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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에베소서 2:4~10 구원은 선물입니다 2012. 9. 23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이 왜 선물로 주어져야 하는지는 에베소서 2:1~3절에서 보았습니다. 구원 받기 이전의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죽은 자는 어떤 반응도 보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어떤지는 그동안 상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입니다. 이것은 창세전에 예정된 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신 사랑입니다.

 

그러면 구원이 무엇입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구원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이 구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우리가 믿으면 죄 사함을 얻고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합니다. 적어도 장로교라면 이런 말들은 다 합니다. 그런데 이런 구원은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받는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복을 받고 천국에서 더 큰 상을 받으려면 그런 구원에 만족하면 안 되고 구원을 받고 나서 더욱 열심히 자기의 행함으로 상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때로는 땅에서 상을 받으면 하늘에서 상이 없어지기에 일부러 칭찬하지 않도록 합니다. 서로 내숭떨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대한민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을 믿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가서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그곳에서도 개털모자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찬양대를 해야 천국에서도 하나님을 측근에서 찬양하는 찬양대가 된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이나 이런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나 간에 다들 자기 욕심들 채우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에베소서에서 보면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살리시고 함께 하늘에 올리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히신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지만 하늘에 올라가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있습니까? 무슨 수로 인간이 하늘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을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놓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찌 우리의 행위로 만들어 낼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전체가 다 선물로만 됩니다.

 

디도서 3:4~7절입니다.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구원이란 우리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고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로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결국은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구원을 선물로 주신 이유를 7절에서 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신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무엇을 자기의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풍성함을 드러낼 뿐입니다. 구원의 시작과 과정과 끝이 전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8절에서 다시 확증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 우리는 자꾸만 내가 믿어주었다는 나의 결심과 결단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모습이 구원 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은혜라고 말은 하지만 자신의 특별한 감정이 일어난 그 사건과 날짜를 자신의 믿음의 근거로 챙겨두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구원이 사람의 협력이 필요한 줄 알고 달려간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입니다.

 

로마서 10:1~4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이스라엘이 구원에 이르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의 완성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의가 있을수록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모습은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교묘하게 섞어둡니다. 우리가 영혼의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지만 구원받고 나서 상을 받고 하늘의 상이 크려면 자기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구원관은 사람들의 욕심을 부추겨서 경쟁을 시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원리와 전혀 상관없는 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운동장에서 달리는 자들 이야기 합니다. 바울사도의 경기하는 자의 이야기는 진리와 비 진리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을 많이 받고 적게 받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의 원리에 젖어있기에 세상의 경쟁논리를 쉽게 받아들입니다.

 

구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이야기하면 대부분 이런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내가 열심히 할 필요가 없네! 그렇습니다. 구원이란 우리의 행위를 보탤 것이 없이 완벽하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지난주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강의 초반에는 어리둥절하다가 중간쯤에는 질문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결론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많이 용서 받은 사람이 많이 사랑한다는 죄 많은 여인의 용서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강의 마치고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보다 나의 상을 위하여 열심히 하였기에 계속 그렇게 나갔다면 지옥 가는 사람이 되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저녁에 찬양을 인도하는데 ‘예수 사랑하심은’ 이라는 찬양을 인도하는데 눈물이 나서 인도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다 죄가 됩니다(롬14:23). 믿음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은혜의 선물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선악판단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선과 악을 구별하면서 하는 행위가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누구든지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런 행위로 구원을 얻었다거나, 나는 이런 행위로 상을 받았다는 자기 자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선물로 구원받은 자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디모데전서 1:12~17절입니다.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말합니다. 이런 자를 구원하신 것은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본이 된다는 말씀을 합니다. 어떤 본이 된다는 것입니까?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비방하고 박해하고 폭행한 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인 사람입니다. 이런 자를 주의 일꾼으로 삼으신 이유는 나처럼 잘해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 같은 죄인도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그런 모델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울이야기하면 열심히 한 바울을 본받자는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는 말도 합니다. 그 것은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어떤 누구보다도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1~11절을 봅니다. “봉독”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헛되이 믿지 않는 것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믿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반드시 자기 부인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울은 여기서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태어난 자와 같다고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여기에 무슨 사람의 행위나 공로가 끼어들 틈이 있습니까!

 

베드로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1:15~17절을 봅니다.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하기 전이라면 베드로는 큰 소리로 자신 있게 사랑한다고 대답하였을 것입니다. 자신은 예수님께서 죽는 자리까지 따라가겠다고 큰소리 친 사람입니다. 다른 모든 자들이 배신하여도 자신은 배신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제주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하였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물으시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이 말 외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대답에 주님은 자신의 양떼를 맡기십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무엇을 전하였을까요? 만약 배신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무용담 늘어놓기 바빴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의 용서와 자신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고 계시는 것만 전할 뿐입니다.

 

베드로후서 3:15~18절입니다.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된다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그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자들은 상은 무엇일까요? 이 은혜를 값없이 전하는 것이 상입니다. 고린도전서 9:18절입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복음을 값없이 전하는 것이 바울의 상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선물로 받은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