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마태복음 11:7~15 무엇을 보려고? 2015. 12. 27

 

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오늘 우리는 여기에 무엇을 보려고 오셨습니까? 교회당 건물은 볼 것이 없습니다. 저도 별 볼일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보려고 오셨습니까? 젊은 청년들은 애인을 보러 왔습니까? 도대체 오늘 여기에 우리는 무엇을 보려고 모였습니까? 오늘 말씀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간 후에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무리들은 예수님의 제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한때 세례요한에게 몰려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지목하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세례요한의 제자들도 상당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무리들에게 세례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사역이 어떤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은 세례요한의 사역과 천국이 어떻게 임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한 내용이 됩니다.

 

본문 7~9절을 보시면 무리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고 합니다. 이들이 광야에 나간 이유는 세례요한을 보기 위하여 나간 자들입니다. 세례요한이 선지자인지 아니면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인지 보려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이미 증거 하였습니다. 그런데 무리들은 아직도 세례요한의 사역과 세례요한이 증거 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헷갈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너희가 광야에 나간 것은 갈대를 보려고 나간 것도 아니고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들을 보려고 나간 것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들이야 왕궁에 있다고 하시면서 너희가 선지자를 보려고 나갔더냐 하시면서 옳다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은 선지자 보다 더 나은 자라고 합니다.

 

10절을 봅니다. “1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여기서 인용된 말라기 3:1~2절을 봅니다.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구약의 말라기 에서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시는데 그가 여호와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왕이 어느 마을에 가면 왕보다 앞에 가서 왕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보안 때문에 비밀리에 진행합니다만 옛날에는 왕의 오심을 사자가 미리 알림으로 모든 백성들이 왕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사자를 보내시고 그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하는 주가 그의 성전에 임할 것인데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사모하는 언약의 사자 곧 언약을 이루실 사자가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니라 두려운 소식이 됩니다. 그러므로 누가 능히 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기다리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시면 그들이 당장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심판을 기억하지 않고 거저 구원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한 세례요한은 구원이전에 회개를 선포한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친 것입니다. 세례요한도 그리스도가 오셨으니 당장 심판을 하시고 악인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시고 의인은 구원하여 메시아 왕국을 이루실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옥에서 예수님의 일하시는 소식을 듣고서 실족할 뻔 한 내용은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만이 아니라 유대인들은 누구나 기다린 것입니다. 방금 본 말라기 말씀에서도 너희가 사모하는 언약의 사자가 임하면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모한 언약의 사자가 임하는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될 것임을 꿈에도 생각 못한 자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물론 대분의 유대인들도 자기들은 율법을 지키기에 구원을 받고 유대인 가운에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나 세리나 창기와 같은 자들과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말라기 말씀대로 심판이 먼저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세례요한에 대한 평가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십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만이 아니라 율법도 시편도 다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4:44~48절입니다.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부활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며 이 말씀의 증인들이 바로 증언할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예수님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말하는 것은 구약 전체를 말합니다. 구약 전체가 가리키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기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증인들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의 모든 내용들이 세례요한의 손가락에 다 모아집니다. 그리고서는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역이 구약의 어떤 선지자들보다 더 크다고 한 것은 세례요한의 인품이나 그의 사역의 내용과 양에 있어서 크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모하며 기다려온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하였기에 세례요한이 크다고 한 것입니다. 사람들끼리 크고 작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심을 말합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 크다고 합니다. 이것은 또 무슨 말씀입니까? 세례요한의 위치와 역할이 본격적인 천국의 바깥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세례요한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였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꾸만 내가 어떻게 큰 자가 되고 높은 자가 되는가에 관심을 가지니 이런 말씀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보시면 어려운 해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천국에서 세례요한 보다 크다는 말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보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완성하실 그 천국을 세례요한은 보지 못하고 성령의 인도로 가리키는 역할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된 그 나라의 백성이 크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성이 얼마나 크고 높으냐는 말씀이지 세례요한이 낮고 우리가 높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3:21~23절입니다.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린도 교회에 파당이 생긴 것입니다. 파당이 생긴 것은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누가 더 높으니 하는 말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면서 만물이 다 너희의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희란 성도를 말합니다. 성도가 얼마나 놀라운 직분인지 아십니까?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것은 이런 교회 아무른 직분도 없는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어디로 수렴이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수렴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것이 된다면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몸의 기능상의 구별은 있지만 어느 것이 더 높고 크고 귀하냐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1:39~40절입니다.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브리서 11장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증거를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약속된 것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내용입니다. 구약에서 더 좋은 것이란 새 언약입니다. 새 언약의 증거를 받았지만 그 언약으로 약속된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의 다 이루심으로 인하여 부활이 일어난 것이며 성령이 임한 것이고 재림이 약속된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받은 신약의 성도들로 인하여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이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그 내용입니다. 이것을 멀리서 본 사람과 그 십자가 안의 차이를 말하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약의 백성이나 신약의 백성들이 동일하게 의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오늘본문 12절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이 말씀에 대하여 많은 의견들이 있습니다. 문자대로 보면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는 자의 것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나오면 그 문자자체만 보지 말고 성경전체를 봐야합니다. 성경전체에서 인간이 천국을 침노하여 폭력적으로 빼앗을 수 있다는 곳이 한곳이라도 있습니까? 오히려 천국은 인간의 접근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생들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천사의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차단이 되어 있습니다. 천사의 칼을 피하거니 이겨서 생명나무로 나아갈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천국은 인간의 행위로는 들어갈 수 없음을 성경은 명백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천국은 침노를 당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합니까?

 

우선 헬라어 문법적으로 봅니다. 헬라어에는 수동태의 모습으로 능동태를 표현하는 중간 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행위의 주체와 객체를 구별하기 어려운 때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수동태로 때로는 능동태로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이 주체입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주체입니까? 여기서 보면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가 주체로 보입니다. 그러나 문맥 전체를 보시면 지금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이야기입니까? 천국이 임하였다는 소식입니까? 세례요한의 선포로부터 천국이 도래한다는 소식입니다. 천국이 강한 힘으로 폭력적으로 밀고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주어입니다. 물론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어가 되셔서 그 힘의 능력으로 천국이 쳐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국이 쳐들어오게 되면 당연히 나의 나라, 나의 가치, 나의 주인 됨은 무너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 우리가 천국에 쳐 들어가야 한다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금요일 어느 집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분이 전에도 교회를 다녔지만 2004년부터 어떤 계기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의 열심이었는지 11년 동안 주일예배 한 번 빼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였느냐고 하니 그렇게 해야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복을 받고 천국에서도 상을 크게 받는다고 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들리기 좋은 말이 오늘 이 말씀처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거칠고 폭력적인지 무언가 일을 한다고 나서면 겁이 납니다. 이런 자들이 천국에 쳐들어간다면 천국은 그야말로 지옥이 됩니다.

 

본문 12~14절입니다.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천국은 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폭력적으로 쳐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기준을 13절에서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고 합니다. 선지자와 율법이란 구약전체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이 예언한 것이 세례요한까지입니다. 세례요한까지라고 한 것은 천국의 예언이기도 합니다. 세례요한이 천국을 몰고 오신, 천국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즐겨 받는다면 오리라고 한 엘리야가 바로 이 사람 세례요한이라고 합니다.

 

말라기 4:1~6절입니다.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구약의 모든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악인은 심판을 받지만 여호와의 구원을 받는 자들은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은 비추리라고 합니다. 그런 자들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세에게 명한 율법을 기억하라고 하시면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옵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말합니다. 이들이 증거 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마태복음 17장의 변화 산에서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모하셨을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나타나 별세를 의논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날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하기 전에 엘리야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와서 저주를 그 땅을 친다고 합니다.

 

구약의 마지막 성경 말라기에서 예수님은 두 곳의 말씀을 인용하셔서 세례 요한의 사역을 말씀합니다. 앞에서 본대로 언약의 사자가 나타나기 전에 그 길을 예비하는 자가 세례 요한입니다. 그리고 방금 본 말씀에서는 엘리야가 와서 회개를 촉구하게 될 것인데 그 엘리야의 역할을 세례 요한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겉모습도 구약의 엘리야와 비슷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한 때가 요한으로 마감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예언한 그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미 2천 년 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메시아 오심으로 이 세상은 종말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14~21절입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5)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5)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5)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할 때에 불 뱀이 나타나서 물었습니다. 그래서 죽어갈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게 하시고 그것을 보는 자는 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대로 쳐다본 자는 나음을 입었지만 쳐다보지 않은 자는 그대로 죽었습니다. 이 사건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들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지만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 다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기준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미련하고 어리석고 저주 받아 죽은 십자가가 자신의 구원의 능력이 됨을 믿는 자들은 자신이 정말 어두움인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스스로 빛이라고 여기며 착하다고 여기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들이 바로 심판을 받은 것이며 곧 정죄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스스로 빛이라고 여기면서 자기들의 빛을 쌓아가는 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올수록 자신들이 어두움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빛으로 나아오는 자들은 인간으로는 할 수가 없기에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폭력으로 쳐들어온 자들은 자신이 어두임이었음이 폭로가 됩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천국이 침노하여 들어옴으로 그동안 자신이 구축하여 놓은 자기 의라는 것들과 선행이라는 것들과 이것은 괜찮은 행위라고 꼬깃꼬깃 감추어둔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게 드러나게 되면 자신의 행위들이 얼마나 더럽고 냄새나며 추한 배설물인줄 알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더 이상 자기의 행위를 믿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을 듣고서도 인간들은 돌아서면 또다시 십자가를 잊어버리고 자기의 행위를 붙들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3:1~3절입니다.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복음을 듣고 믿은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시작한 것이 성령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전하는 자들이 오니 얼마나 빨리 십자가를 버리고 그들을 따라 가는지 모릅니다. 이들이 육체라는 것입니다. 육체란 율법의 행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이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시작하고 성령으로 끝내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보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3절입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우리가 얽매이기 쉬운 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앞에서 보았던 육체로 돌아가는 것 곧 자기의 행위를 따라 인과율로 살아가는 것이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벗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그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성도도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혀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십자가를 지고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사도들이 증거 한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증거 한 내용들이기에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였다면 이 말씀들이 들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15절에서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올해도 무수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부끄러운 일도 자랑스러운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판단도 우리가 우리의 가치로 판단한 것이기에 의미 없는 것들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다 지나간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은 다른 것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원하는 것입니다. 올해 마지막만이 아니라 다가오는 새해에도 역시 우리의 눈에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 우리의 눈에 밝히 보여 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