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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18~22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2016. 12. 25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온 세상이 성탄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오늘을 성탄절이라고 했습니까? 이것을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교회사에서 찾아낸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교회가 성탄절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로마 황제에 의하여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을 성탄절로 삼았기에 그 날을 지키는 것은 우상숭배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도 그 전도지를 봤습니다. 인용을 한 책이 교회사라는 책에서 인용하였습니다. 평생 성탄절을 지켜온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곳으로 빠져드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 날짜가 언제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오셨으며 무엇을 이루셨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상업화 되어 버렸고 종교적 축제가 되어버린 그런 성탄절이 아니라 성탄의 참된 의미는 성도가 모인자리에서 언제나 말해져야 하는 내용입니다. 일 년에 한 번 성탄과 고난과 부활의 의미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설교는 늘 성탄과 고난과 부활과 재림에 대한 말씀들이 계속 선포되어야 할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도 성탄과 다 연결이 되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본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성전의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신 내용을 보았습니다. 성전과 성전의 제사를 목숨처럼 여기는 유대인들입니다. 더구나 유월절 절기이기에 세계 각처로 흩어진 유대인들까지 몰려오기에 인산인해를 이루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이런 곳에서 예수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일컬음을 받아야 하는데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환전상의 상을 둘러엎으시고 짐승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삼일 만에 일으키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시위는 이제 건물로 된 성전의 시대가 끝이 왔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성 밖 베다니 마을에서 거하신 후에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십니다.

 

본문 16~20절입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시다가 예수님께서 시장하셔서 길 가의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셨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아직 무화과가 나올 철은 아니지만 잎이 무성하게 되었다면 이른 열매 몇 개는 맺힐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찾지 못하셨습니다. 그러자 나무에게 이르시기를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린 것입니다. 싱싱하던 잎들이 갑자기 시들어 버리자 제자들이 이상히 여기며 어찌하여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렸느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21~22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하시기를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며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앞뒤 다 자르고 21~22절만 보면 기도 만능주의로 갑니다. 믿고 의심만 하지 않으면 이 산이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고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으면 무화과나무 저주하면 말라버리는 것입니까? 산더러 바다에 옮겨지라고 하면 그대로 옮겨집니까?

 

마가복음 11:12~14절입니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무화과 때가 아니라는 말씀이 나오고 이어지는 15~19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어떻게 줄일까 하는 내용이 마태복음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이 내용을 분리하여 기록하였는데 마태는 이것을 하나로 묶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20~24절은 마태복음과 대동소이 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서는 무엇이나 기도하라는 말씀의 결론으로 용서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힌트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만민이 성전으로 와서 무엇을 기도해야 합니까? 지난주에 이사야 56장의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씀이 나오는 문맥을 보면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와 고자와 이방인도 주의 성전으로 모아들일 것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란 율법을 어김으로 쫓겨났습니다. 성전에 나아올 자격이 없습니다. 고자나 이방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성전으로 나아올 수 있는 것은 용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를 받아야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올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죄인들이 나아올 수 없는 도둑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나 믿고 구하는 것은 용서의 문제입니다. 믿고 구하면 무화과나무가 말라죽는 정도가 아니라 이 산더러 바다에 던져지라고 하면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을 줄로 믿으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25절에서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고 합니다.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기도의 결론은 용서 받고 용서 하는 내용입니다.

 

이제 다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면서 예수님께서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으신 것을 모르셨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이 사건을 통하여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 죄악이 관영한 것을 몰라서 천사들을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죄악이 관영한 것을 아시고 천사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천사들이 감으로 인하여 소돔과 고모라성이 심판 받아야 함이 확증이 되고 그 심판의 성읍에서 롯의 가족을 구원하여 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을 아시고 가셔 보셨듯이 예루살렘의 성전이라는 곳에 아무른 열매가 없는 것을 아시고 가셨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할 것이라고 하심으로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리듯이 이제 예루살렘의 성전은 그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것을 미리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참으로 용서가 선포되는 그런 성전이어야 하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은 율법을 따라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지만 그들이 이미 도둑놈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처럼 그들의 관심은 수많은 백성들이 바치는 제물과 헌물과 각종 헌금에 마음을 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열매 없어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이제 건물로 된 성전은 영원히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호세아 9:10절입니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호세아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고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는데 이들은 온갖 우상에게 자기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다고 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호세아 9:11~17절입니다. “11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12 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13 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 14 여호와여 그들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15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16 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17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졌지만 그 근원을 따지실 때에는 이스라엘로 부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그렇게 환영하여 받아들였지만 이들은 온갖 우상숭배를 하였기에 그들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 배지 못하는 태, 젖 없는 유방,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함, 이러한 이미지들은 전부 열매 없는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버리시므로 여러 나라 가운데 떠도는 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하여 여러 나라로 흩어졌습니다.

 

예레미야 29:17~19절입니다.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 18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 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북 이스라엘이 온갖 우상숭배를 함으로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공의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라는 열매들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남 유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을 보았지만 이들도 열매가 없었기에 여호와께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보내서 멸망하게 합니다. 아무리 선지자를 꾸준히 보내어도 그들이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십니다. 이런 상태를 17절에서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가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는 배경입니다.

 

미가서 7:1~4절입니다. “1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2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3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4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미가 선지자도 남 유다의 선지자입니다. 남 유다의 지도자라는 자들의 열매 없음이 어떠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의 황량한 과일나무들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없습니다. 그렇게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습니다. 경건한 자가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없습니다. 무리가 다 도둑이 되어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고 합니다.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데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 자들은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서로 결합합니다. 가장 선한 자가 가시 같고 정직한 자라고 찔레 울타리보다 더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유다가 멸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미가서 3:9~12절입니다. “9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도적의 소굴이 되어 있는 예루살렘의 성전입니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을 건축한 것입니다. 이 땅의 성전이라는 곳도 이렇게 건설된 것입니다. 베드로 대 성당이 그렇게 지어진 것입니다. 수백억 수천억의 부동산 건물을 지으면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 자들도 이러한 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입에 무엇을 채워주면 평강을 외치지만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않으면 전쟁을 준비하는 것입니다(3:5). 우두머리는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고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고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니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유다가 이렇게 되어 멸망하듯이 예수님이 오신 예루살렘도 이와 다를 바가 없어서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 멸망의 모습이 무화과나무에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이제 건물로 된 성전에서 율법을 따라 드리는 제사로는 죄의 용서가 일어날 수가 없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을 들어 바다에 던져지라고 하신 말씀도 성전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산이란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산이 시내산과 시온 산입니다. 시온 산은 곧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산입니다. 이 산이 바다에 던져진다는 것도 결국 성전이 있는 산이 바다에 빠져버리면 더 이상 건물로 된 성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건물로 된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자신이 성전이 되십니다. 그 영이 임한 자들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전은 사람이 세울 수도 없고 사람이 무너뜨릴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다스려 가십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믿음을 선물로 받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성전이 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가 용서 받은 자들입니다.

 

미가서 7:7~13절입니다. “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8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9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10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11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13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호세아와 예레미야와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였고 남 유다가 바벨론에 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망한 자리에서 다시 돌아왔습니다만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과 성전은 이런 선지자들이 책망하는 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손에 율법과 성전을 주셨지만 그러나 그 율법과 성전을 통하여 행한 일은 악한 열매를 맺는 일 외에는 없었다는 것이 구약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성전을 헐어버리시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새로운 성전을 만드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미가서 7:14~17절입니다. “14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15 이르시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이적을 보이리라 하셨느니라주께서 친히 양떼를 먹여달라는 기도입니다. 애굽에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나오듯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아 나오는 것입니다.

 

미가서 7:18~20절입니다. “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20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열매를 바라셨지만 어떠한 열매도 맺을 수가 없음을 확인하신 것이 구약의 역사입니다. 그 최종 확인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어떤 율법이나 성전이나 제사로서 용서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성전이 되신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자들이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른 어떤 인간의 행위를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는 긍휼의 주님을 의지합니다. 그 주님은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십니다. 주의 맹세대로 야곱에서 성실과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는 그 주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10:1~7절입니다.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왜 오셨습니까?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율법과 제사로는 온전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능히 없이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다고 합니다. 그 한 몸으로 예비하셨다는 그 몸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율법을 받은 인간의 악함을 보여주면서 왜 한 몸을 예비하여 주셔야 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의 언약을 다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된 자들이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이제 열매를 저절로 맺게 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듯이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억지로 만들어 내는 열매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은혜의 선물들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용서를 받은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얼마나 큰 용서를 받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같은 용서를 받은 사람들끼리 서로 용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용서로 한 해를 살았습니다. 다가오는 한해도 그 용서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그 사랑과 용서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