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8:21-24 결코 다시 2010. 1. 24

 

21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 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오늘 본문에서 ‘결코 다시’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결코 다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을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결코 다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아니하였으면 좋은 것들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싫은 것은 결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았으면 좋을 것입니다. 반면에 나에게 좋은 것들은 결코 다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결코 다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아니할 내용들이 무엇인지를 보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벨론이 멸망당하는 모습과 그렇게 멸망하게 된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멸망하는 모습부터 보겠습니다. 21절에서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면서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서 결코 다시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것입니다. 커다란 맷돌 같은 돌이 바다에 던져지면 다시 올라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다시’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짧은 본문에서 ‘결코 다시’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첫째는 21절에서 바벨론 전체가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할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로 22절에서 악기 소리가 결코 다시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음악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그 노동을 견디게 하는 것이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래만이 아니라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에 악기들이 동원되는 것입니다. 돌, 생일, 결혼, 회갑, 입학, 승진과 같은 일들에 춤과 노래와 악기소리는 인생의 즐거움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이 되는 모든 악기 소리가 ‘결코 다시’는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벨론에서 악기 소리가 멈추지 아니할 정도로 부귀와 사치와 향락이 넘쳤지만 그러나 이제는 결코 다시 그런 악기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한 심판을 말하며 동시에 인생의 즐거움이란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도 보여주는 것입니다.

 

셋째로 세공업자들이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세공업자란 기술자들을 말합니다. 그런 기술자들 중에는 금은보석을 다듬은 귀금속 세공업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세공업자들이 이제는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할 것입니다. 기술자가 없어지고 세공업자들이 없어져서 결코 다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경제가 다 무너진 것입니다. 제레미 리프킨 같은 사람이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을 말하지만 그러나 소유와 노동의 다른 형태를 말하는 것이지 바벨론의 멸망처럼 완전한 멸망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공업자들이 결코 다시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떤 무역이나 경제활동들이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맷돌이란 곡식을 장만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런 맷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곡식이 떨어진 것입니다. 방앗간이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생존의 가장 기본인 양식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도 처절한 멸망과 심판입니다. 한때는 고운 가루를 먹던 자들이 이제는 양식이 완전히 끊어진 것입니다.

다섯째로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비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등불이란 어두움을 밝히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도시나 간에 불이 환하게 많이 켜져 있으면 그곳은 활기 있게 돌아가고 있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도시가 불이 꺼져 버리면 그것은 죽음의 도시가 되는 것입니다. 항구에 불이 사라지면 그것은 더 이상 무역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비치지 아니하는 도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는 도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밤에도 환한 등불 빛이 비칠 정도로 활기찬 도시가 이제는 결코 다시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관혼상제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결혼일 것입니다. 이런 결혼이 없어진다는 것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재생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의 소리가 결코 다시 들리지 않는 곳은 완전한 심판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섯 가지의 모습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바벨론이라는 세상의 삶에 활력과 기쁨을 주는 악기소리, 그 세상이 유지되기 위한 기술, 양식을 가공하는 맷돌 소리, 등불, 신랑 신부의 소리가 없으면 그것은 이 세상의 종말입니다. 우리에게 결코 없어지면 안 되는 것인데 결코 다시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바벨론의 멸망과 심판을 한 개인으로도 봅시다.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생을 전도서12:1-8절은(공동번역) 이렇게 표현합니다. “1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하는 탄식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전, 아직 젊었을 때에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여라. 2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기 전, 비가 온 다음에 다시 구름이 몰려오기 전에 그를 기억하여라. 3 그 날이 오면 두 팔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수문장같이 되고, 두 다리는 허리가 굽은 군인같이 되고, 이는 맷돌 가는 여인처럼 빠지고, 눈은 일손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는 여인들같이 흐려지리라. 4 거리 쪽으로 난 문이 닫히듯 귀는 먹어 방아 소리 멀어져 가고 새소리는 들리지 않고 모든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리라. 5 그래서 언덕으로 오르는 일이 두려워지고 길에 나서는 일조차 겁이 나리라. 머리는 파뿌리가 되고 양기가 떨어져 보약도 소용없이 되리라. 그러다가 영원한 집에 돌아가면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애곡하리라. 6 은사슬이 끊어지면 금 그릇이 떨어져 부서진다. 두레박 끈이 끊어지면 물동이가 깨진다. 7 그렇게 되면 티끌로 된 몸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고 숨은 하느님께 받은 것이니 하느님께로 돌아가리라. 8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또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바벨론의 멸망의 모습이나 한 개인의 죽어가는 모습이나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 개인의 모습의 끝이며 또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의 최후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서에서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잔치 집에 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서 유익한 것이 하나 있다고 하였습니다. 병자 심방과 초상집에 자주 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미리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영광으로 향하고자 하는 것이 부질없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이나 바벨론이라는 이 세상 자체가 무너져 내려서 결코 다시 보이지 않게 되는 일들이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바벨론이 멸망한 다는 것은 곧 그 속에 속한 사람들까지 다 심판을 당하는 것인데 왜 심판을 당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23절 끝에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고 합니다.” 왜 이것이 멸망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까? 21절에서 23절 중간에 결코 다시 들리지 아니하리라고 여섯 번째 결코 다시를 말하고서 바로 상인들과 왕족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 사이에 왜냐하면 을 넣어야 자연스럽습니다. 결코 다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아니하게 되는 이유는 상인들과 땅의 왕족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상인들과 땅의 왕족들 때문에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에스겔 28:1-5절입니다.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3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5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두로가 무역으로 부강하게 되니 그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사야 47:7-9절입니다. “7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들의 종말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도다 8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9 한 날에 갑자기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주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바벨론도 역시 무역으로 부강하게 되어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하는 말이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멸망하는 이유가 첫째로 너의 상인들이 땅의 왕족들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런 것입니다. 바벨론과 무역하여 부하여 지면 그 결국이 역사상의 두로와 바벨론처럼 나는 신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모습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마음속으로 원하는 바가 다 이러합니다. 속에서 이렇게 원하지만 형편과 능력이 되지 못하여 이대로 살아갈 뿐이지 우리에게도 형편과 여건이 허락되면 나는 신이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최초로 유혹받은 내용입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이 결국 신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심판인 것입니다.

둘째로 23절 끝에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다고 합니다. 두로나 바벨론의 영광이라는 것이 온 세상을 미혹 할 만 한 것입니다. 우리가 후진국이었을 때에 어떻게 하든지 개발도상국가 들어가기를 원하였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오직 경제부국을 위하여 힘을 썼습니다. 이제는 개발 도상국가 중에서 앞장선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세계제일이 되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벨론이 온 세상을 미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국가나 간에 결국은 어디로 향하는 것입니까? 나는 신이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방향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멸망당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을 성공이라고 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세상이 하면 그것이야 세상이 원래 가는 방향이기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그런 방향성을 보면서 그 결국이 멸망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은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가 오히려 그런 멸망의 길로 가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어렵게 된다면 교회들이 앞장서서 경제부흥과 구국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교회에서 세상의 멸망을 이야기하면 핍박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셋째로 바벨론 멸망의 궁극적인 이유는 24절입니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멸망을 말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환경문제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이티의 지진과 혹한과 혹서의 피해들이 연일 보고 되고 있는 이런 때에 인류의 종말을 자연 환경과 연결하여 많이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종말의 궁극적인 이유는 의인의 피를 흘린 땅이기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에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33-36절입니다.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이런 피의 복수가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퍼지는 것이 이 세상의 종말이라는 것입니다. 의인들이 증거 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린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란 이 세상이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 그 아들의 피로 만들어진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세력은 이 복음을 싫어하여 이들을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싫어하는 이 세상 전체가 바벨론이기에 이 세상은 멸망하여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