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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에베소서 2:1~7 죽은 자와 산자 2012. 8. 26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지난 주간 제일 충격적인 뉴스는 ‘묻지 마 흉기난동’이었을 것입니다. 여러 곳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여러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게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의 환경과 패자부활전을 할 수 없는 사회의 과도한 경쟁체제 등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도 이런 모든 문제들이 죄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회의 환경을 좋게 만들고 교육을 바르게 시키고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과연 그럴까요? 인류가 살아오면서 오늘같이 많은 교육을 받고 오늘 같이 환경이 좋게 만든 적이 있었습니까? 그러함에도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왜 인간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까? 오늘 말씀은 단 한마디로 정의합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들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고 합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살리셨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 말은 문맥의 흐름을 위하여 번역하면서 추가하였기에 어떤 성경에서는 작은 글자로 표시하였을 것입니다. 성경은 아담과 하와를 통한 자연출생의 모든 인간의 상태를 아주 분명하게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숨 쉬고 인식하고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나의 뜻을 이루려고 달려가는 생생한 나를 죽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2장은 에베소서 1장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원래 하나의 서신이기에 장과 절이 없습니다. 이 문제는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에베소서 1장을 약 5개월 넘게 보았습니다. 그 핵심을 정리하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새롭게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이 얼마나 엄청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 복이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알게 하여 달라고 바울사도는 기도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 영광의 기업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 강력한 역사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현 세대만이 아니라 오는 세대에서도 가장 높은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먹는 곳이 교회이기에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시며 교회의 충만 임을 보았습니다.

 

오늘부터 보는 2장의 말씀은 바울사도가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기도한 내용이 어떻게 일어나는 지를 계속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혼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일들이 하나님의 강력한 힘의 능력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알려면 우리 인간의 상태가 어떠한지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모르면 자꾸만 신인협력설로 나오든지 인간의 공로를 주장하는 일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수많은 교회 성장프로그램들이 한국교회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은 1년만 초 신자를 훈련시키면 제자를 양육하는 제자로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늦어도 2년이면 프로그램을 마치고 영적인 군사로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군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자가 아니라 부르신 자를 위하여 충성하는 자라는 말씀까지 인용하면서 훈련을 시킵니다. 이렇게 훈련을 받고 나면 교회에 충성된 자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목사들로서는 그런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단기간에 교회를 성장시키고 싶은 탐심이 생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입니다.

 

사도행전 20:29~31절을 봅니다.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밤낮 삼년을 눈물로 훈계하며 가르쳤지만 이단이 들어오면 넘어질 것이며, 또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자 중에서도 이단이 나올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삼년동안 합숙훈련 시키셨는데도 다들 배신하고 도망갔습니다. 한국교회 제자훈련 프로그램은 예수님보다 바울보다 능력이 있나 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떠나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다시 하나님의 일하심을 전합니다. 믿음과 형제에 대한 사랑이 나타나는 교회에 왜 이런 말씀을 다시 전하는 것입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면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엄청난지도 모르게 됩니다. 그런데도 교회성장 프로그램들은 몇 달 만에 제자를 재생산하는 일꾼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교회가 세상의 풍조를 따른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사회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빨리 빨리’입니다. 그 빠름에 따라가지 못한 자들은 패배자가 됩니다. 그래서 교회도 ‘빨리 빨리’입니다. 이런 교회에서 죄란 빨리 교회를 성장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죄로 보게 됩니다. 아직도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 2:1절을 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이 무엇으로 말씀하고 있습니까? 2:2절입니다. 그 때에 즉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던 때, 거듭나지 못한 때를 말합니다. 이때에 그 가운데서 행하였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 행하였다는 것은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었다는 말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생산하고 배설하는 이런 것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시대정신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 시대의 풍조는 무엇이었습니까? 먹고 마시며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도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시대의 풍조는 자신들의 쾌락을 위하여 살아갔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어울리지 못하면 롯처럼 왕따를 당하여 성문 앞에 외톨이로 있게 됩니다. 그러다가 천사를 맞이하게 됩니다만 이 시대의 흐름, 시대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세상의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살아나올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인간들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차단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생들은 스스로 자기의 살길을 마련하여야 합니다. 그 결과로 수고하며 애를 써서 살아야하지만 그 결과는 흙으로 돌아갈 인생들입니다. 이런 상태를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죄를 이렇게 고발합니다.

 

예레미야 2: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생수의 근원 즉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이 죄입니다. 이런 상태를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라고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스스로 웅덩이를 파서 물을 저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자기를 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문명을 발달시켜봅니다. 더욱 과학의 발전, 의학의 발전, 경제의 발전을 외칩니다. 그런 것들이 자신들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알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터진 웅덩이입니다.

 

지난 목요일 부산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로 있는 분이 부인과 함께 복음의 교제를 위하여 저희 집으로 왔습니다. 제가 한 두 번 말한 의사인데 의사가 되어 편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과를 택한다고 하더니 제일 힘들고 돈 안 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몇 달 전에 물에 빠진 사람이 119에 실려 왔답니다. 심전도 체크를 하니 심장이 박동하는 것이 아니라 겨우 떨리는 정도였답니다. 두 시간 동안 응급처지를 하여 살려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병동으로 올려놓고 뿌듯했다고 합니다. 사람을 하나 살렸다고 생각하였답니다. 그래서 3일 뒤에 올라가보니 그 사람의 장례준비를 하고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이런 말이 생각났습니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입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 좋은 점은 죽음을 자주 접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의사도 자신이 응급의학과 의사가 되어 죽음을 자주 접해서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산다고 열심히 살지만 이것이 산 것이 아니라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들입니다. 죽은 것을 좀 더 연장시켜 놓는 것이 생명의 연장이 아닙니다. 그 죽은 자의 특징이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을 따르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께 분리된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것이 이방인들의 삶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근원이 누구신지를 알고 믿는다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생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3절에서 전에는 우리도 그러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란 유대인들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생명을 아는 자라고 여겼습니다. 이방인들은 생명이 없는 짐승과 같은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유대인들조차 다 공중 권세 잡은 자 아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섬긴다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44절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고 그 율법을 지키며 자기들만이 선택된 백성이라고 믿은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너희 아비가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르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7:3절을 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님의 이 기도가 지금 바울사도를 통하여 에베소 교회에 증거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역시 예수님의 이 기도의 해석을 바울을 통하여 듣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7:2절에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가 바로 만물을 통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가 바로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육체와 마음은 같은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자들이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본성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본성이 무엇입니까?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입니다. 이것이 본질상 진노의 자식입니다. 모든 시간과 공간 안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누구 중심으로 해석하며 기뻐하고 화를 내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자기중심입니다. 이런 것을 허물과 죄로 죽은 자라고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살아난 자들은 이제부터 이런 죽은 자의 모습이 발각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사건 사건마다 죽은 자의 모습이 들추어지면서 이런 죽을 자를 대신하여 죽으신 분이 예수님임을 믿게 되는 사람이 산 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