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33~46 건축자들이 버린 돌 2017. 1. 8

 

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여러분은 이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제가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몇 번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세상은 살기에 참 좋은 곳이다. 2) 그럭저럭 살만한 곳이다. 3) 정말 살기 힘든 곳이다. 4) 세상 전체를 다 불사질러야 마땅하다. 여러분은 몇 번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십니까?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생각으로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누가 4번이라고 답을 한다면 무언가 문제 있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세상에 화가 많이 난 사람이라고 봅니다. 연쇄 살인범들이 세상을 증오하면서 하는 말로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 악한 자가 많지만 그래도 선한 사람이 많기에 살만하다고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어떻게 보실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세상을 좋게 보시고 독생자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멸망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왜 멸망합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면 아무도 멸망시키지 않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멸망시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그 답이 나옵니다.

 

본문 33절입니다.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앞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과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앞의 비유는 두 아들의 비유였습니다. 큰 아들은 포도원에 일하러 가라는 말에 간다고 하고서는 가지 않았습니다. 작은 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일하러 갔습니다. 큰 아들은 대세자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입니다. 이들은 세례요한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세리와 창기와 같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례요한의 증거를 받아들인 자들입니다. 세례요한은 의의 도를 전한 사람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분노가 일어나는 말씀입니다. 누가 봐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라고 생각한 자신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누가 봐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여긴 세리와 창기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는커녕 이런 예수를 죽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33~36절입니다.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완벽하게 만들었습니다. 산울타리로 두르고 포도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까지 지었습니다. 그리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 열매 거둘 때가 주인이 세를 받기 위하여 종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때리고 죽여 버리고 돌로 쳤습니다. 주인이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냈습니다. 그들에게도 농부들이 때리고 죽이고 돌로 친 것입니다.

 

37~41절입니다.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고 생각하여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이는 상속자니 이 아들을 죽여 버리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고 한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유대인이 품꾼으로 팔려 가면 여러 가지 풀려나는 법이 있습니다. 누가 대신 빚을 갚아주면 됩니다. 다른 방법은 6년 동안 일하고 나면 7년째 자유를 얻습니다. 또 하나의 자유 하는 방식은 주인이 죽으면 해방됩니다. 그러므로 멀리 떠난 주인이 종들을 보내다가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낸 것은 주인이 죽었다고 보고 아들을 죽여 버림으로 그 포도원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고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께서 그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자들이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사람에게 줄 것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로 하나님을 포도원의 주인으로 말씀하고 있는 곳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이사야 5:1~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잘 만들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맺힌 것은 들 포도를 맺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를 바라셨지만 그들이 맺힌 것은 포학과 부르짖음만 가득하였다고 합니다. 시편 80:8절에서는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2:21절에서도 참 종자를 심었는데 이방의 악한 포도나무 가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에스겔 19:10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포도원과 주인을 이야기하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임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선지자들의 말보다 더 무서운 심판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서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사람들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청원합니다.

 

누가복음 20:16~17절입니다.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비유의 뜻을 알았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대로 적용이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멸당해야 마땅합니다. 이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와 시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멸당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말씀이 성취되기 위하여 너희들이 나를 죽일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본문 42절입니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는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시편 118편입니다. 시편 118편은 여호와께 감사하는 찬송입니다. 그의 선하심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고통 중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구원하여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뭇 나라가 에워쌀지라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구원이 되신 주님께 감사의 찬송을 하는데 갑자기 나온 내용입니다.

 

시편 118:21~24절입니다. “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4 이 날은 여호와께서 1)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구원을 요청하고 구원하여 주심에 감사의 찬송을 하다가 갑자기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 것은 여호와께서 하신 것이기에 우리 눈에는 기이하게 여겨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이라고 합니다. 각주를 보면 지으신 날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이 어떻게 일어날지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구원이란 사람의 눈에 기이하게 보이는 방식으로 일어날 것을 시편 118편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오늘 우리나 간에 구원이라고 하면 지금 나의 삶의 어려운 형편에서 나아지게 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식민 지배에 있다면 해방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병이 들었으면 병이 낫는 것이며, 가난하면 부자가 되는 것이고, 전쟁 중이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구원의 감사 찬송을 하는 중에 갑자기 건축자가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말씀이 나온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이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의 기이한 방식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옛날식의 건축물이라면 돌로 담을 쌓아야 하니 여러 돌들을 많이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돌을 모퉁이 돌로 삼으려고 놓아보니 도저히 모퉁이 돌로서 쓸 수가 없습니다. 모퉁이 돌이라면 건축을 시작할 때에 기초석이 되는 돌입니다. 그 기초 석에 잇대어 돌을 쌓아가야 담이 되고 벽이 됩니다. 그런데 건축자가 아무리 살펴봐도 도저히 쓸모가 없어서 버려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입니다. 저도 시골에서 돌담을 쌓아 보았습니다. 돌로 담을 쌓을 때 크고 작고 뾰족한 돌도 다 사용이 됩니다. 그런데 럭비공처럼 생긴 돌은 정말 쓸모가 없어서 버립니다. 이런 돌은 잘 깨어지지도 않습니다. 잘 깨어지면 돌과 돌 사이의 틈을 막는 돌로도 사용하는데 그렇지도 못하여 버리는 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돌을 누가 새로운 건축물의 기초 석으로 사용한다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각자의 인생을 건축하는 건축자들입니다. 우리 인생을 멋있게 건축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공부를 해야 하고, 취직을 해야 하고, 결혼도 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평안한 노후를 보내야겠다는 생각들을 합니다. 이러한 자기 인생의 건축을 하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보탬이 된다면 여러 가지를 들여놓습니다. 집안에 수많은 가구들이 있습니다. 가구를 들여놓는 것처럼 취미생활도 인생의 행복을 위하여 합니다. 그러다가 행복한 나의 인생을 위하여 종교도 필요하다고 하니 이 종교 저 종교 중에 기독교를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나니 인생살이에 아무른 보탬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분이 나이가 40대 후반인데 자신이 공부하고 싶었던 것을 이제라도 꼭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저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제가 답을 이렇게 했습니다. 이 세상에 보람되는 일이 아직도 있다고 생각하시네요!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다고 전도서는 말합니다. 그 헛됨을 알기 위하여 공부하시면 됩니다. 그것도 환경이 허락되어야 하겠지요! 여기에 답이 오기를 보람되는 것이 내 자아를 만족시키는 것이군요! 빨리 주님이 데려가셨으면 좋겠다는 답이 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허무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예수라면 얼마든지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버림받은 돌입니다.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밀쳐버렸습니다. 그래서 일어난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에게나 오늘 우리에게나 예수 그리스도는 환영받는 분이 아니라 배척받고 버림받는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려버린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버림받은 돌을 새로운 집의 모퉁이 돌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버림받은 돌에 누가 스스로 가서 그 집이 되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집이 세워지는 것이 기이합니다.

 

본문 43절입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이 말씀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는 것과 얻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배척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리와 창기와 같은 자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되는 것이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말씀의 결론입니다.

 

본문 44~46절입니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하십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심판의 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버린 자에게는 심판이 되지만 그 돌을 믿는 자는 구원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대세자장들과 장로들이 알아들었습니다.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이 그들이 모퉁이의 머릿돌을 버리는 것으로 알아들었기에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지만 아직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추종하고 있기에 그렇게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여론몰이 해서 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버리게 되어야 시편 118편의 말씀이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돌에 대하여 살펴봐야 합니다.

 

사도행전 4:6~12절입니다.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쳐줍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들을 주목할 때에 왜 우리 개인의 경건과 능력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하면서 이 사람이 일어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믿음이 일으킨 것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때에 예수님을 배척한 그 무리들이 사도들을 모아놓고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권세로 이렇게 하느냐고 물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사도들에게도 누구의 권세로 이렇게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이 사람을 건강하게 하였다고 하면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 돌이 되었다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그 돌이 이제 구원의 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하 인간에 구원받을 다른 이름이 주신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싫어버린바 된 예수 그리스도, 그 버림받은 돌이 구원자가 되시며 건물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의 기초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사람들이 좋아할 예수가 아니라 사람들이 싫어서 버린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버린 돌을 믿는 자들이 나온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기이한 일입니다.

 

베드로전서 2:1~3절입니다.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여러분은 거듭났습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젖을 빠는 것은 본능입니다. 우리가 거듭났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말씀이 거듭난 자들의 신령한 양식입니다. 그 말씀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합니다. 거듭남이란 주의 인자함을 맛본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가 싫다고 버렸는데 그 버림받은 예수가 우리를 살리시려고 우리에게 임하신 것은 주의 인자하심입니다. 주의 인자란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맛본 자는 그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4~8절입니다.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여기서는 세 가지 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돌은 바로 오늘 본문과 시편 118편의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돌을 보배로운 모퉁이 돌로 시온에 두시는데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28:16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도 됩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8:14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자는 이 돌이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정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여 버려버린 돌, 걸려 넘어지는 그 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게 되었습니까? 이 또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정하셨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이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이렇게 기이한 일이 나타난 자들이 무엇을 합니까?

 

9~10절입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우리가 사람들이 버린 그 돌을 믿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일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이제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이며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아름다운 덕은 선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의 공로가 아닙니다. 오직 주의 긍휼로 인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20~22절을 봅니다. “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버림받은 모퉁이 돌에 가서 붙어지는 돌들은 어떤 돌들이겠습니까? 이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는 고린도전서 1장의 내용과 같은 자들입니다. 세상에서 잘난 자들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 다 완성이 되면 예수님을 버린 이 세상,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 버린 이 세상을 진멸하고 심판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버림받아 죽은 이 땅에서 그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다는 자들이 세상과 벗하여 산다면 이것이 간음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어떻게 모퉁이 돌이 된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주 안에서 성전이 완성이 되면 이 세상은 진멸당하여 마땅한 것입니다. 그 처소가 다 지어져가고 있습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이 완성이 되는 것이며 그것으로 세상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복음을 듣고 세상의 미움을 받고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도, 이미 버림받은 그 돌이 새로운 집의 모퉁이 돌이 된 그 돌에 붙게 되었다면 이것이 영원한 복입니다. 이것이 거리끼고 어리석은 십자가의 도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구원 받은 백성들은 건축자들이 버려버린 그 돌이 자신의 존재의 기반만이 아니라 전부가 됨을 믿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