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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2:1~8 안식일의 주인    2016. 1. 31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지난주 설교의 제목이 기억나십니까? ‘쉼이 있습니까?’였습니다. 한 주간 지나면서 참된 쉼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대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쉼을 누릴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 배우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를 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온유하고 겸손하셔서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는 짐이 가볍고 쉽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멍에는 십자가임을 보았습니다. 십자가가 어떻게 가벼운 짐인가 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십자가는 금욕적인 것을 십자가로 생각합니다. 또는 환경의 어려움을 십자가로 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란 내가 홀로 십자가에 죽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이 죽음이란 자기 주체성의 죽음입니다. 이런 자는 자신이 책임질 일이 없기에 쉼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봅니다. 그때에이 말은 앞의 단락과 연결되는 내용이기도 하고 다른 단락으로 시작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지난주의 말씀과 연결시켜 보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사건과 바로 연결이 되지는 않아도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하여 연결시키는 단어가 그때에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장과 절이 없다고 생각하고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이 처음 기록되었을 때에 이런 장과 절이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아주 후대의 사람이 덧붙인 것이기에 때로는 장과 절이 문맥을 보는데 방해가 됩니다. 우리가 찾아보기 쉽게 장과 절을 말하지만 아예 없다고 생각하시고 성경을 보시면 더 좋습니다.

 

다시 1절을 봅니다. ‘그때에앞의 단락과 사건 면에서도 연결이 되고 의미면에서도 연결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개로 오라고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나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무겁고 힘든 짐들을 해결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마치 예수님을 문제 해결사로 봅니다. 도깨비 방망이나 알라딘의 램프처럼 주문을 외우면 초능력자가 나타나서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는 식으로 예수 믿음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나선 제자들이 먹을 것도 제대로 없습니다. 배가 고파서 안식일에 밀 밭 사이로 가다가 밀 이삭을 잘라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안식일 날 밀 밭 근처로 그것도 시장할 때 지나가는 것입니까? 이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안식일이 무엇인지 안식일을 사람들이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참외 밭을 지나면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고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합니다. 군자는 의심 살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곡식이나 과일을 시장하여 따 먹는 것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3:24~25절입니다. “24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25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남의 포도원이나 곡식밭에 가서 배불리 먹어도 되지만 그릇이나 낫을 사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배고픈 사람들이 배를 채워주라는 것입니다. 모든 율법의 바탕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안식일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시비를 거는 것입니까?

 

이 당시의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는지 안식일에 대한 해석을 보면 39가지 금령이 있습니다. 씨를 뿌리기, 경작하기, 추수하기, 곡식 단 묶기, 타작하기, 바람에 날리기, 곡식을 체로 치기, 곡식을 깨끗하게 정리하기, 갈기, 체로 쳐서 정리하기, 발효하기, 굽기, (양털)깎기, 빨기, 두드리기, 물들이기, 꼬기, 짜기, 두 개의 고리를 만들기, 두 개의 실 짜기, 두 개의 실을 분리하기, 묶기, 풀기, 두 개를 하나로 바느질하기, 사슴 사냥,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소금치기, 굳히기, 문지르기, 자르기, 두 자 이상 글쓰기, 두 자 이상 글쓰기 위하여 지우기, 건축하기, 무너뜨리기, 불끄기, 불 피우기, 망치로 내려치기,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물건 옮기기 입니다.

 

이것은 다 일상적인 생활입니다. 이런 일상생활을 안식일에 어느 정도로 해야 노동인지 노동이 아닌지를 정한 것이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도 말은 복음이지만 율법의 틀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도 아닌 일요일을 주일성수라는 이름으로 안식일 규정처럼 만들었습니다. 열심인 사람들은 주일을 성수한다고 겨울에 불도 피우지 않고 찬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전설처럼 들었습니다. 돈을 쓰면 안 된다고 해서 버스를 타지 않고 몇 십리 길을 걸어서 다녔다고 합니다. 이러한 식의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말해온 것이 한국교회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안식일이 무엇입니까? 성경본문을 강해할 때에 안식일이 나오면 안식일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반복되는 부분이 있지만 다시 안식일이 무엇인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2:1~3절입니다.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을 안식으로 표현합니다. 사람은 6일째 지음 받았기에 사람이 만들어진 그 다음 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러면 사람이란 하나님의 안식 안에서 살아야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안식 안에 살지 않고 쫓겨나는 사건이 선악과를 따 먹은 사건입니다. 옛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이것을 타락입니다. 이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지난주에 본 말씀대로 이미 창세기 6장에서 안식이 없는 수고로움을 보았습니다. 이런 수고로운 세상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안식이란 하나님의 심판 속에 방주를 타는 것이 안식임을 보았습니다.

 

출애굽기 20:8~11절입니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신명기 5:12~15절입니다.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모세 오경의 동일한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의 십계명과 신명기의 십계명 중에서 안식일 계명에서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창조를 기억하게 하지만 신명기는 애굽에서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금지입니다. 집안의 가족이나 종이나 짐승조차 노동을 쉬게 합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창조와 구원의 선물이 우리의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햇볕과 공기를 다 무상으로 받습니다. 유치한 질문이지만 우리가 공기의 대가를 1분에 1억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지불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몇 분을 사시겠습니까? 저는 130초 동안 삽니다. 돈이 15천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이 설교 준비하면서 숨을 참아보니 130초 동안 참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조가 이러한데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는 일에 어떤 노동이나 대가를 지불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단 한 사람도 구원에 이를 자가 없습니다. 다른 말로 참된 안식에 들어갈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안식을 얻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안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인간의 역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역사 발전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있지만 저는 역사의 발전을 믿지 않습니다.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문명의 발달이 오히려 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믿는 것이 인간뿐이니 끊임없이 희망을 주지만 그것은 고문일 뿐입니다. 좁게는 대한민국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모두가 국민의 복지를 위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국민을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의 목적은 권력을 잡는 것이 제일 목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무엇으로 쉼을 얻겠습니까?

 

출애굽기 31:12~15절입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 말씀을 문자대로 해석한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39가지 부칙을 어기는 것이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인 안식 곧 구원이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어내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6장에서는 고자나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방인들은 안식일이 무엇인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안식일의 결론을 먼저 봅니다.

 

골로새서 2:16~19절입니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먹고 마시는 것 절기 초하루 안식일 이런 것들이 다 그림자라고 합니다. 이런 그림자를 붙들게 되면 실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게 됩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로부터 온 몸이 다 공급을 받아 사는 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가 자기 힘과 자기 능력으로 산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유심히 살펴본 것입니다. 고발한 조건을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서 비벼서 먹은 것입니다. 다른 날은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안식일 규칙을 자기들이 만들었습니다만 이 규칙에 의하면 몇 가지를 저촉한 것입니까? 추수하기, 타작하기, 바람에 날리기, 체로 치기 이렇게 적용할 수가 있습니다. 밀 이삭 잘라서 비벼먹어 본 분들이 압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힐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한 것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39가지 부칙을 지키지 않았기에 제자들도 그렇게 한 것으로 봅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세 가지로 답변하십니다.

 

첫째는 본문 3~4절입니다. 다윗이 시장 할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들이 먹는 떡을 먹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사무엘상 21장의 내용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다윗이 도망가는 중에 놉 땅에 있는 아히멜렉 제사장에게로 갑니다. 다윗이 먹을 것을 요구하자 일반적으로 먹는 떡은 없고 안식일마다 새 떡을 드리고 물려낸 떡만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떡이 있다는 것은 그 날이 안식일로 보는 것입니다. 이 떡은 제사장들이 먹는 떡입니다. 그런데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으면 주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성결하다고 하여 그 떡을 먹고 골리앗의 칼 까지 받아서 갑니다. 이것을 에돔 사람 도엑에 보고 사울에게 고발하자 아히멜렉과 그 제사장 85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아히멜렉은 안식일 날 제사장이 먹는 거룩한 떡을 시장한 다윗에게 줌으로 안식일의 법과 다른 법들이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 결과 죽임을 당한 자가 아히멜렉과 그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아히멜렉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생명을 살리는 안식일을 말씀하시는데 안식일을 법으로 지키는 자들이 어떻게 합니까?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만 14절을 보시면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를 의논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의 두 기둥이라고 하면 주일성수와 십일조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이것을 강조하지 않는 교회가 없을 정도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기준으로도 주일성수와 십일조가 기준입니다. 서리 집사를 임명하는 기준도 이 것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마치 교회가 무너지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성수라는 말이 성경에 없는 말입니다. 만약 안식일 개념을 주일성수라고 보면 이것은 안식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안식일은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안식의 주인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을 주시는 분이심을 창조와 구원의 안식을 통하여 증거 한 것입니다. 당연히 십일조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둘째로 본문 5~6절입니다. 다윗이 안식일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먹는 떡도 먹었다는 이 말씀에 바리새인들은 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존경하는 다윗이 안식일에 도망 다니다가 제사장들이 먹는 떡을 먹은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제사상들이 안식일에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율법 책에 읽어보지 못하였느냐고 하십니다. 제사장들은 안식일이 중노동의 날입니다. 희생의 제사를 드립니다. 태어 난지 8일이 안식일이라면 아브라함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합니다. 성전에 진설병을 물리고 새로 놓고 하는 일뿐만이 아니라 성전 안에서 모든 일들을 다 해야 하지만 이것을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에 있다고 하십니다.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일해도 죄가 안 되는데 성전보다 크신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 잘라먹는 것이 어떻게 율법을 어긴 것이 되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본문 7절입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여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안식일에 시장하여 밀 이삭 잘라먹은 제자들을 책망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세 곳의 성경말씀으로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안식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완성에 일한 것도 없이 참여하는 것이며 그 천지 창조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임을 보여준 것이 안식일의 노동금지입니다. 그런데 그 안식의 뜻은 잊어버리고 문자만 지키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율법의 조문이 죽이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호세아 6:4-7절을 봅니다.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북 이스라엘이나 남 유다나 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인애라고 합니다. 인애라는 말은 아주 중요한 언약적인 용어입니다. 인애는 헤세드라는 말로 언약적인 사랑입니다. 이러한 인애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심판을 하십니다. 그 심판을 받는 자들이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가 늘 드려집니다. 그런데 제사를 통하여 인애를 알지 못하면 그런 제사는 헛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이 다 아담처럼 언약을 어긴 것이라고 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이 율법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인자를 일반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을 따라 보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하신 그 안식을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안식을 십계명에 담아 주시면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신 것은 창조와 구원의 선물이 다 우리의 노동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을 십자가로 완성하시고 자기 백성에게 선물로 주시면 그제야 안식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완성이 우리에게 넘겨져야만 우리가 안식을 맛보게 됩니다. 이미 다 이루었다는 그 십자가의 언약 성취가 우리에게 임한 사람이라면 안식을 맛봅니다.

 

제가 안식을 맛본다는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완전한 안식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가 몸의 구속이 일어날 때 까지는 이 땅에서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6일 동안 여러분은 정말 쉼을 누렸습니까? 쉼에 대하여 설교를 하고 나면 쉼을 누리지 못할 일이 더 많이 생깁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잠시라도 안식을 맛보게 됩니다. 해녀가 물 밑에서 작업을 하지만 반드시 물 밖으로 고개를 내 밀고 숨을 쉬어야 하듯이 우리가 모인다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참된 안식의 숨을 쉬는 것입니다. 설교시간만이 아니라 성도의 교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통하여 깊은 하늘의 숨을 쉬는 것이 성도의 교통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로 쉼을 맛보는 자들은 더욱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사모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4:1~3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안식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는 일들이 이미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천지창조가 이미 하나님의 안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있고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는 복음을 받았지만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복음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가 스스로 안식을 만들어 내거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셔야 된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이런 믿음이 바로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런 자들은 안식의 주인으로부터 안식을 선물로 받아 맛보기에 더욱 그 완전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사모하게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