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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15~20 예수님이 계신 곳 2016. 10. 9

 

15 네 형제가 4)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오늘 이 본문을 읽었을 때에 우리의 눈에 가장 분명하게 들어오는 구절이 어디입니까?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는 말씀과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어 줄 것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앞의 말씀은 가톨릭에서는 교황의 파문 권을 말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미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고 하시면서 매고 푸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교황 권으로 봅니다. 그런데 개신교에서는 이 말씀을 교회의 치리로 봅니다. 바울도 교회에서 악행 하는 자들을 쫓아내라고 했기에 그렇게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골치 아픈 내용보다는 두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된다는 것에 더 마음이 갑니다. 그래서 합심기도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응답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무엇이든지에 무엇을 넣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소원들을 넣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제목을 내어 놓으려면 너무 세상의 것을 밝히는 것은 부끄러우니 좀 고상한 제목을 내어 놓도록 두세 사람이라도 함께 기도하라고 했다는 해석도 보았습니다. 어떻든 문자대로 보면 두 사람이 합심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고 하였으니 두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합심기도하면 더 잘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오늘날도 도처에서 합심기도나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씀이 그러할까요?

 

마태복음 18장은 전체가 하나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 번에 걸쳐서 보았습니다만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의 답변의 내용이 마태복음 18장 전체의 내용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어린 아이 같아야 하며, 천국에 큰 자는 어린 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자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어린 아이 같이 지극히 작은 자를 영접하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지만 이들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지상에서 천국을 보여주는 유일한 곳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교회가 어떤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느냐가 마태복음 18장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죄 앞에 4)라는 각주를 보면 네게 죄를 범하거든 입니다. 같은 믿음의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범한 것이 있다면 그 사람과만 상대하라고 합니다. 동네방네 소문내지 말고 가서 권고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권고를 들으면 형제를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도가 서로 교통하며 권면하는 것입니다. 같이 용서 받은 자로서 주님의 용서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권면입니다.

누가복음 17:3~4절입니다.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1~2절을 실족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서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면 경고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경고하였을 때에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합니다.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회개한다고 하면 너는 용서하라고 합니다. 일곱 번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완전함을 말합니다. 우리가 완전한 용서를 받은 자라면 성도끼리 이러한 용서가 일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누가 잘못한 것을 보면 조용히 가서 권면을 합니까? 아니면 온 동네 소문을 냅니까?

 

본문 16절입니다. 개인적인 권면을 하였는데 듣지 않는다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19:15절에서 재판을 할 때에 모든 악과 죄에 대하여 한 증인으로만 하지 말고 두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율법에서는 죄가 확증이 되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율법의 말씀을 오히려 용서하라는 말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권면하여 돌이키면 형제로 맞으라고 합니다. 두 세 명이 가서 권면하는데 돌이키면 역시 용서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율법에서는 죄가 확증이 되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신명기 19:15~21절입니다. “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16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면 17 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18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 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19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20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21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이스라엘은 세상의 나라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헌법이 된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재판장은 하나님의 율법으로 재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은 죄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그 악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악을 행한 형제를 용납하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구분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17절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율법대로 하면 하나님 앞에서 설 자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심판과 용서와 하나님의 의를 보여줍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이며 그 후부터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16:16). 이것이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입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두 세 사람이 권면하여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라고 합니다.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방인과 세리는 하나님의 백성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가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을 증거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그리스도의 피를 증거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교회에서 쫓아내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도행전20:28~32절입니다.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3)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사도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말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나고 나면 외부에서 이리가 온다고 합니다. 또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자 중에서 제자들을 끌어서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이러한 것들을 잘 분별하여야 하며 이러한 자들을 쫓아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은혜의 말씀께 교회를 부탁합니다. 교회는 교회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그 말씀으로 든든히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개인의 권면도, 두세 사람의 권면도, 교회의 권면도 듣지 않는 자를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합니다. 세리와 이방인과 같이 여기라는 말씀은 쫓아내라는 의미보다 긍휼의 대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이방인과 세리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이방인 취급받는 세리와 창기들과 어울리신 예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배척하는 자들이야 십자가의 원수들이지만 마태복음 18장의 문맥에서는 연약한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유다서에서는 어떤 의심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 또 어떤 자는 불에서 끌어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자들은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하지만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1:23). 즉 심판보다 긍휼이 더 크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법대로 하면 다 심판이지만 주의 긍휼로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합니다. 성도는 땅에 살지만 하늘과 연결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역사와 묵시의 교집합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비록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그 소속은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형제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푸는 것이며 맨다는 것은 교회의 말 곧 복음을 듣지 않는 자들은 매이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매고 푼다는 것은 주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이러한 말씀을 교회가 매고 푸는 것 곧 형제를 용서하는 문제와 연결하지 않으면 거저 자기 소원을 아뢰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앞 뒤 다 자르고 이 말씀만 인용하여 합심기도하면 하나님은 무엇이나 다 들어준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만약 두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면 세상에 못할 일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남북통일이 문제이겠습니까? 한국의 경제가 문제겠습니까? 세계의 평화가 문제이겠습니까? 두 사람만 합심하여 기도하면 무엇이나 다 들어준다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신다는 것이 무엇인지 봅시다.

 

요한복음 14:13~14절입니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나 구하면 예수님께서 시행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가 영광을 얻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마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구하고 예수님을 이름으로 구하는 것입니까? 내가 소원하는 것을 다 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하면 다 이루어주신다고 믿는다면 이 사람은 아직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께서 떠나신다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근심을 합니다. 예수님은 떠나가시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가셔서 거처를 마련하신다고 합니다. 이 거처란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거할 수 있는 처소를 말합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가 되셨듯이 성도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처소란 성령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셨지만 아버지 나와 하나라고 하신 것은 성령으로 하나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시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세상의 썩어질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것들을 알고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처소를 마련하시기 위하여 제자들을 떠난다고 하십니다. 이 처소를 마련하는 길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로 하나님이 언약을 다 이루어내심으로 언약의 백성들과 함께 하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을 포도나무 비유로 설명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그러면 가지가 포도나무에게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한 몸이기에 그리스도께서 구하신 것을 구하게 됩니다. 그 구하심이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것을 말합니다.

 

본문 20절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두세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님이 그들 중에 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장로들의 유전인 미쉬나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앉아서 율법 말씀을 연구할 때에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신다이러한 장로들의 유전을 잘 아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이 말씀의 율법과 하나님 대신에 예수님 자신을 대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이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하여 모인 두세 사람이라도 그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2:29~32절입니다.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은 세상의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원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적은 무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그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두세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였다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요한일서 5:13~17절입니다.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오늘 본문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 곧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한다고 합니다. 영생이 있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이 그 안에 임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영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이 임하였다고도 하며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임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이제 담대하게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의 뜻대로 구하면 들어주십니다.

 

그러면 그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본문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여러 모양으로 실족하며 악에 빠진 자들을 위하여 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면 구하라고 합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형제 가운데 연약하여 실족하고 악을 행하는 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 그러한 자들입니다. 이들을 위하여 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즉 사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는 말씀은 마태복음 18장과 요한복음 14장과 15장과 요한 일서 5장을 연결하여 보면 교회의 지체들이 연약할 때에 함께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18~21절을 봅니다. “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 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하나님께로 난 자는 범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예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시고(8:34) 성령이 성도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십니다(8:26). 이런 자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하여 있습니다. 에베소서 2:2절의 말씀대로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가 있고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 하는 영 곧 이 세상의 신에 속한 자가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성도는 역사와 묵시의 교집합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세상은 악한 자의 세력이 주님 다시 오셔서 이들을 멸하실 때 까지 발악을 합니다. 그러므로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짓는 형제들을 위하여 구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자신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간구하는 것이 성도의 교통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두세 사람이라도 모여야 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비밀을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몸의 지체는 서로 다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같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두세 사람만 모여도 각자의 주장과 성향과 기질이 다름을 보게 됩니다. 똑같이 복음을 들어도 해석과 적용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논쟁과 다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혼자 있으면 자기 죄를 잘 모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하면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전도회가 있고 구역이 있습니다. 구역은 일 년에 자기 가정에서 한번 모입니다. 그리고 삼 개월에 한번 식당 봉사와 청소가 있습니다. 성가대와 교사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라도 열심히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혼자 도 닦듯이 교회생활을 하면 자신의 죄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함께 부딪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약함과 악함이 어떠한지 드러나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 각자가 자기가 옳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큰 소리도 날 것입니다.

 

그러나 조용히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면 얼마나 자신이 죽지 않았는지 알게 됩니다. 사람들마다 남을 핑계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세워지면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실상이 비쳐지면 자신이 회개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라도 모여서 무엇을 기도하겠습니까? 자신의 악함과 우리의 악함을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시고 매고 푼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관계성을 말합니다. 죄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의 단절로 이웃과의 단절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괴리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비밀을 배우는 곳이 두세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두세 사람이라도 함께 모이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듣는 분도 주변의 두세 사람이라도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함께 해 보면 같은 방향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도 얼마나 자기주장들이 나오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야 함을 알 뿐 아니라 자신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 임을 확인하고 그렇지 못한 모습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함께 하신 두세 사람이 모인 자들이 무엇이든지 주의 이름으로 구하는 내용은 연약한 지체들 끼리 서로 용납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부르심입니다(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