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에베소서 4:1~6 한 소망 2013. 4. 28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지난주에 소망에 대하여 말씀드린 시편 62:5절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편기자는 자신을 향하여 하나님만 잠잠히 바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소망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소망은 인간의 욕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실상을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라고 합니다. 또한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기에 저울에 달면 입김보다 가볍다고 합니다. 이런 인생에게서 나오는 소망이니 비전이니 꿈이니 하는 것도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서는 해 아래 사람들의 수고가 다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시편 146:3~5절입니다.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인생이란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됩니다. 이사야 2:22절에서는 인생의 호흡이 코에 있으니 수에 칠 가치도 없다고 합니다. 인생이 살아있다고 큰 소리 치지만 숨만 끊어지면 그 모든 생각과 계획이 다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자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누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겠습니까?

 

지난 금요일 창세기 4:25~26절에 나오는 아담과 아벨과 셋과 에노스의 이름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에노스 때에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아담은 땅의 티끌이며 땅의 먼지입니다. 아벨은 허무함과 안개입니다. 아벨 대신 셋을 주셨습니다. 셋이 낳은 아들 이름이 에노스입니다. 에노스라는 같은 단어가 성경에 어떻게 쓰이는지 보았습니다. 고칠 수 없는 중한 상처, 재앙의 날, 근심과 심한 슬픔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여인의 후손 이라는 이 계통의 이름들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땅의 티끌이 허무한 것을 낳아 고칠 수 없는 중한 상처로 인하여 근심과 슬픔의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력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절대의존적인 인간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간 인간은 티끌이며 안개와 같은 존재인데도 자기를 스스로 살려야 하기에 웅덩이를 만들었지만 그것이 터진 웅덩이임을 예레미야서 2:13절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이런 자들은 가인처럼 자기를 보호할 성을 쌓습니다. 라멕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합니다. 또한 온갖 문명을 발달시키면서 하나님 없이 하나님처럼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들의 힘을 축적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며 비전이며 꿈인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그 소망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인지 한 성령을 받아 마셨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선 로마서 8:23~25절을 봅니다.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 즉 부활의 영을 받은 우리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묵시적으로 완성이 된 구원이 아직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이 몸의 속량과 몸의 변화와 부활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재림하시면 죽은 자들은 부활하지만 산 자들은 홀연히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몸의 속량을 기다리면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소망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을 가진 자들은 참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참고 기다릴만한 믿음이 없기에 성령께서 성도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고(26)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34). 이런 은혜를 입은 자들은 이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과 위협과 죽음 앞에서도 그 소망이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그 소망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가진 자들도 다 탄식하며 그 날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벗어나서 그 아들의 영광을 자유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12~13절입니다.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 소망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 이루심을 지금은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과 서령으로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하게 하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도록 바울사도는 간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1~18절입니다. “봉독”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합니다. 옛 언약은 돌 판에 기록이 되었지만 새 언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에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옛 언약인 정죄의 직분도 영광스러웠기에 율법을 받아 온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영광은 장차 사라질 영광이기에 그것을 가리기 위하여 수건으로 가렸다고 합니다. 없어질 것도 영광스러운데 영원히 있을 것은 얼마다 더 영광 가운데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소망이 있기에 담대히 말합니다. 아직까지 구약을 읽을 때에 수건에 가려진 자들이 있는데 그 수건은 주께로 돌아가면 벗겨질 것이라고 합니다. 주는 영이시기에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은 주의 영광을 보게 되는데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변화될 소망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런 소망들은 세상의 사람들이 언급조차 하지 않는 소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오늘 우리가 이런 소망에 관심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소망의 다름입니다. 그런데 왜 동일하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데 이런 소망을 말하지 않습니까? 지난 목요일 구역공부를 하면서 소망이 무엇인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30대는 승진이 되고 자녀가 잘 자라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40대는 쉬고 싶다고 합니다. 50대는 자녀 결혼과 믿음 생활 잘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60대는 땅에 대한 소망이 없다고 하면서 말을 아꼈는데 개인적인 소망은 천국이지만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계면쩍어 보였습니다.

 

에베소서 1:18절입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우리가 본성적으로 가진 소망이 아닙니다. 그의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이것을 알기위하여 마음의 눈을 밝혀달라고 합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소망을 알게 됩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자의 충만 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는 것이 우리를 부르신 분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비워지고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됨이 소망입니다.

 

빌립보서 1:20~24절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지금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잇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기에 그렇게 하고 싶지만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한 성령을 받았다면 우리의 소망도 이러할 것입니다.

 

골로새서 1:3~6절입니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4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해서 여러분이 품고 있는 사랑을 전해 들었습니다. 5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날로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가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날부터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들었는데 왜 이런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입니까?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였든지 아니면 복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든가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복음을 제대로 깨달으면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있습니다. 소망이 하늘에 있는 근거로 인하여 믿음과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소망이 땅에 있기에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을 통하여 이미 나는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3~7절입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거듭나야 산 소망이 있게 됩니다. 산 소망이 있는 자들이 성도인데 성도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들의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늘에 간직한 유업입니다.

 

히브리서 11: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 마음의 바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구하라고 합니다. 비록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바라고 소원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구하고 바라는 것들이 거의 다 무엇이었습니까? 낡아지고 쇠하여지고 더러워지는 이 세상의 것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소망에 관한 말씀들을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즉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지금 우리가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보지 못하지만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광스러운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디도서 2:12~14절입니다.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복스러운 소망이신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