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23~33 부활 때에는(2) 2017.1. 29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지난주와 같은 본문으로 부활의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우선 지난주에 대한 말씀을 잠시 요약하겠습니다. 모세오경을 문자대로 믿는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부활이 없다는 근거로 질문한 내용이 신명기 25:5~6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형이 후사가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대를 이어주게 하는 율법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곱 형제가 자식이 없어서 한 아내와 결혼하였다면 부활 때에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에 오해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부활 때에는 시집도 안가고 장가도 안가고 천사들처럼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출애굽기 3:6절의 말씀으로 답변을 하셨습니다. 모세오경만 믿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이 없다는 질문에 예수님은 모세오경으로 부활에 대하여 답변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역사 속에서 죽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난주에 어느 권사님을 만났는데 자신의 남편이 하도 애를 먹여서 이혼하려고 생각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보고서는 천국에서 이 남편과 함께 영원히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이혼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잠시 이 땅에서만 남편이지 천국에는 그런 세상의 관계가 아님을 알았기에 견딜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차원과 전혀 다른 부활의 세계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논증으로 마태복음 17장의 변화산 사건과 요한복음의 나사로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셨을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동시에 목격합니다. 역사의 현장이 갑자기 묵시의 현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건을 목격하는 순간 여기가 좋다고 했습니다. 세상 모든 일들이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자신들은 초막이 없어도 좋다고 여긴 곳입니다. 부활의 세계를 잠시 맛본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살려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이시며 생명이시기에 마지막 때에 부활하는 정도가 아니라 죽은 나사로가 죽은 것이 아니라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나사로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생명과 부활안에 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고린도전서 15:1~11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부활이 없다는 말을 듣고 다시 복음을 요약하여 전하면서 부활에 대하여 말씀을 전합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베드로와 제자들과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셨으며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태어난 자 같은 자신에게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목격자들이 바울이 이 서신을 써는 순간까지 대부분 살아 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교회를 핍박한 사람이라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할 수 없지만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 부활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복음을 전한다는 사람들은 왜 부활의 내용보다 십자가를 더 많이 말하는가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후에 성령이 임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 하였습니다. 그 십자가 안에 부활이 같이 있는 것입니다. 이 역사 속에서는 부활이 보이지 않습니다. 십자가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춘천의 어느 교회는 부활의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어떤 분의 질문을 해서 저도 한두 번 들어보았습니다. 처음에 십자가 복음을 전했는데 교회가 부흥을 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복음을 전하자 교회가 부흥이 되고 전국에서 배우려고 오기도 하는 그런 교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활의 복음이라고 간증하는 내용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성을 증거 하기보다는 부활의 복음을 듣고 세상의 잘못된 취미와 습관들이 끊어지고 고쳐졌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영이 임한 사도들은 그런 간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증거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12~19절입니다.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같은 복음을 들었는데도 부활이 없다는 자들이 고린도 교회에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듣고 싶은 대로 듣는 모양입니다. 사도들이 전하여도 이렇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이런 자가 있었기에 이러한 부활의 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죽은 자가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도 헛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다시 사심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 곧 죽은 자도 망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잔다는 것은 안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언약 안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19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합니다. 부활의 말씀을 전하면서 왜 이 말씀을 전합니까? 제가 앞에서 춘천의 어느 교회를 예로 들었습니다만 이들이 부활의 복음이라고 하면서 간증하는 내용들이 제가 들어본 것은 거의 다다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부활이 없고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 곧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부활의 영이 임한 사도들이 간 걸음들이 어떤 걸음들이었습니까? 부활의 영 곧 성령이 임한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도 순교하였습니다. 모든 사도들과 제자들이 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삶이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뿐이라면 부활의 영이 임하여 살아간 자들이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이어지는 20~24절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첫 열매가 있다는 것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의 부활도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사망이란 한 사람 아담으로 왔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로 부활이 일어납니다. 아담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자가 삶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차례대로 된다는 것은 세대주의적인 시간 계산이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기에 그리스도 재림 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부활 할 것이며 그 후에는 믿지 않는 자들도 몸의 부활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의 부활이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마지막이며 주님의 재림 때에 일어날 일입니다. 그 날에는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를 멸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세들도 사탄의 세력들도 다 멸하시고 그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십니다.

 

25~28절입니다.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그 원수를 발아래 둘 때까지 왕 노릇합니다. 이미 그리스도는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곳에서 왕으로 일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면 죄와 사망은 언제 멸하시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죄와 사망을 영원히 멸하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다고 하는 말씀은 시편 8:6절에서 인용합니다.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두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고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말씀과 연결된 말씀을 더 찾아봅니다.

 

히브리서 2:5~18절입니다. “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8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4)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죄와 사망조차 이긴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이 역사 속에서는 그러한 예수님의 왕 노릇하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8절에서 왕 노릇 하시지만 아직 보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다는 것은 죽음을 맛보시기 위한 것입니다. 천사는 죽을 수 없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몸으로 오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을 맛보시는 것입니다. 죽음을 맛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죽으십니다. 그런데 그 죽음으로 죽음을 세력을 가진 마귀를 멸하시고 자기 백성과 연합하여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권세아래 죽음을 두려워하며 사는 자들을 해방시켜 생명의 나라로 옮기시기 위하여 구원의 창시자가 고난을 받으심으로 이루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왕 노릇하고 있기에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서 의와 생명의 나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이 역사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이것을 받아들였기에 죽음조차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9~34절입니다.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2)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2)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고린도 교회에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세례를 잘못 이해하여 그렇게 한 것이기에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왜 그렇게 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 대한 바울의 자랑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죽는다는 것은 복음을 위하여 죽는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맹수와 싸우는 식으로 살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합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소망이 있기에 믿음의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내일 죽을 것이니 먹고 마시자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있기에 바울이 경계를 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35~44절입니다.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부활이 어떻게 일어나느냐는 말에 대한 설명입니다. 씨앗을 뿌리는 비유로 설명을 합니다. 저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전도할 때에 감자 심는 비유로 말합니다. 감자가 한 쪽 귀퉁이가 썩어서 냄새가 나더라도 감자의 씨눈만 살아있으면 그런 감자는 심으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감자를 맺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싱싱한 감자라도 씨눈이 없는 감자는 심으면 그저 썩을 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씨눈과 같기에 사람도 땅에 묻으면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형체가 있고 땅에 속한 형체가 있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욕되고 약한 것이 영광스럽고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의 몸이 있기에 영의 몸도 있습니다. 영의 몸이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임함으로 이 영으로 인하여 부활하여 얻는 새로운 몸을 말합니다. 이것이 몸의 부활입니다. 이러한 몸의 부활은 두 종류라고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담긴 자는 생명의 부활로 그렇지 않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옵니다.

 

45~50절입니다.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살려주어야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육의 사람이며 다음이 신령한 사람입니다. 첫 사람의 땅에서 났고 흙에 속한 자입니다. 둘 째 사람은 하늘에서 난 자입니다. 우리가 아담의 형상을 입은 것처럼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은 지난주에 본대로 변화산의 그 형상입니다. 바울사도가 만난 그 부활하신 주님이시며 사도요한이 계시록에서 뵌 바로 그 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형상을 입어 그의 유업을 받는 것은 혈과 육으로는 안 됩니다. 혈과 육의 노력이란 썩는 것을 받을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이렇게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을 구하게 되는 것은 혈과 육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임함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51~58절입니다.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사도가 비밀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 비밀은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마지막 나팔을 울려 퍼집니다. 그러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 합니다. 이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함을 입겠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그 날에서는 사망을 삼키 이기리라는 이사야 25:8절의 말씀이 성취가 되는 것이며 사망에 네가 쏘는 것이 어디냐는 호세아 13:14절의 말씀도 성취가 되는 날입니다. 호세아의 이 말씀은 바울사도는 좀 더 부연하여 설명하기를 사망이 쏘는 것은 죄인데 죄의 권능을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이러한 권능이 율법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완성이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의롭다고 하셨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이 승리란 죄와 사망에서 승리하신 그 주님의 승리를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이미 믿음으로 받은 자들이 성도이며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형상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소망으로 견실하게 되며 흔들리지 말라고 합니다. 이러한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합니다. 이러한 주의 일이란 복음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고가 헛되지 않는 것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14~17절입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성령이 임한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예수님이 아빠 아버지로 부른 그 하나님을 우리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그 영광의 나라를 상속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8~23절입니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하나님의 영 곧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는 세상의 허무함을 아는 자들입니다. 세상이 허무한데 굴복하며 탄식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압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을 사랑하는 일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아는 자들이 성령이 임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 곧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은 이 땅에서 탄식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탄식은 소망 없는 자들의 한숨이 아닙니다. 몸의 속량을 기다리며 탄식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탄식하며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소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망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그 부활의 때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날까지 믿음으로 참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믿음이 없기에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탄식하며 기도하시고(8:26) 예수님께서 보좌 우편에서 기도합니다(8:32). 그러므로 성도는 반드시 그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여러 가지로 탄식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우울증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약물을 의지해야 하고 알코올을 의지해야 잠을 자는 자들도 있습니다. 모든 근육이 힘을 다 잃어서 인공호흡기로 살아가는 형제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암으로 수술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 몸은 그렇게 약하여지고 늙어지고 병들고 죽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 고통이 심하면 그냥 탁 죽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견딜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그분이 끝 날까지 이루어내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사람은 비록 탄식을 하지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을 입을 것입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몸을 입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그 영광가운데 계신 그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 날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활의 날에 우리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처럼 우리도 그렇게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볼 것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이 소망으로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