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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에베소서 1:19~23 교회의 충만 2012. 8. 19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 23절을 보시면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합니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붉은 벽돌과 뾰족지붕의 십자가가 탑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건물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충만한 것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배당 건물도 시원찮고 사람들도 얼마 없고 일도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으면 무언가 충만하지 못한 교회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하는 이 교회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교회를 충만하게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하여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제가 전도사 때 신학대학원 입시준비를 제가 사역하는 교회당에서 다른 몇 전도사들과 했습니다. 제가 있던 교회당 건물이 크고 사람도 많았지만 교회에서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하지 않아서 늘 조용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어느 전도사가 교회가 절간 같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무언가 열심히 움직여야 되는 것으로 보았기에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이며 교회의 충만함이 무엇입니까? 지난주에 본 22절을 다시 봅니다.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는 분이 머리로 계시는 곳이 교회입니다. 머리란 그의 통치를 말씀합니다. 통치만이 아니라 분리할 수 없는 관계가 머리와 몸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지 않으면 사람이나 조직이 머리가 됩니다. 또한 사탄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지 못하도록 온갖 것들로 방해합니다.

 

골로새서 2:6~19절을 봅니다. “봉독” 이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과 충만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무슨 일을 행하신 것입니까? 14절을 보시면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고 제하여 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모든 통치자와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것들을 완성하시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그의 몸으로 부름을 받은 교회도 충만하여 졌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나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과 같은 것은 장래 일의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실체가 오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나. 절기 지킴이나 안식일등으로 정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란 오직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붙들게 됩니다. 그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본문 23절을 다시 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28절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이별하면서 전한 말씀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피로 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라면 반드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지향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덩치 키우는 것이 우선이 아니고 사업이 우선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탄이 교회를 미혹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와 그의 몸인 교회 사이에 이물질을 끼워 넣는 것입니다. 기존의 교회라는 곳에는 예수님의 머리되심과 예수님의 희생의 의미보다 자신들이 세웠다는 교회 잘되기에 우선을 둡니다.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일인 양 오직 교회를 위해서만 움직이게 합니다. 그래서 지상 과제가 우리교회 잘되기입니다. 남의 교회는 망하든 말든 재력 있는 교회는 온갖 시설을 갖추고 대형버스들을 돌리면서 호객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온갖 이단들도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들지 못하게 합니다. 처음에는 얼마나 그럴듯하게 성경을 이야기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특정한 인물인 교주가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게 하지 못하는 일들을 마귀는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물의 머리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권세나 통치도 그 발아래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권세로 자기 몸 된 교회를 돌보시고 통치하시고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보살피고 계시는가 하면 그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골로새서 2장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신성의 모든 충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충만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러한 교회의 충만함이 무엇입니까? 크게 두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하나는 칼빈과 여러 사람들이 말한 것인데 교회의 충만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홀로 완전하고 충만하신 분이시지만 교회가 없이는 충만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신랑이고 교회가 신부라고 하는데 신부 없는 신랑은 불완전한 것처럼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가 그의 몸인 교회로 완전하여 진다고 말합니다. 이런 표현들은 굉장히 은혜로운 표현입니다. 로이드존스, 박영선 목사 같은 경우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길성남 목사 같은 경우는 성경에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한다는 것은 너무 낯선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문맥에서도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신데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충만하게 된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며 교회의 생명과 성장의 원천이 될 수 있느냐고 하면서 그리스도가 교회를 충만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앞에서 본 골로새서 2장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충만 이란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교회의 충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둘 다 좋은 해석으로 보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하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차원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완성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한 그 혜택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 받은 성도가 교회인데 성도 안에 그리스도로 충만해 지는 것을 교회의 충만으로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예수님의 언약완성의 결과로 나오는 의와 생명과 거룩함과 그 나라의 기업이 성도에게 부어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40:34~35절입니다.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다고 합니다. 이 성막위에 구름이 머물면 사람들이 머물러 있어야 하고 구름이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히 임한 곳이 성막이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퇴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성막이 나중에 건물로 완성된 것이 솔로몬의 성전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였을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임하게 됩니다(왕상 8:11).

 

이러한 성막과 성전은 그림자입니다. 참된 성전은 예수님입니다(요2:21).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이 가려져서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그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 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몰랐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이 사도들에게 임하였을 때에 예수님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14~16절이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기 전에 몰랐던 내용입니다. 그 충만하신 분으로부터 우리도 은혜를 충만하게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충만함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가 충만하게 해 드리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충만하게 받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한 하나님의 약속들과 그 영광들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다 포함이 됩니다. 그 내용들은 이 세상의 썩어질 것들이 아닙니다. 그 충만함이란 쇠하지도 아니하고 썩지도 더럽혀지지도 아니할 것들입니다. 그것들이 앞에서 본 대로 부르심의 소망이며 그 영광의 기업의 풍성함이며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로 믿는 자들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들이 다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에베소서에서 교회의 충만함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3:14~21절입니다. “봉독” 바울의 두 번째 기도의 내용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 본문을 볼 때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무엇으로 충만하게 되는지를 봅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엄청난지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어떻게 교회로 하여금 알게 하시는 것입니까?

 

에베소서 4:7~16절입니다. “봉독”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그리스도의 분량대로 선물을 주십니다. 그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이루어집니다.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들을 사로잡아 내셔서 그들에게 선물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주신다고 합니다. 시편 68편에서는 선물을 받는다고 하였지만 바울은 오히려 선물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 선물이 주어지면 자신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에 은사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충만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사람 쪽에서 온갖 열심들을 다 내어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해 드리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만이 아니라 이단들도 그렇게 합니다. 온갖 이단들이 왜 그렇게 열심을 내는가 하면 다들 율법주의라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구원을 받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교묘한 교리들을 만들어서 영혼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은 예수님께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세상은 모르지만 교회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바르게 알고 있다면 온갖 율법주의나 신비주의나 사람의 행위에 가치를 두는 이론들에 미혹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 사람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저 사람 말이 옳은 것 같은 이유는 은혜의 충만함에 이르지 못하여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은혜위에 은혜여야 합니다.

 

에베소서 5:15~21절입니다. “봉독”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합니다. 때가 악한 때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술에 취하지 말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술이 알코올만을 말하겠습니까?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온갖 세상의 것들에 취하는 것이 다 술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에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그리스도의 충만함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머리되신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는 집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