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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에베소서 1:19~23 교회의 머리 2012. 8. 12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겼고 성도에 대한 사랑이 나타납니다. 이런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더욱 전도하여 교회를 부흥시키고 많은 곳에 선교사를 보내고 비전센터도 지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의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이 나타나는 이런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기도합니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마음의 눈을 밝혀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강력하게 역사하심이 무엇인지 알게 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하늘의 보좌에 앉히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자기 백성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이시고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2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그 강력한 능력으로 일하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은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지금 세상과 장차 오는 세상에서도 그의 이름이 높임을 받게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 앞에 모든 만물이 굴복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제가 자꾸 반복합니다. 왜 반복하는가 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며(요6:29),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인데도(빌2:11) 자꾸만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하여서 영광을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나의 행위로 이 세상이나 오는 세상에서 나의 영광을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22절입니다.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발 앞에 만물이 복종한다는 것은 이미 시편에서 예언이 되어있습니다. 시편 8편을 봅니다. “봉독” 여호와 우리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이 무엇이기에 찬양합니까?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신다고 하신 이 말씀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시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발 앞에 만물이 복종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자 되심입니다. 하나님과 동등 되신 분이 그 영광을 버리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자리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만물을 두셔서 다스리게 하십니다. 이것은 지난주에도 잠시 보았습니다만 아담이 에덴동산의 다스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델이며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신 것입니다. 만물이 예수님의 발아래 있다는 것은 만물을 주가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110: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다윗의 이 시편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시면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 될 수 있느냐는 말씀을 하심으로 바리새인들의 입을 닫게 만드셨습니다(마22:41~46). 그러므로 예수님의 발아래 모든 만물이 굴복하게 되면 원수들은 발등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셔서 만물을 굴복하게 하시는 것이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인과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가 된 세계입니다. 히브리서 11:3절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보이는 것은 잠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합니다(고후4:18). 여기서 믿음이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교회라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한 가지는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는 교회라면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되지 않기에 믿음이란 은혜의 선물로 주어집니다(엡2:8).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의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경의 말씀이 다 믿어집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는 것을 보지 못하기에 믿지 않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는 것이 보인다면 다 믿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살후 3:2).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만 믿게 됩니다.

 

히브리서 2:5~8절입니다. “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8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현 세상과 오는 세상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말씀조차 모르기에 예수님께 복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께 복종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자신이 머리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의 말씀을 변함없이 신실하게 이루시기에 세상 그 어떤 피조물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 내시고야 마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신실하게 일하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그 일하심이 다음의 말씀에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2:9~13절입니다.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자기 백성을 포함시킨 것입니다.

 

히브리서 2:14~18절입니다. “봉독” 우리가 혈과 육에 속하였다는 것은 죽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평생 죽음의 두려움에 종노릇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신 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죽음의 세력을 이기시기 위하여 죽음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모든 죽음의 세력이 꺾어진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이 왕 노릇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오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왕이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세상은 비록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는 말씀을 통하여 눈에 보듯이 믿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우리들은 여전히 시험을 받습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헛된 영광을 위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왜 이런 것들에 마음이 빼앗기는 것입니까? 이 세상의 유혹이 하나님의 그 큰 구원을 시시하게 만들려고 세상이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2:1~4절을 봅니다. “봉독” 그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 큰 구원을 흘러 떠내려 보내는 자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도 바울도 이런 계시의 말씀을 기록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셔서 다스리고 계심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믿는 사람이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다시 봅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지만 아직 만물이 모릅니다. 누구만 이 사실을 알고 믿게 됩니까? 예수님이 머리가 되신 교회만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는 것은 예수님이 현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머리가 되시고 주가 되시지만 이것을 교회만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건물이나 사람들이 조직하여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신 주의 백성들이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그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고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지시를 받기를 싫어합니다. 내가 나의 머리라고 여기며 살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후손들의 특징이 목이 곧은 백성입니다. 목이 곧다는 말은 자기 외에 다른 이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는 일이 있지만 그 속에서 마음만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만 아니라 신에게조차 복수하려고 하는 것이 선악과 이후의 인간입니다.

 

신명기 9:5~8절입니다. “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목이 곧은 백성이라서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기에 진멸 당하여 마땅한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언약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목이 곧은 백성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이 되고 그 완성의 혜택이 주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세상이 당하지 않는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이 시험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게 되는 것은 자기 마음의 욕심에 끌려서 자신이 머리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서로 머리가 되고 싶어서 싸움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부모자식 간에도 누가 머리가 되느냐는 싸움이 일어납니다. 학교와 회사와 교회에서도 이런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런 싸움터에서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은 자신이 머리가 아님을 알게 하십니다. 이것은 굉장히 자존심상하는 일입니다. 도대체 이 남자하고 살아야 하는가? 도대체 이 여자하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가? 이런 상담을 종종 받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그 사람이 가장 당신에게 합당한 배필이라서 하나님께서 실수 없이 허락하셨다고 말입니다. 어떻게 나의 자존심을 뿌리까지 흔들어 되는지 미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 시험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가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머리를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침 뱉고 뺨을 치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버려진 자가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만물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주셨다는 것은 두 가지를 알게 됩니다. 나는 그런 머리를 싫어해서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버려진 머리가 다시 나에게 와서 붙어버렸습니다. 이제는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만왕의 왕이며 만 주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머리의 교체작업이 일어납니다. 나의 머리됨이 사라지고 예수님의 머리되심만 남아지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