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1~2 무너뜨려 지리라 2017. 5. 14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경주에서 지진 소식이 계속 되더니 55일에는 전라도 구례에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은 땅이 흔들립니다.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땅이 심하게 흔들리면 땅에 기초한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린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표시가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다는 말씀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의 무너짐이란 그들의 종말이며 온 세상의 종말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9:41~44절입니다.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이 평화의 성읍인데 정말 평화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화의 왕을 배척하는 예루살렘이기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 멸망의 날에 어떻게 될지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후 약 40년이 지나 로마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고 성이 함락됩니다. 그 성안에 사는 자들이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지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떻게 말합니까?

 

누가복음 21:5~6절입니다. “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평행구절인 마가복음에 보면 어떤 사람들로 되어 있는 자들이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성전의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날이 이르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예루살렘이 평화의 소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평화의 소식을 몰랐기에 이미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하여 무너진 적이 있습니다.

 

미가 3:8~12절입니다. “8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9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미가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 때에 활약한 선지자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여호와의 영으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합니다. 그들의 죄란 시온 곧 예루살렘을 피와 죄로 건축한 것입니다. 우두머리들이 뇌물을 위하여 제판하며 제사장을 삯을 위하여 교훈하고 그들의 선지자들은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입으로는 말하기를 여호와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니 재앙이 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이 빌어주는 내용이 거짓 평안입니다. 여러분들이 제사를 잘 드리니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이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미가선지자의 책망을 히스기야 왕 때는 받아들였기에 멸망하지 않았지만 예레미야 시대에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7장을 보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부르짖습니다. 이곳이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성전이라고 하는 곳이 도둑의 소굴이 되었다고 하면서 돌이키라고 하여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파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도적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성전을 향하여 도둑의 소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그들을 돌이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6:1~3절입니다.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3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여호야김 시대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심판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돌이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이키기는커녕 선지자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어지는 4~7절입니다. “4 너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 5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6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7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실로는 언약궤가 머물던 장소였지만 언약궤가 옮겨진 지금은 거저 황무지일 뿐입니다. 이런 말씀을 전한 결과를 봅니다.

 

8~11절입니다. “8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9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 10 유다의 고관들이 이 말을 듣고 왕궁에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 여호와의 성전 새 대문의 입구에 앉으매 11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고관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 같이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였음이라성전을 헐라고 하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모습이나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하는 모습이 같습니다.

 

12~15절입니다. “12 예레미야가 모든 고관과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가 들은 바 모든 말로 이 성전과 이 성을 향하여 예언하게 하셨느니라 13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14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15 너희는 분명히 알아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반드시 무죄한 피를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주민에게 돌리는 것이니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말하게 하셨음이라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니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몇몇 백성들 중에 예레미야를 죽이면 안 된다는 자들이 나옵니다.

 

16~19절입니다. “16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17 그러자 그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8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19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니라예레미야를 죽이자는 말에 반대한 사람들이 미가의 예를 들어서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시대 곧 여호야김 왕의 시대에 참된 선지자를 죽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20~24절입니다. “20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21 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22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우리야 선지자가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을 하니 왕이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자 선지자가 애굽으로 도망을 가니 왕이 사람을 보내서 애굽에서 잡아와서 죽여 버립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아히감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이 멸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재건한 성전이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솔로몬 성전에 비하여 초라합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지 약 4백 동안 헬라제국이 무너지고 로마가 제국이 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헤롯은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유대 지역의 왕이 되었습니다.

 

헤롯이 왕이 된지 18년에 성전재건공사를 합니다. 헤롯은 여러 가지 큰 공사를 하였습니다. 그 중에 성전을 재건하면서 유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하면서 성전을 재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 것은 유대인들이 성전재건에 힘을 보태라는 것입니다. 헤롯이 죽기 직전에 일차적인 성전이 완공이 되지만 부대 건물들은 계속하여 증축을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46년간 지어지고 있었으니 성전이 보암직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제자들에게 이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무너지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들이 예수님을 처형하는 죄목(罪目)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6:59~61절입니다. “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거짓 증거를 찾습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두 명의 증인이 나온 것은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짓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뿐 아니라 예수님의 언행을 가지고 신성모독이라고 하여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지배하면서 산헤드린 공회에 사형 권을 주지 않았기에 빌라도에게 예수를 사형하여 주기를 요구합니다.

 

마태복음 27:24~26절입니다.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2)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빌라도가 예수님의 피에 대하여 자신이 무죄하다고 하자 예루살렘의 사람들 곧 유대인들이 그 피 값을 자기들이 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봅니다. “봉독 제자들이 성전을 자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 도적의 소굴이라고 하신 말씀도 이들은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은 이스라엘의 멸망이며 세계의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24장에서 25장까지는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으로 인하여 세상의 종말을 다루는 내용이 됩니다.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놓아지지 않고 무너지는 그 날이 언제 오게 됩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이 무너지리라는 말씀은 성전이 46년 동안 증축되고 있는 때였습니다. 이후로도 계속 증축되어 AD63년경에 완공이 됩니다.

 

그런데 AD66년경 가이사랴에서 이방인과의 충돌로 민란이 확대되어 로마를 반역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력이 예루살렘의 로마군 수비대를 몰아냅니다. 그러나 로마가 이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티투스 장군을 보냅니다. 예루살렘은 천연적인 요새입니다. 그래서 토둔을 쌓아서 공격을 하고 예루살렘을 불사릅니다. 성전은 많은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기에 그런 금을 찾느라고 로마의 군인들이 성전의 돌들을 다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성이 공격한 적들이 토둔을 쌓았고 성전의 돌들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요세푸스입니다. 유대인이지만 로마에 항복하여 로마의 장교가 된 사람이기에 유대인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이 당시의 기록을 유대전쟁사에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포위 되어 있을 때에 포로로 잡힌 수가 구만 칠천 명이었으며 사망자가 일백십만 명에 달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수가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였는가 하면 이 때에 유월절과 연결된 무교절이기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온 것입니다. 이런 곳을 포위하고 예루살렘을 불 질렀습니다. 작은 도시에 백만이 넘는 자가 죽었으니 그 참담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습니까?

 

미가서와 예레미야를 통하여서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선지자들을 주께로 돌아오라고 부지런지 외쳤지만 그들은 성전을 의지하였습니다. 제사장을 의지하고 그들이 드린 제물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희생 제사를 드리면서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 알고 속죄하는 기능으로의 성전이 아니라 그들이 죄를 더 짓게 하는 성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성전에 와서 하나님과 거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기에 이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더욱 도적질 할 생각을 하고 성전에 다닌 것입니다. 이러한 성전을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하여 허물어 버리신 것이 남 유다의 멸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가 되지 않기에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그렇게 화려하고 멋있는 성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도적의 소굴이었습니다. 인간은 죽다가 살아나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처음 성전이 불에 타서 없어지고 다시 성전을 재건하여도 도적의 소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하신 예수님을 배척하면서 그 평화의 소식을 전하려고 오신 선지자를 배척하듯이 예수님을 죽여 버린 그 예루살렘과 성전이 심판을 받아 다 무너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갑니까? 내가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의 멸망, 성전의 멸망은 온 세상의 멸망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볼 마태복음 24장의 내용은 온 세상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믿고 자랑하던 성전의 건물이 무너지고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안에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이 무너져도 남아있을 내용이 있습니까?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온 세상이 불에 타서 사라질 것들이 아직도 우리의 믿음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까?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아라는 것도, 주체성이라는 것도, 자존심이라는 것도, 체면도 다 무너져 내려져야 합니다. 내가 윤리 도덕적으로 쌓아온 것도, 율법적인 의로 쌓아온 것들도, 교회에서 선한 일이라고 하면서 쌓아온 것들도, 천국에서 상 받기 위하여 쌓아온 것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다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이러한 말씀 앞에 분노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한 그들이 당한 모습이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멸망을 통하여 다 보여주셨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은 이미 십자가로 확증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7:22~25절입니다.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바울사도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한 내용입니다. 지금도 그리스에 가면 온갖 신전들이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세워진 온갖 신전들이 지금도 관광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만 그 신전 중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 지어 바친 신전도 있는 것입니다. 아는 신은 섬기겠지만 알지 못한 신이 있다면 그들도 섬겨서 복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성을 고발하면서 천지를 창조하신 참된 신은 사람이 지은 전에 계시지 않으시고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30~31절을 봅니다.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알지 못한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종교성을 다 심판하지 않으시고 간과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간과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하신 것입니다. 그 증거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이미 2천 년 전에 십자가와 부활로 확정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그 날이 오기 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에 무너져 내릴 것을 붙들고 있다면 그 무너져 내릴 것과 함께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영원히 무너지지 아니할 것을 붙들게 하시려고 세상에 믿든 것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끊어주십니다. 그러할 때에 당황하지 마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라는 신호로 아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2:25~28절입니다.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2)은혜를 3)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모세 때에는 땅이 진동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땅만 아니라 하늘도 흔들어 버리십니다. 그러면 옛 하늘과 옛 땅은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성도는 이 세상에서 흔들어 버리십니다. 그렇게 흔들어 버리시는 이유는 흔들리지 아니하고 무너지지 아니할 것만 우리 안에 남기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그 무너지지 아니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내용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내용들만이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입은 자들은 더욱 은혜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높고 깊고 넓고 영원한지를 알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들을 받아 가는 과정이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것만이 무너지지 아니할 내용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안에 더욱 채워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