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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19~23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 2012. 7. 29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바울사도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마음의 눈을 밝혀서 알게 하여 달라고 간구하는 세 번째의 내용입니다. 첫째가 부르심의 소망이며 두 번째가 그 기업의 영과의 풍성함이었습니다. 오늘은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그의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는 20~23절까지 증언하고 있습니다. “봉독”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능력보다는 우리가 평소에 좋아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구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능력은 내가 세상에서 영웅 되는 능력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개그 콘서트에 네 가지가 없는 사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인기 없는 남자, 촌스러운 남자, 키 작은 남자, 뚱뚱한 남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세상은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세상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많이 가진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스펙을 쌓아가는 훈련을 합니다. 포트폴리오는 초등학교 때부터 만들어갑니다.

 

스펙이나 포토폴리오에 대하여 처음 들으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스펙(specification)은 영어에서 온 것이지만 영어의 뜻보다는 한국에서 신조어가 되어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 뜻은 “구직자 사이에서 학력, 학점, 자격증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포트폴리오(portfolio)는 원래는 서류철을 말하는 것인데 지금은 자신의 이력과 능력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잘 정리하여 자기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능력 있게 만들기 위하여 초등학교 때부터 포트폴리오와 스펙 쌓기를 하고 있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로 오면 교회에서도 자신들의 능력을 채워달라고 합니다. 설교도 그렇게 합니다. 스펙이니 포트폴리오니 하는 그런 복잡한 말은 잘 모르고 또 그렇게 할 능력도 안 되지만 전능하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 기도 많이 하고 헌신충성봉사하면 세상의 어떤 능력자 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설교를 듣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불 가리지 않고 설교한 그 내용대로 실천하려고 합니다. 더구나 성경의 인물들을 세상의 성공의 법칙에 맞추어 설교를 하면서 아무른 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 충성하여 세상의 성공 자가 되었다는 설교를 들으면서 두 주먹 불끈 쥐고 나도 그런 성공 자가 되겠다고 덤벼듭니다.

 

나의 정성으로 남편과 자식의 능력이 더하여진다면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이 땅의 엄마들의 마음입니다. 그러한 교육열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간다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부러워한다고 하지만 저는 이런 모습이 이 땅을 영원히 망치는 길로 보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달려가게 만듭니다. 이것도 세상의 정욕이지만 세상의 것들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그때부터 하는 일이라고는 더욱더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신이라고 여기면서 살아가다가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말해지는 능력들이 어떤 것들입니까? 서머나 교회 카페에 교회를 옮겨야 하느냐며 공개적으로 질문한 내용의 일부를 옮깁니다. “저희 목사님은 사업을 크게 하시다가 중도에 목회자가 되신 분인데 주일이나 수욜, 금욜 철야 때도 설교말씀은 한결같으신 "열심히 기도하여 복 받아 잘살자"입니다. 물론 전 늘 불편하죠! 목사님 당신이 땅 투자로 수십억 자산가가 되신 분이셔서 그런가? 첨에는 이해도 했습니다. 근데 마치 목사님 말씀을 계속 듣다보면 제가 절에 와 앉아있는 건지 예배당에 있는 건지 착각이 들 정도니까요. (참고로 전 구원받기 전 온 집안이 열심히 절에 다니며 굿이며 보살 집을 수시로 다녔었죠). 지방에서 큰 교회를 다니며 믿음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목사님들의 말씀을 듣거나 믿는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 혼자생각하기엔 '그런 건 무당한테 비는 게 빠른데' 왜 하나님한테 저렇게 기도하라고하나 하며 정말로 답답해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없어서 마음의 눈이 밝아지지 아니하면 세상의 썩어질 것들, 영원하지 못한 것들, 죽음을 이기지 못하는 것들은 하나님의 능력인양 오해하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도하는 이유를 다시 보아야 합니다. 왜 세상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마음의 눈을 밝혀달라고 하는지 말입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면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에게 베푸신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19절을 봅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힘을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라고 합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위력으로 일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길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 믿으라고 하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내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믿으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온갖 좋은 말들을 전도하는 사람이 합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보고 믿든지 아니 믿든지 결정을 내립니다. 이런 식으로 믿게 되었다면 이것은 자기의 신념이지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능력으로 믿을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2:1절에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을 뻔 했던 자가 아니라 완전히 죽었던 자라는 말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감각자체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도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서 예수를 믿는다고 나올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니 전도를 해도 십자가의 도를 바르게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사하는 곳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전도를 테크닉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두 날개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VIP초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무슨 백화점입니까? 모든 장사하는 곳은 VIP고객을 따로 관리합니다. VIP고객을 따로 관리하는 것은 그들의 인격이 고상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능력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에게서 나올 것이 죄 뿐이라고 합니다. 이런 인간들을 좋게 하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바울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불의에 나타난다고 외치는 곳입니다. 교회로 오는 것은 이 세상에 대하여 죽는 자리라고 날마다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은 가정의 행복이 아니라 가정의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 만 악의 뿌리라고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기에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러한 죄가 하나님을 살해한 죄라고 해야 합니다.

 

이러한 전도를 듣고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일이 과연 일어날까요? 기분 나쁘다고 돌아가는 자가 분명히 나타나야 바르게 전도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였는데 모든 사람이 다 칭찬하면 거짓 선지자입니다. 누가복음 6:26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거짓 선지자들에게 모든 사람이 칭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책망하면서 회개하라고 외쳤는데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나온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힘의 능력으로 믿게 된 것입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믿게 된 자들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지 알기를 구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힘의 능력을 따라 믿게 된 자들에게 베푸신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무엇입니까?

 

20절을 봅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실망하셨습니까? 아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내가 예수 믿기 처음부터 믿은 것이고 그것 말고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한 사도들과 초점이 맞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능력이라고 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하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능력이라고 하는 것들은 무엇을 이기지 못합니까? 죽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죽음을 이기지 못할 뿐 아니라 세월을 이기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을 우리가 사용하지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없는 한 인간은 다시 썩어질 것에 모든 것을 투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신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가리고 있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제가 복음 칼럼 란에 정판옥 목사의 글을 한편 올려놓았습니다. 부분을 인용합니다. “성도라면서 여전히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 불평을 하는 것은 자신이 죽음에 서서 산다는 것을 모르는 불신자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짜증이 나고 걱정이 생기고 근심이 일어나고 불평이 날 때마다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는 죽음의 흔적을 발견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무더운 여름날에 짜증, 근심, 불평이 날 때 마다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는 죽음의 흔적을 발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피 흘림의 은혜 아래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만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삶의 목표가 분명해 질 것이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삶의 현장에서 죽음의 흔적을 볼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의 은혜아래 무릎을 꿇어야 삶의 목표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수요일에 에스겔서를 보고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지 못하는 자들이 이것은 내가 만들었고 이것은 내 것이라고 교만을 떨고 있는 자들이 바로 왕이며, 나는 신이라고 교만한 자가 두로 왕입니다. 그러다가 이들이 어떻게 심판을 받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자들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의 죽으심이 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에 속한 것입니까? 그 죽으심은 예수님 홀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는 죽음이지만 그 죽음 안에는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죽음이기에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며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로마서 5:8~10절입니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그의 살아나심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로마서 6:1~12절입니다. “봉독”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입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되는 것은 그 안에 성도가 함께 죽고 살아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고 합니다. 이런 자는 죄와 사망이 주장하지 못합니다.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아래 있게 된 자입니다.

 

에베소서 2:5~6절입니다.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여기에 자기 백성을 함께 연합시키셔서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도 함께 죽고 함께 살리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신 것이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더욱 알아감으로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가볍게 여기며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