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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2:43~45 이렇게 되리라 2016. 3. 13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이런 예화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을의 한 집에 세를 살던 사람이 이사를 나가면 주인은 그 집을 수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세를 놓습니다. 그런데 그 집을 관리하던 주인의 사정으로 수리한 집을 오랫동안 돌보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는 빈집이지만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 줄 알기에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압니다. 그러면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그곳에 몰래 들어가서 자기들의 아지트를 만듭니다. 그러면 그런 집은 어떻게 되는지 가끔 뉴스에서도 나옵니다. 그런 곳에 아이들이 모여서 온갖 나쁜 짓들을 하는 범죄의 소굴이 됩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11:22절부터의 결론으로 보시면 됩니다. 22절부터 다시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귀신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사람들이 놀라면서 이 사람의 다윗의 자손 곧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나 동네나 집은 서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이 강한 자를 결박하여야 그 강한 자의 소유를 탈취하여 내는 것처럼 지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계시는데 이것을 귀신의 왕의 일로 본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헤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가지고 귀신을 축출한다고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합니다. 귀신 들린 자라고 하면 귀신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하고 언제 들어갔느냐며 나오라고 명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무당들이 굿을 하는 곳에서도 나오고, 민간요법에서도 나옵니다. 얼마 전에 나온 검은 사제단이라는 영화는 귀신을 축사(逐邪)하는 신부들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사찰에서 현수막을 걸어두었습니다. ‘빙의(憑依)된 자 축사(逐邪)전문 사찰이라고 붙여놓았습니다. 빙의란 귀신이 들어붙은 사람을 말하고 축사란 그런 사귀를 몰아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사탄을 좇아낼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런 일은 무엇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라서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런 축사를 통하여 잠시 조용한 것 같아도 나중에 더 심하여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계속 그런 현상에 붙잡힐 수밖에 없기에 그러한 일들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들은 대부분 뇌의 문제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뇌의 전기 자극 이상이나 호르몬의 과다 분비 또는 과소 분비로 인하여 생각과 행동의 무질서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심각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자기들은 평소에 거룩하고 깨끗하다고 여기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그렇게 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경고하시기를 인자를 거역하면 사함을 얻지만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대와 오는 세대에서도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용서 받지 못하는 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용서 받지 못하는 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알게 되는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대적한 모든 말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이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다시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구한 것입니다. 이 내용은 지난주에 요나의 표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보려면 이렇게 연결된 말씀들을 함께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내가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임을 믿지 못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의 상태가 어떻게 되는지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악한 세대가 이렇게 되리라고 한 비유가 어떤 말씀입니까?

 

본문 44~45절은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결론은 이 악한 세대가 이렇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왜 나갔는지는 언급이 없습니다. 이것은 비유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귀신이 어떻게 나가게 되었는지는 언급은 없지만 마태복음에서 유추하여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지만 제자들도 귀신들을 쫓아내는 권세를 예수님께서 주셨습니다(10:1).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귀신이 쫓겨난 자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귀신이 쫓겨난 것이며 제자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이 쫓겨난 것은 예수님말씀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여 진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4절입니다.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3절에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여 진 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시작되는 성령을 보내셔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시는 말씀의 연속선상에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고 말씀이신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 곧 말씀으로 채워서 사는 것이 빈집으로 살지 않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이 곧 물과도 연결이 됩니다. 조금 알레고리하다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성경의 평행구절을 찾아보면 물이 곧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어떻게 거듭나느냐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3:5). 물과 성령이란 평행구절로 봐야 합니다. 흔히 물은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고 성령은 성령의 세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물을 말씀으로 보셔도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이것이 말씀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평행구절은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한다는 에베소서 5:26절의 말씀도 있습니다. 물로 씻는다고 우리의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물로 씻어 몸이 깨끗해지는 것처럼 말씀으로 깨끗하게 한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평소에 우리가 아는 단어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더 깊이 이해하도록 평행구절이나 동의어를 상당히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면 귀신이 쫓겨난 것은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쫓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귀신이 거하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누가복음 16장에 보시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지옥에 들어가서 불 가운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무엇이 없습니까? 물이 없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부탁하기를 나사로의 손가락에 물을 찍어서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하여 달라고 하지만 이곳과 그곳은 건너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나사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어 지옥에 오지 못하게 하라고 부탁하니 모세나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물과 말에 대하여 나옵니다. 모세나 선지자들의 말은 십자가 이후에 사도들의 말 곧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표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게 됩니다. 이렇게 복음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의 떡이며 생명수임을 믿는 자들입니다.

 

오늘본문 43~45절을 봅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 나가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 귀신이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는데 주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온 것입니다. 일곱이란 완전한 귀신의 장악을 말합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귀신 쫓아내시는 사역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그들의 상태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음을 일곱 귀신 들린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악한 세대가 이렇게 되리라는 것은 예수님을 배척하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와 선지자를 통하여 이미 들은 자들입니다. 어떤 민족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들을 깨끗하게 한다고 살아온 자들입니다. 특히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 자신들이 멸망한 이유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다는 자기반성이 일어납니다. 물론 선지자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자는 운동이 바리새파 운동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율법을 통하여 자신들의 죄를 알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율법적인 의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을 믿으라고 하는 말이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곱 귀신 들린 모습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죄인으로 취급하는 세리와 죄인과 창기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귀신이 쫓겨나고 예수님께서 그들의 주와 그리스도가 된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율법체계로 살아가는 사람이나, 자신의 윤리도덕과, 자신의 선행과 자신의 공로로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자들이 일곱 귀신 들린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듣는 양심적이고 세상의 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들으면 이런 말을 하는 자를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의 시대나 지금이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며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완성된 자리임을 믿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속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나의 표적 외에 다른 표적을 구하는 자들이 악한 세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란 나의 뜻과 나의 계획과 나의 탐심이 죽는 자리입니다. 금요일 성경공부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소망이라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소망이라는 말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소망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십자가 안과 밖으로 나누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6:14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세상이 죽은 세상으로 보입니까? 그러면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말하지만 그 십자가로 십자가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기업과 하나님의 그 강력한 일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그리고 이 일에 하나님의 자기 백성도 함께 참여시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앉힌 이 강력한 일을 말하지 않고 이미 죽은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라면 말은 십자가라고 하지만 일곱 귀신에 사로잡힌 모습입니다.

 

요한일서 2:15~17절을 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구한다면 그것이 세상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갑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 곧 그 아들을 믿는 자는 영원히 삽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14~16절입니다. “14 그러나 너희 마음 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세상의 것들 취하기 위하여 시기와 다툼과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것들이 다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며 귀신의 것입니다. 무엇이 귀신 들린 것인지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17~22절입니다.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사도들이 풀어쓴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예수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는 그들의 형편이 일곱 귀신이 더 들어가 그 나중 형편이 어떻게 비참하게 되는지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베드로 사도는 거짓 선생들에 대하여 경고로 말씀 합니다. 멸망하게 할 이단들을 가만히 끌어들인 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하게 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여럿이 호색하는 것을 따릅니다.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습니다. 그들이 탐심으로 지어낸 말로 교인들을 그들의 이익의 재료로 삼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들이 심판 받을 것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천사들의 심판 받음과 노아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심판을 받을 자들이 거짓 선생들입니다. 이들 중에 영지주의자들도 있습니다. 영지주의란 예수님을 특별한 영적인 지식으로 다 알았으니 이제 자신들은 존재론적으로 진리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이미 진리가 되었으니 사는 것은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고 하면서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 십자가의 완성된 복음을 믿는다는 자들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어차피 죄인인데 이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하는 자들이 우리 안에서 발견되지 않습니까?

 

이런 자들이 물이 없는 샘이라고 합니다. 생명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입니다. 비를 뿌리지 못하는 안개라는 말입니다. 이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이 물이 없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7:38절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흐른다고 하였습니다. 그 물이란 곧 성령입니다. 성령은 곧 말씀이기도 합니다(6:63).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전하여지면 그것이 물입니다. 생명의 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물이 없는 곳이 귀신이 거하는 곳이 됩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생들의 말에 넘어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합니다. 자신들은 아주 자유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으면서 자유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하여도 그들이 멸망의 종들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만일 그들이 우리 주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었다면 이제 예수님의 말씀이 그 안에 풍성하게 채워져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듯이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를 받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미 자신들은 진리의 지식을 다 안다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진리를 깨달았기에 이제 내 마음대로 살아도 상관없다고 하는 자들이 초대교회 때도 나왔고 지금도 나오고 있습니다. 의의 도를 안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 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그들에 나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자기 편의대로 믿어놓고서는 마음껏 자유 한다고 하는 자들은 차라리 듣지 못한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듣지 못하였다면 오히려 종교적인 두려움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성을 바라보게 되었다면 그는 더욱 주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쭙잖은 복음 지식으로 마음껏 죄 짓고 살고 싶었던 욕망을 발산하고 사신다면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자들은 보고 개가 토하였던 것을 도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고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한 것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성 안에 있다면 이럴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전부임을 날마다 새롭게 인식하고 바라보며 사모하게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내 안에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있는지 그 말씀을 사모함이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유다서 1:12~13절입니다. “12 그들은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유다서도 거짓 선생들에 대하여 주의하라고 합니다. 거짓 선생들의 특징은 물이 없는 구름이라고 합니다. 생명의 말씀이 없습니다.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고 합니다. 생명수가 없다는 표현입니다. 있는 것이라고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은 바다의 거친 물결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혼돈과 무질서와 하나님을 대항하는 세력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바다가 없고 생명수가 흐릅니다. 그 생명나무와 생명수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 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유다서 1:17~23절입니다. “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복음을 듣고 믿게 되면 긍휼로 구원받았음을 알뿐 아니라 우리 주 예수의 긍휼을 기다리며 다른 사람도 긍휼로 대할 것입니다. 긍휼이란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긍휼을 더럽히는 자들이 나옵니다. 거짓 선생들이 일어나고 복음을 알기전보다 복음을 안다고 한 후에 복음을 알기 전보다 더 정욕대로 살아가면서 오히려 자신의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내는 것처럼 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복음을 알기 전보다 안다고 한 후의 형편이 더 심한 귀신에 장악되는 모습들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 당시의 악한 세대 곧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나타나리라고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 이 시대도 이런 자들이 나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난 후의 모습이 어떠한지 이러한 말씀으로 잘 점검해 보시기바랍니다.

 

유다서 1:24~25절입니다.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이 모든 일들로부터 능히 보호하여 내십니다. 그리하여 거침이 없게 하시고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세우시는 것도 우리 하나님의 약속대로 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돌려지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