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15~22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2017. 1. 22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1)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지난 두 주간의 말씀은 악한 포도원 품꾼의 비유와 혼인잔치의 비유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아주 아름다운 내용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아주 무서운 말씀으로 비유하셨습니다. 포도원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이자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더니 아들마저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원 주인이 그 농부들을 진멸한다는 말씀이었고, 지난주에 본 말씀은 임금의 아들을 위한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오지도 않고 청하려고 보낸 자들을 모욕하고 죽임으로 임금이 군대를 동원하여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다고 합니다. 천국의 비유가 진멸과 불사름과 같은 무서운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건축자들이 버린 모퉁이 돌이 머릿돌이 되는 기이한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천국을 좋아하고 사모하여 따라나서는 방식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천국의 방식으로 인하여 버림받아 죽임 당한 예수님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그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내거나 확장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 의하여 살해당한 분이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석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나라는 오직 그 아들의 피로 입혀주신 의의 옷만 입고 갑니다.

 

오늘본문 15~16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천국비유를 듣고서 자기들을 향한 책망의 말씀인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할 텐데 도리어 예수님을 올무에 걸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모든 내용만이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까지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으로서 로마의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는 아주 꺼려하는 자들입니다. 힘이 없으니 마지못해 바치기는 하지만 로마의 동전인 데나리온에는 황제의 얼굴이 있기에 유대사회에서 통용되는 다른 동전으로 세금을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율법을 지킨다는 자들이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과 함께 예수님께 보냅니다.

 

헤롯 당원이란 이 본문에서만 나오는 말입니다. 헤롯 당원이란 헤롯의 가문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평소에는 사이좋을 사이가 아닙니다. 공동의 적이 나타나니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께 와서 올무에 걸기 위한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을 칭찬하듯이 말을 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이들이 정말로 예수님을 이렇게 보았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을 한 것은 입에 발린 말이며 자신들의 질문에 회피하지 말고 분명하게 말하라는 압력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질문에도 얼마나 교묘한 악이 숨어있는지 봅니다.

 

17절입니다.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말하여 달라고 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이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라고 하면 일본에 세금을 내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만약 세금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면 로마를 반역하는 자로 몰아세울 것입니다. 그런데 세금을 내라고 한다면 유대인들의 율법에 의하면 이방 나라의 임금에게 세금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율법적으로도 잘못된 말을 하는 자가 되기에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려는 의도로 질문합니다.

 

18~19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십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고 하시면서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동전인데 그 동전에 가이사 황제의 얼굴과 신의 아들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형상숭배를 금지하는 십계명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아주 꺼려하는 동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 상거래에서는 유대인의 민감성을 존중하여 이런 형상과 글이 없는 다른 동전으로 대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에 세금을 날 때에 굳이 이 동전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들고 온 동전은 로마 황제의 상이 새겨진 그 동전입니다. 예수님을 올무에 걸기위한 준비로 봅니다.

 

20~22절입니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가이사의 것이라는 답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께 세금문제로 질문한 이들은 예수님을 이 문제로 확실하게 올무에 걸겠다고 생각을 하고 왔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놀라서 물러갔지만 다음 주에 보면 또 다른 질문을 들고 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국가에 세금 낼 것은 세금을 내고 하나님께 드릴 것은 드리라는 그런 말씀이겠습니까? 나중에 사도들도 국가의 세금 낼 것은 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야기하며 세금을 말한 것과 예수님의 이 답변은 상황이 다릅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기위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들의 악함을 이미 아시고 그들을 책망하신 답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답변은 너희가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가이사가 너희의 주인이라면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고 하나님이 너희의 주인이라면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소속의 문제로 답하셨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생각해 봅시다. 한국교회가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의결했습니다. 물론 일본 경찰의 강압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반대 하는 목사들은 옥에 갇히고 순교도 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교회에서 국가적인 의식이라고 하면서 교회에서 동방요배를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주보를 보니 동방요배 순서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일본의 전쟁승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헌금하고 시국강연을 했습니다. 이런 일에 앞장섰던 자들의 자녀들이 지금도 이 땅에서 큰 소리 치며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교회의 지도자라는 자들과 세상의 지도자들이 왜 친일을 했을까요? 한국을 보고 일본을 본 자들이 일본을 의지하는 것이 그나마 한국이 살아남는 일로 본 것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유대 사회에서도 헤롯 당원이 있고 사두개파처럼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것이 자기 나라를 지키는 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지금 누구를 왕으로 삼고 사느냐는 질문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보여준 동전에는 가이사의 형상과 신의 아들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동전입니다. 가이사를 신의 아들로 믿고 산다면 그 사람에게 자신을 바치며 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신이라면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헌신하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것이 세금의 문제가 아니라 네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향하여 살아가느냐는 것을 물으신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답변에서는 질문한 자들이 당황하여 물러갈 수밖에 없는 답변이었지만 그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산다고 하였지만 그들의 실상은 이 세상의 임금을 섬기며 산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셨다면 그들의 속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기에 그들이 어둠에 속하여 있음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의 존경을 좋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을 보시면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주 상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고 착각하였습니다. 그들의 주인이 철저하게 이 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마귀인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왕이 필요 없는 민족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 율법을 주신 분이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세상의 왕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왕이 주신 율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율법을 전하여 주는 제사장만 있으면 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시킨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것입니다(19:6). 왕이 없어도 되는 특이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모세 사후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 들여놓고 나서 왕을 세우지 않고 죽습니다. 여호와가 왕이시기에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살면 됩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없음이 사사기에서 드러납니다.

 

사사기 말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합니다. 사무엘은 자기를 버리는 것인 줄 알고 섭섭해 할 때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왕을 요구하는 것은 사무엘 너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왕을 허락하라고 합니다(삼상8:7). 그러면서 왕을 세우면 얼마나 더 세금을 부담해야 할지를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왕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왕을 세우면 하나님께 바치는 만큼 왕에게도 바쳐야 합니다. 사무엘이 그렇게 말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꺼이 눈에 보이는 왕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세워진 왕이 사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의 왕조가 시작이 됩니다.

 

신명기 17:14~20절입니다. “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이미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면 이런 왕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왕을 자기 민족 중에서 세우는데 병마를 많이 두지 않고,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은금을 많이 두지 말고, 여호와의 말씀을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왕이 아니라 여호와가 왕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야 그의 마음이 형제위에 교만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왕이 되고 싶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왕이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여 왕을 세웠지만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와서도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세상의 제국들을 바뀌어 갔습니다. 앗수르, 바벨론, 메대 바사, 헬라제국을 거쳐 로마 황제가 유대지역까지 다스리던 시대입니다.

 

이때에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천사들이 찬송했습니다. 목자들이 경배하였습니다. 동방의 박사들도 경배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애굽으로 피난 가셨다가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습니다.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여러 가지 표적과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메시아인줄 알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임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이 가면 갈수록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으실 것과 제 3일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알아듣는 제자들이 없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는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고 한 군중들이 예수님 자신의 살과 피에 대한 말씀을 듣고 어렵다고 떠나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따라나선 것은 자신들을 구원하여주실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메시아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예루살렘 성안까지 따라왔지만 며칠 안에 이들은 돌변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임금 곧 사단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에 의하면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원하였지만 그들은 세상에서 자기들의 영광을 이루어지는 그런 메시아를 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이 말씀으로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누구의 소속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들은 다 가이사 곧 세상 임금의 소속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는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자들이 의와 생명이 왕이 되는 그 아들의 나라에 들어올 수가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을 보내심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자기 안으로 이끌어 들여놓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된 자들은 비로소 이 세상의 영광이 아닌 그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그 아들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이 세상의 영광을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된 자들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고린도전서 6:1~11절입니다.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성도가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들마저 판단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라고 하는 자들이 세상에 속한 것으로 세상의 법정에 소송을 한 것을 책망한 것입니다. 만약 그런 것으로 고발을 당했다면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보자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줘 버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의 것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만물이 다 주의 것이지만 주님께서 멸하시기로 하신 것이 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불태워질 것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목록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음행, 우상숭배, 간음, 탐색, 남색, 도적, 탐욕, 술 취함, 모욕, 속여 빼앗음 이런 내용들은 전부 가이사에 속한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다 이 가운데 살다가 주 예수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가이사의 것에 속한 것은 줘버려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함을 받은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이 이 세상을 둘로 나누어 버리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부 오해하고 곡해하여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죽이려고 덤벼드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말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였지만 그 실상은 이 세상의 임금에게 속하여 이 세상의 영광을 쫓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는 이들의 본색이 어떤지 봅니다.

 

요한복음 19:10~16절을 봅니다.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 석에 앉아 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1)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준 줄을 알기에 어떻게 하든지 풀어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예수를 풀어 줄 권한도 있고 사형시킬 권한도 있다고 하자 예수님은 위에서 주지 않았다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빌라도는 그 역할을 감당하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이렇게 넘겨 준 자들의 죄는 더 크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진짜 왕을 넘겨주면서 가이사를 자신들의 왕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힘을 썼지만 유대인들은 소리를 지르면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자라고 예수를 고발합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유월절 특사로 예수님을 풀어줄 것을 제안하지만 유대인들은 거절합니다. 빌라도가 예수가 너희의 왕이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합니다. 결정적인 대답이 대제사장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15절입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섬긴다는 대제사장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제사장이라는 자가 여호와의 왕 되심을 부인합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 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요한일서 2:15~17절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오늘 우리의 왕은 누구십니까? 가이사 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입니까? 이 세상에서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고 있다면 아직 우리의 왕이 가이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시라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빠져있는 우리를 십자가로 끄집어 내셔서 가이사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 그 아들의 나라로 옮겨놓으시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환난이라고 하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리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오늘도 집행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세상에서 분리가 일어납니다. 세상에서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에 이상한 일 당하듯이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 그 아들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