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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7:14~21 믿음이 없는 세대 2016. 8. 28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 2)(없음) (어떤 사본에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가 있음)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본 말씀은 산 위와 산에서 내려올 때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산 아래의 일입니다. 산 위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왕권을 가지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도 나타났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여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은 천국을 미리 경험하는 자리가 됩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와야 할 때에는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면서 질문한 내용은 엘리야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와야 한다는 말씀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오늘은 산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봅니다.

 

산위에는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곳에는 믿음이 필요 없는 곳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있는 현장이기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거나 믿음이 없다는 책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의 세계가 현실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산 아래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을 받는 자리가 됩니다. 지난주에 본 대로 산 위에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말씀을 받고 있지만 산 아래에서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자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그들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가 된 것처럼 지금 산 아래의 사람들을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십니다.

 

신명기 32:17~20절입니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18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1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 2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20절에서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라고 모세가 책망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는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 신명기 32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과 그 사랑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로 인도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짓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악을 행한 것 뿐 이라는 책망입니다. 출애굽 하여 광야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 반역한 것 외에 한 일이 없다는 책망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는 책망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과 다릅니다. 우리는 지적 동의나 의지적 결단 같은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목격하였기에 그 하나님이 일하심에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시편 78:7~8절입니다. “7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8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아삽을 통하여 이런 시편을 기록하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들과 같이 완고하고 패역하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고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정도로 믿음이 없고 패역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광야를 건너고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사는 동안 그들이 한 일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일만 하였습니다.

 

17~22절입니다. “17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 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18 그들이 그들의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19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20 보라 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니 시내가 넘쳤으나 그가 능히 떡도 주시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고기도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2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셨으며 야곱에게 불 같이 노하셨고 또한 이스라엘에게 진노가 불타올랐으니 22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때문이로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가 어떤 모습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믿음이 없고 패역한 것인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진멸이 되지 않은 것은 시편 78:38~39절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38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39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믿음이 없고 패역한 자들은 진멸당하지 않았음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그 죄악을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알아야 긍휼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 14~21절입니다.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렀다는 것은 예수님과 세 명의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내려와서 제자들과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 가신 때를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합니다.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며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지만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더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고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아야 하느냐며 책망하십니다. 신명기와 시편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체 역사가 얼마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인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말씀하시고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시고서 그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셔서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꾸짖어 고쳐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조용히 나아와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느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너희의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합니다. 앞에서도 믿음에 대하여 보았습니다만 믿음이 작다는 말은 믿음이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저기로 옮겨질 것이며 너희가 못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는 것은 이미 구약의 몇 곳을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언약을 따라서 신실하게 일하시고 계시는데도 그 일하심을 믿지 못하는 것을 믿음이 없다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왜 하나님의 일하심 안에 있으면서도 믿지 못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믿지 않습니다. 그 결과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는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이 패역한 일이 됩니다.

 

다시본문 19~21절을 봅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지 묻습니다. 제자들이 전에는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마태복음 10:8절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예수님께서 열 두 명의 제자들에게 이러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열 두 명의 제자만이 아니라 누가복음 10장에 보시면 70명의 제자들에게도 이런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돌아와서 예수님께서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하더라는 보고를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시면서 귀신이 항복 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쫓아내지 못한 것입니까?

 

그 이유를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작은 정도가 아니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제자들과 함께 사역을 하셨고 제자들도 권능을 받아 귀신을 쫓아 내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는 책망을 받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눈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로 가시고 나서 귀신들려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자를 어떤 아버지가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고쳐주지 못하였습니다. 이럴 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아이의 아버지에 대하여도 책망을 합니다.

 

마가복음 9:21~24절입니다.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아이의 아버지도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은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께 할 수 있으면 고쳐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못 고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시자 이 아이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며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십니다. 말 못하고 못 듣게 하는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십니다. 여기서도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고치지 못하였는지 물을 때에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 이런 종류가 나갈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이런 말씀으로 기도만능주의로 흘러갑니다. 마태복음의 21절은 없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서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없음이라는 구절이 있는 것은 성경을 왜곡한 것이라고 하면서 킹 제임스 번역만이 온전한 성경이라고 하는 현대판 문자주의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본에는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합니까? 기도와 금식을 하면 귀신도 쫓아내고 못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믿음에 대하여 근원적인 오해를 하고 있기에 이런 문제들이 나옵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믿음을 가지게 되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이와 정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믿음이 주체가 되어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입니다. 같은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도 내가 주체가 되어 믿음을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그 사람은 믿음을 선물로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기에(2:8) 이 선물을 받지 못한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이며 이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11:6). 그러므로 믿음이란 주체가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담과 함께 이미 선악과를 따 먹은 자들이기에 자기 주체성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어떤 명령이 나오든지 단어가 나오든지 간에 내가 주인이 되어서 그것들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주저하면 믿음이 없다고 책망을 하는 것이 오늘 이 땅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을 받아야 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크고 높은 비전을 가지고 믿음으로 이루어내라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믿음이 있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과 야망이 가득한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봅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믿음 만능주의, 기도와 금식 만능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합니다. 당신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만약 있다면 산을 명하여 옮겨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산이 실제로 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산이 있는데 그런 문제가 해결된다고 합니다.

 

제가 전도사로 있었던 부산 대연동의 석포교회 바로 옆에 부산문화회관이 있습니다. 그 자리가 원래는 작은 동산인데 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석포교회 담임목사가 기도를 많이 했답니다. 그 산을 옮겨달라고 기도하였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어느 날 포클레인이 와서 그 산을 광안리 해수욕장 옆의 매립하는 곳에 옮겨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안리 바닷가에 지나다가 눈물이 나서 차를 세우고 울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외부에 설교하려고 가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명하여 바다로 옮기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주차장도 이용하니 믿음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오늘도 이런 식의 믿음을 강조하는 곳이 산 아래 모든 곳에서 다 일어납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믿고 바란다면 그것은 사람이 힘을 써서 노력하면 됩니다. 그런데 믿음의 세계란 산 위의 현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이 세상이 멸망 될 것을 믿는 것이 선물로 받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믿음이라고 하는 내용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결과물을 얻어내기 위한 믿음이라면 그런 것들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한 믿음이 무엇인지 봐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1:9~12절입니다.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우리가 주체가 되어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 되어 있는 줄 착각하는 것이 죄인 됨의 특징입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이런 생각으로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영원 전에 아버지와 아들의 뜻대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정된 자들이 은혜로 복음을 믿게 되면 그 복음의 내용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입니다. 생명도 아닌 것과 썩어질 것을 복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복음이 다른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자신들이 주체가 아니라 내가 믿는 그 분이 그날까지 자신을 지키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로마서 8:22~30절입니다.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3)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는 받은 성도가 세상의 탄식소리를 듣습니다. 세상 만물의 탄식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성도 자신도 탄식하면서 몸의 속량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아담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한 탄식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탄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부를 축적하고 건강을 증진하며 노후를 잘 대비하여 탄식이 없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은 눈에 보이는 소망 외에 달리 소망이 없습니다. 이들이 교회를 다닌다고 하여도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사람이 믿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은혜입니다. 이런 믿음의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과 성령의 임함으로 일어납니다. 이런 자들을 위하여 성령은 성도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결과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그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결과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덧입는 것이며 그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일들을 믿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고 영화롭게 까지 된 그 놀라운 사실들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이런 자들은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는지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1~4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가리는 세력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신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가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유혹한 마귀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세상의 영광이 되는 것을 추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는 길은 사탄에게 경배하면 그렇게 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용과 이생의 자랑을 부인하고 십자가로 가셔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복음의 광채를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세력이 이 세상의 신입니다. 산 아래 동네가 다 그러합니다. 그런 산 아래의 동네에서 우리가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산 위를 보게 됩니까?

 

이어지는 5~6절입니다.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태초에 빛이 있으라고 하신 그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된 성도들은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게 됩니까?

 

7~18절입니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믿음의 사람들은 날마다 죽음에 넘겨지는 삶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납니다. 이런 자들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임을 믿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고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산 아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는 책망을 듣고 있다면 소망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책망을 듣고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들 안에 그리스도 영이 임하셨기에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