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22~28 미혹(迷惑) 2017. 6. 11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1)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마태복음 24장을 볼 때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을 중첩적으로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분으로 전체를 말씀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23절입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박해를 받으면 다른 동네로 가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멸망이 온 세상의 멸망임을 함께 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 22절입니다. 그 날들이란 환난의 날입니다. 이 환난의 날이란 21절에서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환난의 날들도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극심한 환난이 닥쳐도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세상의 난리 소식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믿기에 견딜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해도 따라 나서지 않는 것입니다.

 

23~26절입니다. “봉독 오늘 설교제목을 미혹이라고 하였습니다. 미혹(迷惑)은 무엇에 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환난의 때에 무엇이 가장 큰 미혹입니까? 그리스도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미혹입니다.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하여도 믿지 말라고 합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이유는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고 하여도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고 하여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결국 미혹은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그리스도를 기다려 왔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가 오시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리스도 곧 그들의 왕으로 오실 분이 어디에 오시는지 그 장소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였을 때에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오다가 예루살렘성에 와서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예루살렘과 헤롯 왕궁이 난리가 났습니다. 헤롯이 유대의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불러서 그리스도가 어디에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들이 대답하기를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고 미가서 5:2절의 말씀을 들어 바로 답변을 합니다. 그 정도로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이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동방박사들이 온 때를 기준하여 2세 이하의 사내아이를 살해했습니다. 그리하여 베들레헴의 통곡소리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성경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는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사도행전 5:34~37절입니다.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사도들은 너희가 십자가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자 유대의 공의회가 이들을 잡아서 심문을 합니다. 공의회가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을 금하였는데 너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 한다면 우리가 그 피를 흘린 살인자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제자들을 협박합니다. 이 때 바리새인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서는 공의회 회원들에게 말하기를 드다와 유다가 사람들을 꾀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 나섰지만 그가 죽임을 당하니 사람들이 흩어졌다고 합니다. 이들의 활동은 로마를 몰아내고 유다의 독립을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따라나선 것은 이들을 그리스도로 보고 따라 나섰지만 이들이 죽자 끝이 났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말리엘이 말하기를 사도들도 가만히 내 버려두면 그들이 따르는 자가 죽었기에 자연히 흩어질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전하는 사상과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지만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가 없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공회원들이 그 말을 옳게 여기고 풀어주면 되는데 채찍질 하고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하고 놓아줍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욕을 받는 일을 기뻐하면서 어디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전에도 백성을 미혹하는 자들이 나온 것입니다.

 

사도행전 21:38절입니다.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바리새인이며 가말리엘의 가르침을 받은 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자를 잡아 죽이고 핍박하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였습니다. 이방인의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소요를 일으킵니다. 이때 천부장이 소요를 진정시키려고 바울을 잡아 영내로 끌고 가다가 바울이 헬라어로 천부장에게 말을 하니 천부장이 바울에게 묻기를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고 물어봅니다. 애굽 출신의 유대인이 로마에서 해방을 말하며 무려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자들을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면서 따라 나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하여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후에도 그리스도 운동들은 많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몰려갔습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세례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바라고 기다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3:15). 이정도로 유대인들을 그리스도를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에서 누가 어떤 표적을 보였다고 하면 사람들이 몰려든 것입니다. 표적만이 아니라 무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이 따라나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표적과 능력을 보여준다고 하여도 그들을 따라 나서지 말라고 합니다.

 

신명기 13:1~3절입니다.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이적과 기사를 보이고 그 말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그가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한다면 그를 따르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이 나타나는 것은 마음과 뜻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표적과 이적을 실제로 나타내 보이면서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말하여도 여호와 하나님의 내용을 다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신데 그 언약을 떠나게 만들어 자신의 탐심을 따른 하나님을 부르게 하는 것이 미혹입니다. 이들을 죽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2:38~41절입니다.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 곧 십자가만이 표적이라고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9~12절입니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1)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1)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신명기 13장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표적과 기적을 보고 따라가는 자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미혹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대의 미혹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서 성공한 것이 예수 잘 믿는 표적이라고 하는 것이 번영신학의 미혹입니다. 지난주에 진영에 시찰회로 모였습니다. 교회당이 있는 곳이 섬과 같은 곳이었는데 진영을 지나는 철도가 없어지고 길이 생김으로 땅 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여러 목사들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떤 한 목사는 이것이 복인지 저주인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하였습니다. 땅 값이 오르든지 내려서 망하든지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복인데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복이라고 한다면 이것도 미혹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형태만이 아니라 신비적인 체험위주로 나가는 것도 미혹입니다. 무엇을 보았다. 들었다. 체험하였다는 것으로 나가는 신비주의도 미혹입니다. 신비주의만이 아니라 금욕주의도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괴롭게 하면서 육신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이 겉으로는 지혜 있어 보이지만 그런 행위 자체가 육체의 일이기에 육체를 금하는 일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미혹만이 아니라 성경을 원어로 풀고, 비유로 풀고, 숫자로 풀어가면서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들을 깨달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런 표적과 기적이 아닙니다.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고린도전서 1:18~24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2)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지혜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입니다. 헤브라이즘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체험한 표적과 기적을 따르는 것입니다. 헬레니즘은 인간의 이성이 주체가 된 사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대인들의 지혜나 헬라인들의 지혜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결코 알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표적도 아닐 뿐 아니라 저주 받아 죽은 죽음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 마다 저주 받은 자라는 신명기의 말씀을 알기 때문입니다(21:23, 3:13).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것들을 다 폐하시고 거리끼고 미련한 십자가로 구원합니다. 이렇게 하심은 어떤 인간도 스스로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찾아 나와 믿는 자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이 됨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서도 사람들은 속히 십자가에서 떠나 가 버립니다.

 

갈라디아서 1:6~10절입니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의 은혜 곧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 홀로 다 이루셨습니다. 홀로 다 이루신 그 공로를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로 넘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왜 사람들이 속히 떠나는 것입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사람의 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약속을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 드러납니다. 이런 복음은 복음 자체가 인간을 부인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의 가치를 높이려고 한다면 이런 복음이 싫은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을 좋게 하느냐 하나님께 좋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바른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의지하고 자랑하기에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인간의 행위를 섞게 되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갈라디아서 3:1~3절입니다.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1)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이 미혹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밝히 보이는 것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붙들게 됩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가면서 내가 언제까지 십자가만 바라봐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이것이 바로 미혹입니다. 그런데 미혹은 아주 고상하게 다가옵니다. 이제 나의 육체로 무엇을 해 보겠다고 나섭니다. 십자가로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적인 행위로 나가는 것이 육체로 마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자체가 이미 완성입니다. 완성이기에 그 십자가 자체로부터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믿지 못하기에 자꾸만 자기의 행위로 가려고 합니다.

 

누가복음 18:7~8절입니다.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이 말씀은 강청 기도하여 소원 성취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까지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만 의지하고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기가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란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에 있다고 한다고 그리로 쫓아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광야에 있다고 해서 광야로 따라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골방에 있다고 해서 따라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도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성도라면 오직 믿음으로 기다립니다.

 

본문 27~28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번개가 번쩍임과 같이 오십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예수님의 재림을 중첩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사람들이 예측하고 기다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평안하다고 할 때에 갑자기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번개가 번쩍임 같이 임하며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하신 말씀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찾아서 이곳저곳으로 다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와 예루살렘의 멸망직전과 초대교회 때에도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그리스도는 언제나 등장하였습니다. 지금도 역시 종말의 시대이기에 거짓 그리스도가 곳곳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번개가 번쩍 하는 것은 온 세상이 동시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들 듯이 그리스도의 재림은 가시적으로 다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1:11절은 제자들이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 천사들이 나타나서 말한 내용입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그러므로 지금도 곳곳에서 보혜사가 왔다고 하든지, 재림 예수가 왔다고 하든지, 어떤 그리스도가 왔다고 하면서 온갖 표적과 기적을 다 보여주어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증거 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까지 미혹 당하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