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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1~16 차별이 없는 나라 2016. 11. 20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1)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2)제 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3)제 육시와 4)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5)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율법을 잘 지킨 부자청년의 이야기부터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부자 청년은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면서 무엇이 부족하냐고 다시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네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부자였기에 근심하며 돌아섰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그러면 누가 천국에 들어가겠느냐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은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시 묻기를 자신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으니 우리가 무엇을 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자는 현세에서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한다는 말씀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나 우리가 생각한 보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는 모습임을 보았습니다. 섬기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이 말씀은 오늘 말씀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생각과 전혀 다른 차원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의 품꾼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목사가 제일 먼저 온 사람은 하루 종일 빈둥빈둥 놀면서 일했고 제일 나중에 온 사람은 한 시간 일했지만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는 설교를 들어보았습니다. 이것은 전혀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 세상은 공짜가 없는 세상입니다. 일한 대로 받아 가는 것입니다. 일한 시간만큼 받지만 개인의 능력의 정도가 다르기에 적게 일해도 많이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하는 내용은 꼭 같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차이로 인하여 연봉의 차이가 엄청납니다. 이런 세상에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로 천국을 설명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천국이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이런 나라라면 아무도 천국을 위하여 열심히 일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하루에 한 시간 일한 사람의 품삯이 동일하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공산주의가 왜 망했습니까? 사람의 탐심을 계산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자본이 특정 소수에게 집중되고 절대다수의 민중이 가난해지는 것을 보고 제도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재산은 국가의 소유입니다. 그리고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한 대로 가져가자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공장의 제품들 질이 떨어집니다. 집단 농장의 일을 대충하고 눈가림만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인간의 이기적인 탐심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개인의 탐심을 인정하여 사유재산을 인정함으로 아직 살아남아 있습니다만 이러한 자본주의의 시각으로 오늘 말씀을 보면 이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런 천국의 비유를 이야기하면 공산주의자라고 몰아 부칠 것입니다.

 

오늘 본문1~2절을 봅니다. 봉독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다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상가에 일꾼들이라는 사무실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일꾼들이 나와서 기다립니다. 그러면 이른 아침부터 일꾼들을 부르기 위하여 봉고차가 와서 몇 사람씩 태워갑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일꾼을 찾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인력시장에 오는 분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루 일을 하지 못하면 그날은 공치는 날입니다. 일을 할 수 없으면 화가 나서 아침부터 술을 마십니다. 돈을 벌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미안함을 술로 때우는 것입니다. 술에 취하여 집으로 돌아가면 집안은 공포분위기가 됩니다. 그뿐 아니라 양식이 떨어지면 가족이 굶어야 합니다. 제가 조금 상상한 내용이지만 지금도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오늘 말씀도 일할 것이 없어서 놀고 있는 날품팔이 하는 사람들을 부르시는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이러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간은 해 뜨는 시간부터 해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른 아침이라면 아침 6시 경으로 봅니다. 이들은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이들에게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삯을 정하여 포도원에 들여놓습니다. 집에서 굶주리고 있을 처자식을 생각하면 주인이 불러준 것만으로도 기뻐서 신나게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일을 마치고 품삯을 받으면 양식을 사가지고 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할 데가 없어서 굶주려야 한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루 종일 일하여도 기쁨으로 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 3~7절입니다. 봉독 이른 아침이 아침 6시라면 제 삼시는 오전 9시입니다. 오전 아홉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 것입니다. 이른 아침에도 그들은 일할 곳이 없어서 놀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실직자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주인은 그들에게도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상당하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에게는 한 데나리온이라고 정하지 않았습니다. 오전 9시에 부름을 받았기에 하루 품삯은 다 못 받더라도 어느 정도는 받을 것을 생각하고 일하러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12시와 오후 3시에도 그렇게 하고 오후 5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있느냐고 하니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다고 합니다. 주인은 이들도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합니다. 오후 5시는 한 시간만 일하면 마치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주인은 왜 포도원에 이런 자들을 들여 놓는 것입니까? 주인은 일의 능률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한 선한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8~12절입니다. “봉독 저물매 주인이 청지기에게 품꾼들을 불러서 품삯을 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일 나중에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오후 5시에 와서 한 시간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상당하게 주겠다는 것은 주인의 마음대로 적당하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놀라운 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 시간 일했으면 기대하기를 하루 일당이 십 만원이라면 만원만 주셔도 감지덕지입니다. 만원으로 쌀도 한 봉지 사고 반찬도 좀 사 들고 갈 수가 있습니다. 가족들을 굶기지 않아도 됩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먼저 온 자들이 더 받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오후 3시에 온 사람도 12시에 온 사람도 오전 9시에 온 사람도 이른 아침에 온 사람도 다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 일당을 다 주었다면 세 시간 일한 사람은 당연히 저 사람보다는 더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동일하게 다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이른 아침에 온 사람들이 집단으로 반발을 한 것입니다. 집 주인을 원망하기를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는 것이 공정한 일이냐고 따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도 처음에는 얼마나 기뻤을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한 시간 일한 사람과 자신들을 같이 품삯을 주는 일에 원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12시간 일한 사람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원망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이 이런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천국은 일한 대로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나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같은 상을 받는다면 천국을 위하여 열심히 일할 마음이 있겠습니까? 평생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순교까지 한 사람과 한 평생 강도짓만 하다가 사형을 당하는 죄수가 단지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으로 동일하게 상이 주어진다면 그런 천국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과 얼마나 반대되는 천국의 개념인지 아시겠습니까? 원망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본문 13~16절입니다. “봉독 친구라고 부르시면서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은 충분히 자신의 품삯을 받은 것입니다. 주인이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이때 주인은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라고 하십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오늘날 이 땅의 부자들은 갑 질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너희들이 왜 지랄들이냐고 합니다. 그런데 이 천국의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그 부유함으로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을 한 것입니다. 이 선함이 하루 종일 일한 사람에게는 악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 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늦게 된 자가 열심히 한다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주인이 선하신 나라라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도 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이 불러주시지 않으면 그도 굶주릴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런데 하루에 한 시간 일한 사람과 같은 품삯을 주니 그 은혜는 사라지고 원망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일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율법을 다 지켰다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입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영생이신 예수님을 눈앞에서 두고도 자기들의 소유를 버리지 못하여 돌아섰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으니 무엇을 받겠느냐는 질문의 결론이 오늘 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비유는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려줍니다. 사람의 일한 대로 받는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하기 나름의 나라가 아니라 오직 주인의 선하심으로 이루지는 나라임을 보여줍니다.

 

로마서 4:1~8절입니다.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과 다윗이 무엇을 받았습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언약이며 다윗의 언약입니다. 이들의 어떠한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면서 신약이 시작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께서 천국이 어떤 곳인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그들의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받는다면 그들은 탈락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무슨 선한 행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일한 것도 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원리가 아니라면 아브라함도 다윗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시편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일한 것도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김을 받는 자의 복에 대하여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일한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한 일이라고는 죄 밖에 지은 것이 없다는 고백이 다윗의 시편 51편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의 비유처럼 천국은 주인의 선하심으로 용서 받아 가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일한 행위의 대가로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가 일한 행위대로 상급의 차등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차별이 없는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상이 되는 나라입니다.

 

고린도후서 8:9~15절입니다.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1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은 연보에 대한 말씀입니다. 왜 오늘 본문과 연결시키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포도원 품꾼들이 일을 많이 하나 적게 하나 받은 품삯이 같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일한 능력대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일할 자리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대로두면 결국 굶어죽어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선하심으로 그들을 포도원의 일꾼으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주인의 부요하심을 자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신 나라입니다. 그 분이 누구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은혜가 어떤 은혜입니까? 부요하신 이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에 부요한 것입니까? 믿음에 부요하고 은혜에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연보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같은 은혜를 받은 자들끼리 나눔으로 균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나 사건과 같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물질이 넉넉하신 분은 연보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연보를 더 하셔서 성도들이 다 균등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억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자원과 감사함으로 할 수 있으면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구제연보를 합니다. 이것도 생색내는 정도가 아니라 평균케 되는 정도까지 가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씀에 누가 원망이 나오겠습니까? 자기 힘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요하신 분으로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오늘 세례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떡과 포도주를 받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더 많이 받고 더 적게 받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죄인이라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죄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비워 우리 자신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다 영원한 멸망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의 그 사랑과 긍휼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워 십자가에서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살과 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자들에게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한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10~11절입니다.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닙니다. 온갖 세상의 조건으로 줄을 세우고 차별을 하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그리스도의 몸은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주의 살과 피를 기념하면서 정말 일한 것도 없이 의롭다 함을 받은 이 놀라운 은혜가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그 불법이 사함을 받고 그 죄가 가려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임이 마음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된 자들은 한 몸이기에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