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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에베소서 1:15~19 그 기업의 영광 2012. 7. 15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오늘은 18절 후반부를 중심으로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서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것임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오늘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이라고 하면 부족하여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들을 말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당신은 너무나 내세 지향적이라서 현실에서 책임감이 없다는 말을 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내세 지향적이 되지 않으면 저는 성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지난주 요한일서 2:15~17절에서 본 말씀처럼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3장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19절에서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드리면 여러분은 이런 말씀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내세 지향적이라면 내일 죽을 것인데 오늘 먹고 마시자고 하면서 살자고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31~34절을 봅니다. “봉독” 성도 중에 가장 내세 지향적인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살았습니까? 성도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2:2~4절입니다.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을 보고 왔습니다. 바울은 성도에게 주어질 이 영광의 기업의 풍성함을 보았기에 자신은 빨리 죽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사명 때문에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인용한 말씀이 다 바울사도가 전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처럼 내세 지향적인 사람이 없지만 바울만큼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이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천국을 소망한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우니 빨리 죽어서 천국이나 갔으면 좋겠다는 그런 도피처의 천국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세 지향적이라고 해서 세상에 관심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개혁하고 세상을 바꾸자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소망으로 인하여 자기 소유 늘리는 재미로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2:13~21절을 봅니다. “봉독”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자신의 형에게 명하여 유산을 자기에게 나누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아마 형이 놀부처럼 다 가로챈 모양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는 그런 재산을 나누는 재판장으로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정당하게 물려받는 것이 왜 탐심입니까? 이것이 탐심이 되는 이유는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유만 넉넉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땅에 소망을 두고 물질의 소망을 두고 살기에 어리석을 부자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부자는 자기를 위하여 재산을 축적하였지만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것은 바로 이웃에 대하여 인색한 사람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이 쌓아둔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오늘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재물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의 삶을 지향하며 사는 우리들에게 이런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에 속한 기업의 영광에 눈 뜨게 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들에 의하여 복음이 증거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복음이 전해진 역사만 보아도 처음에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구제단체를 만든 사람들이 다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고생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사재를 털어서 헌신하였습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입니까?

 

이번 여름 성경학교 주제가 ‘나는 예배 자’입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에 한 여인을 찾아가신 예수님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그 말씀이 주제입니다. 그 예배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면 그때부터 예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이 예배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느냐는 질문에 휴대폰을 드릴 수 없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는 휴대폰을 맡길 수는 있지만 드리지는 못하겠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는 전자제품을 드리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애완동물은 드릴 수 있지만 자신의 목숨은 드리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오늘 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영광의 기업을 성령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자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기에 세상에 것들을 악착같이 소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라도 자신의 소유를 더 늘이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살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제가 종종 말씀드리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세상의 것들을 늘이려고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하고 뇌물도 주고 그럽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하늘에 소망을 둔다고 하는 자들도 자기들과 똑 같이 인맥을 동원하는데 세상 사람보다 더 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병이 생기거나 법정 문제가 생기면 교인 중에 전문가 없는지 찾습니다. 그 정도야 봐주겠는데 여기에 누구까지 동원합니까? 하나님까지 동원하여 자기들에게 특혜를 달라고 하는 이런 자들이 밉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땅의 기독교가 욕을 얻어먹는 90프로 이상의 이유가 이런 것들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리처드 도킨스라는 사람의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내세가 있다면 죽는 것을 기뻐해야 할 텐데 왜 그렇게 죽기를 싫어하는지를 보면 당신들이 말하는 내세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형태를 보면 도대체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고 믿는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업에 다시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에 대하여 성경은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기업이 된다는 것과 이런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기업이 된다는 것은 신명기 32:9절입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그리고 너는 내 것이라고 부르시고(사43:1) 값을 주고 산 것이라고 합니다(고전6:19,20).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기업인 성도가 받을 그 영광의 기업이 풍성함이 무엇인지 보려고 합니다.

 

로마서 8:14~18절입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성령이 임함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은 아들이기에 아버지의 상속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이 고난은 하늘의 것을 상속받기 위하여 땅에 속한 것을 떼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극적인 고난이지만 적극적인 고난은 바울과 같은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표현이 소극적이고 적극적이라고 하였지만 둘 다 하나님의 소유된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들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49~52절입니다.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첫 아담에 속한 자들이 다 썩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는 자들은 썩지 아니할 것을 받습니다.

 

베드로전서 1:3~7절입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이 놀라운 하늘의 기업의 영광을 성도가 받습니다. 이미 약속으로는 받은 자들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재림하실 때에 우리의 몸도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입니다.

 

베드로후서 1:3~4절입니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썩을 것이란 이 세상의 정욕에 속한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하나님의 기업으로 부름을 받은 성도가 받을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입니다.

 

요한일서 3:1~3절입니다.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그와 같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의 몸을 우리고 입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보았던 그 영광의 몸을 말합니다.

 

빌립보서 3:17~21절입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우리의 기업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의 황금보석으로 꾸민 집이 성도안의 기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이 성도의 영원한 기업입니다. 우리의 이 낮은 몸을 예수 그리스도 재림하실 때에 그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