도 쓰고 영으로도 쓰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들이 육체의 말이 아니라 영적인 겁니다. 첫째 인을 떼는데 흰 말을 타고 면류관을 쓰고 활을 가졌습니다. 면류관은 승리하였기에 쓴 것이며 활은 앞으로도 적들을 물리치는 겁니다. 그래서 이기고 또 이기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여기서 개혁주의 성경해석도 간략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이 가는데 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데에 멈추며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합니다. 베드로후서 3:15~16절입니다.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2)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억지로의 각주는 사사로이입니다. 성경은 억지로 풀거나 사사로이 풀면 멸망한다고 합니다. 성경으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지 않고 사사로이 다른 것을 증거 하면 안 됩니다.

 

베드로후서 3:17~18절입니다.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이것을 미리 알았다는 내용은 베드로후서 전체를 말하는 내용이지만 3장만 본다면 주님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내용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시작이 되었기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합니다.

 

본문 1~2절에서 흰 말을 타고 면류관을 쓰고 활을 가지고 이기고 이기신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고 그 승리하신 십자가로 재림 때 까지 이기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십자가로 이기신 일은 세상의 물리적인 전쟁이 아닙니다. 시대의 징조와 대입하여 푸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전쟁입니다. 백마 탄 자의 승리를 물리적인 전쟁으로 설명하기에 온갖 시대적인 표징을 말하면서 대 환난과 휴거와 재림의 시기를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도 없이 휴거와 재림을 예측하였지만 다 엉터리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자들을 따라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지 그 십자가의 승리가 무엇인지 봅시다.

 

골로새서 2:12~15절입니다.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2)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연합 곧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를 연합시켜서 함께 살려내신 겁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는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던 우리도 살려내시는 능력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셔서 십자가에 못 박아버림이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 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고 삼으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여기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세상의 통치자와 권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을 십자가로 이기신 겁니다.

 

골로새서 1:13~14절입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흑암의 권세란 공중 권세 잡은 자,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2:2)의 권세입니다. 흑암의 권세를 가진 자를 큰 용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 합니다(12:9). 이런 권세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성공이며 행복이라고 속입니다. 이런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입니다. 이렇게 옮기시기 위하여 하나님과 그 아들이 하신 일을 봅니다.

 

골로새서 1:15~20절입니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여기서 십자가 승리, 십자가의 피, 화평과 화목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2:1~9절입니다. “1 하늘에 큰 1)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1)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2)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이 본문을 볼 때에 자세히 보겠습니다만 이 전쟁이 물리적인 세상의 전쟁입니까? 영적인 전쟁입니까? 영적인 전쟁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사탄을 이기신 영적인 전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말을 타고 전쟁을 하는 이런 내용들은 예수님께서 이 역사 속에 오셔서 하신 모든 말씀과 행위들을 포함하여 십자가에서 완전히 승리하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흰 말을 타고 면류관을 쓰시고 활을 들고 이기고 이기신다는 내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기에 그 십자가로 원수들을 심판하시고 택한 백성들은 그 피 뿌림으로 의의 옷을 입히십니다.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됩니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이루십니다.

 

본문 3~4절입니다. 둘째 인을 뗍니다. 둘째 생물이 말하기를 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붉은 말이 나옵니다. 붉은 말을 탄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립니다.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습니다. 붉은 말을 탄자가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립니다. 화평을 제거하니 서로 죽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심판이 십자가에서 일어나는 전쟁이지만 십자가 이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은 화평을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검을 주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34~39절입니다.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이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분리가 일어납니다. 세상을 사랑함에서 분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세상 사랑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이 세상에서 분리시켜 내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며 거룩한 영이기에 세상 사랑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이 역사 속에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리되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이 됩니다. 그 심판이 화평이 없고 서로 죽이게 됩니다.

 

본문 3~4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둘째 인을 떼니 붉은 말이 나옵니다. 그 탄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립니다.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다고 합니다. 방금 마태복음에서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화평을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검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검이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6:17)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옵니다. 그 말씀의 검에 의하여 이 역사 속에서 베임을 당하는 자들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동일한 말씀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흰 말을 탄자가 면류관을 쓰고 활을 들고 이기고 이긴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은 요한이 성령에 의하여 하늘에 이끌려가서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기까지의 영적인 전쟁을 보는 겁니다. 이 십자가로 인하여 사탄을 이기시는 것이며 동시에 구약의 성도들에게 그 피로 화평하게 되었기에 흰 옷을 입혀서 하늘에 앉히십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그 약속을 믿지 않은 자들은 화평이 제거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는 화평을 이루지만 그 피 밖에는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는 지옥이 됩니다. 이것을 십자가로 이루심이 종말이며 그 종말을 재림 때 까지 밀고 갑니다.

 

중세시대에 토머스 홉스리바이어던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자연인 상태의 인간은 서로 싸우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회 계약설을 말하고 국가를 말합니다. 이 사람은 인간의 자연 상태가 서로 싸운다고 보았지만 성경은 서로 싸우게 된 것을 죄로 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참된 평화가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 예수님은 세상의 힘으로 이루려는 평화가 아니라 십자가로 평화를 이루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십니다.

 

스가랴 9:9~10절입니다.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예수님의 화평을 싫어한 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립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룬 화평의 통치를 받지 않는 자들은 심판입니다.

 

본문 3~4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둘째 인은 붉은 말을 탄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거하여 버립니다. 이 세상에 참된 화평은 없습니다. 참된 화평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 뿌림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그렇게 된 자들은 서로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완전한 화평의 새 하늘과 새 땅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화평이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화평이 제거되기에 서로 죽이는 일만 합니다. 지금 이 세상을 보시면 서로 죽이려고 난리입니다. 이런 상태가 영원히 계속되는 곳이 지옥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과 화목이 되어야 이웃과도 화목이 됩니다. 이렇게 안 되면 지금도 화평이 없고 죽어도 화평이 없습니다.

 

무엇이 복이며 무엇이 재앙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화목하게 된 것이 영원한 복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피를 믿지 않음으로 썩어질 세상의 힘을 의지하려고 남의 평화를 헤치면서까지 살아가는 자들은 영원한 재앙을 받습니다. 그 재앙이란 화평이 제거되며 서로 죽이는 일을 하는 겁니다. 이런 지옥을 지금의 세상에서도 보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창세로부터 예수님이 십자가까지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구분됩니다. 이 십자가로 재림까지 적용하여 가십니다. 십자가의 승리로 십자가의 피로 화목하게 된 자들은 영원한 화평입니다. 그러나 그 피의 공로가 없는 자는 화평이 제거되는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