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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에베소서 1:15~19 지혜와 계시의 영 2012. 7. 1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지난주에 이어서 바울의 기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를 보면 우리가 평소에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 한국교회라는 토양에서 자랐기에 한국교회가 대부분 구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기도인줄 알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우리의 조상들도 범사에 종교성이 많아서 무엇에나 잘 빌었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을 보고서도 빌고, 동네 입구의 정자나무에도 빌고, 동네 안의 이상한 바위에도 빌고, 마을 뒷산의 샘물이 나오는 곳에서도 빌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자세로 빌다가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평소에 빌든 그 모든 대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말하면서 이런 하나님께 비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비는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비는 대상만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피조물에 빌었지만 이제는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비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비는 정성이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기도로 연결되어 세계에서 가장 기도 많이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에 금요철야까지 온갖 기도회도 부족하여 산골짜기 마다 기도원이 생기고 심지어 도심에서 온갖 기도원이 생겼습니다. 그런 곳에서 그렇게 많이 비는 내용들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없어도 본성적으로 비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기도를 보면 우리가 평소에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제가 청년 때에 박영선 목사의 에베소서 강해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기도하는 내용이 없다는데 우선 놀랐습니다. 그때부터인지 저는 기도를 잘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이 결국은 다 나를 위한 것이더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하는 것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이방인이나 구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정, 나의 회사, 나의 교회, 나의 나라만 구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면 거의 다 공통된 말이 그러면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기도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구하지 말라는 것은 구하고 구하라는 것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오히려 복음을 듣게 되면 정말 구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한 바울사도의 기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사도가 무엇을 구하였습니까?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데 기도의 처음이 감사였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3년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감옥에 있는데 에베소 교회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 안의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믿음과 사랑이 나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제는 그런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예배당 건물을 지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구제와 선교를 더 많이 하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사회사업을 늘리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미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왜 이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까?

 

17절을 봅니다. 먼저 누구에게 기도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몇 달 전에 어떤 분이 신앙상담코너에 성령님께 기도해도 되느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시니 성령님께 기도해도 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이라는 단어를 한글성경에서 검색하면 197번 나오는데 성령께 직접 간구하는 내용은 한 번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인도하시고 지시하시기는 하시지만 직접 성령께 기도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령이 임하신 것은 성령이 독자적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뜻대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33절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이러한 성령이 오시면 자기 백성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면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아마 성령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흔히 구약은 성부 시대, 신약은 성자 시대, 지금은 성령 시대로 구별하면서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기에 성령님께 구하여야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은 늘 함께 일하셨습니다. 그러함에도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사도가 기도하는 대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종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실 때에도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고 하신 분을 우리도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영광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 아버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은 성령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임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더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얼마나 피상적이고 자기의 한계 내에서만 하나님을 말하는지 10명을 만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물어보면 10명의 하나님이 다 다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을 안다면 한 하나님으로 고백이 될 것입니다.

 

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모르는 것일까요?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온 우주만물에 보여주셨지만 인간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찾아서 경배한 모습이 바로 우상이었음을 로마서 1:21-23절에서 봅니다.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어디에 나타내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사람들이 헛된 영광, 사탄이 심어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이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영광에 눈이 멀어서 참된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세상의 지혜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7절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만 예수님을 압니다. 이 말씀은 세례요한조차 예수님에 대하여 의심하였을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기대한 하나님과 실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 너무나 달랐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계시를 주시면 우리가 아버지도 알고 예수님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의 말씀은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달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사도행전 2:33절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오른 손으로 높이시고 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아들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아들이 받아서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예수님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이것은 성령이 어떻게 자기 백성에게 임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면 아담의 타락 이후에 어떤 인간도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유일하게 기록하여 남긴 것이 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는 사람들마다 또 제각각 해석들이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의 욕심에 이끌려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늘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알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요한복음 17:1~26절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요한복음설교 때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전체를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바울의 기도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유의하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봉독” 바울사도는 예수님의 이 기도를 압축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모르기에 예수님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자들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를 알게 하셔서 영생을 얻도록 예수님은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지상에서 한번만 하시고 마치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롬8:34).

 

바울사도가 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도록 기도하시는지 예수님의 기도와 비교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이런 기도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이 세상의 신이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도록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심으로 하나님을 바로 알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도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은 세상에서 제일로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도 특별한 열심을 낸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정 반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도를 합니다.

 

고린도전서 2:1~16절을 봅니다. “봉독”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두렵고 떨었다고 합니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혜는 세상의 어떤 지혜로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예비하셔서 감추어두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지혜를 사람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왜 십자가에 못 박았느냐고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밖에 없었다는 죄인 된 인간의 실존,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없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함으로 바울이 이런 계시를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십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이 가려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3~6절입니다. “봉독” 이 세상의 신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선악과의 유혹을 받은 아담의 후손들답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영광인줄 알고 달려가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이런 흑암의 권세에 있는 우리들을 어두운데 빛이 비치라하신 그 창조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더욱 부어주심으로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알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더 풍성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요10:10).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