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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18~26 누구의 믿음인가? 2015. 10. 25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오늘 말씀은 두 가지 사건이 함께 맞물려있습니다. 관리로 되어 있는 회당장의 딸이 죽음에서 살아난 일과 열두 해를 혈루 증으로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자락을 만짐으로 고침 받은 이야기입니다. 이 두 이야기에서 공통적인 내용은 회당장의 믿음과 혈루 증을 앓는 여인의 믿음입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평행구절을 보면 회당장의 믿음이 더 약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여인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면서 믿음만능주의로 갈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믿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누구의 믿음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선 믿음이 어떻게 오해되고 있는지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즈음 스님들의 즉문즉설이 인기가 있습니다. 혜민, 법륜 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 외에 어떤 스님의 영상을 카스에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질문자가 자기 부모가 극락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 스님이 극락에 갔다고 믿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믿어지지 않으니 계속 질문을 합니다. 그때 그 스님이 믿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질문자가 그런 말은 교회에서 하는 말이 아니냐고 하자 한바탕 웃음소리가 났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믿음이란 내가 마음 편하기 위하여 그렇게 믿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런 식의 믿음이 교회에서도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지 모릅니다. 부흥회를 인도하는 자들이나 은사 집회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전매특허처럼 사용하는 말이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는 기도하면 된다고 합니다. 마치 기도나 믿음이 자신들의 소원성취를 이루는 비결이나 되는 것처럼 네 믿음대로 될 지라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 것도 본인의 믿음이 없는 것이며 병이 고침을 받지 못하는 것도 본인의 믿음 없음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므로 강사가 어떤 소리를 하여도 그들은 책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본문도 열두 해 혈루 증 앓은 이 여인의 이야기를 합니다.

 

또 하나의 믿음이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제가 아는 사람이 카스에 올린 글을 소개합니다. “난소에 주먹 만 한 혹 때문에 제거수술 해야 한다고 하며 혹시나 혹이 더 작아질는지 더 커지는지 두 달 간 지켜보자고 한 병원 측 설명이 있은 지 두 달이 흘렀다. 그간 생활의 불편함이 있을 정도의 간간함 아픔 때문에 여전히 혹이 없어지지 않고 자리하고 있겠구나... 가슴 졸이며 병원에서 재검을 받았다. 결과는.... 웃는 얼굴 활짝~^^ 주먹 만 한 혹이 사라졌다! 없어졌다! 뱃속이 깨끗해졌다고 한다! ^^ 혹이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 하였지만 믿지는 못했다. 내가 믿었는데 안 없어지면 어쩔까 하고 일부러 안 믿으려고 하기 까지 한.... 역시나 믿음 없는 나에게 또 한 번 위로를 해 주시는 사건이다

 

기도하였지만 믿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왜요? 고쳐지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기에 기도하면서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난소의 혹은 어떻게 사라진 것입니까? 의사가 말했지요! 혹이 커질지 작아질지 두 달 간 보자고 그러므로 작아지거나 없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평소에 믿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기위한 것입니다. 성경의 믿음이 과연 이런 식의 믿음이겠습니까? 믿기만 하라는 말은 우리가 믿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회당 장 야이로에게 믿기만 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누구의 믿음인지 말씀을 보려고 합니다.

 

본문 18~19절을 봅니다.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평행구절인 마가복음 5:22~24절입니다.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 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마가복음은 딸이 다 죽게 되었다고 되어있는데 마태복음은 죽었다고 되어있습니다. 각 복음서의 특징이 있습니다만 마태복음은 이 내용을 가장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일차청중이 유대인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마태의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유대인들에게 구약에서 약속된 그 메시아의 권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일에 관리라고 하는 회당장이 동원되지만 이 사람이 믿은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의 딸을 고쳐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딸에게 손을 얹어서 살려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체에 접촉을 하면 부정하게 됩니다. 더구나 제사장은 더욱 엄격하게 시체에 접촉하지 못하게 합니다. 일반인도 시체에 접촉을 하면 일주일간 부정하게 되고 정하게 되려면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물에 타서 뿌려야 합니다.

 

민수기 19:11~13절입니다. “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2 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13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시체를 만진 자가 부정하게 되는 규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장막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와 들에서 죽은 자나 사람의 뼈나 무덤에 접촉하여도 부정하게 됩니다. 왜 죽음과 접촉하는 것을 이렇게 부정한 것으로 정하여 두었습니까? 죽음이란 죄로 인하여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죽음과 연관된 것에 접촉하면 다 부정하게 여깁니다. 이런 내용을 회당 장은 잘 압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나아와서 자기의 죽은 딸에서 손을 얹어 살려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예수님의 이 회당장의 요청을 따라 함께 가십니다. 그런데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는 중에 열두 해를 혈루 증으로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자락을 잡습니다.

 

본문 20~22절입니다. “봉독 이 본문을 마가복음 25~34절을 봅니다. “25 열두 해를 혈루 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여인이 열두 해를 혈루 증으로 앓으면서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미쉬나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의사들 가운데 최고의 사람들은 게헨나에 있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속해서 사람들의 돈을 잡아먹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사들이란 요즈음 같은 의사가 아니라 여러 가지 민간치료를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요즈음 의사들도 수익을 위하여 하지 않아도 될 검사와 수술을 권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런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고 병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와서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옷에 손을 대는 순간 그 여인이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마태는 간단하게 언급하지만 마가복음은 아주 상세하게 이 내용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점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이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회당장의 딸에게 손을 얹는 것도 부정함을 입는 것이지만 이 여인이 예수님께 손을 댄 것도 예수님이 부정함을 입는 것입니다. 레위기 15:1~5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을 인하여 부정한 자라 3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함이 이러하니 곧 몸에서 흘러 나오든지 그것이 엉겼든지 부정한즉 4 유출병 있는 자의 눕는 상은 다 부정하고 그의 앉았던 자리도 다 부정하니 5 그 침상에 접촉하는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레위기 15장 전체가 유출병에 관한 내용입니다. 유출병이란 사람의 몸에서 피든 고름이든 나오는 것을 다 말합니다. 이러한 유출병이 있는 사람과 접촉하면 부정하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런 유출병이 있는 자가 앉은 자리나 침상에 접촉을 하여도 부정함을 입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유대인이라면 율법의 규례를 압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겉옷 자락을 만지기만 하면 병이 고침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러나 자신이 예수님을 옷을 만지면 예수님이 부정하게 되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회당장이나 이 여인의 믿음이라는 것이 남이 부정함을 입든지 말든지 자기만 병 고침을 받으면 된다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이 믿음의 내용이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졌다고 합니다. 표준 새 번역은 예수의 옷 술에 손을 대었다고 합니다. 옷 술은 유대인들이 겉옷 가에 술을 달아서 율법을 기억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민수기 15:37~40절입니다. “3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9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유대인들은 겉옷 가에 옷 술을 만들어 붙인 것은 율법을 기억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옷의 술을 보면서 여호와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런 겉옷에 옷 술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스라엘에서 공부를 하고 장재일씨의 주석을 보니 옷단 술을 히브리어로 찌찌트라고 하는데 네 가닥의 실을 반을 접어서 여덟 가닥이 되게 하고 이것을 다시 여러 번 묶고 매듭을 지어서 39매듭을 만든다고 합니다. 39를 자음의 가치를 따라 계산하는 게마트리아에 의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뜻하는 글자로 풀어냅니다. 그리고 실 묶음 다섯 마디와 여덟 가닥의 실을 함하여 13이 되게 하고 술이라는 단어 찌찌트의 자음을 숫자로 풀어내면 600이 됩니다. 그러면 613이 됩니다. 모세오경의 하라와 하지 말라는 계명이 613가지가 됩니다.

 

오늘날도 이런 게마트리아 식으로 성경을 마치 수학문제 풀듯이 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이름을 이런 식으로 풀어 666이 되는 사람이 로마의 황제라든지 교황이라든지 히틀러라든지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대입하면 우리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666이 나올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기억하게 하기 위한 장치를 이런 식으로까지 적용할 뿐 아니라 심지어 옷 술을 길게 하여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의 랍비 문헌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 온전한 사람의 옷단 술에 손을 대면 온전해진다그러므로 이 여인이 예수님의 그 겉옷 술을 만지면 고침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 술을 만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회당장이나 이 여인에게 나온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회당장이나 이 여인이 율법으로 예수님이 부정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든지 아니면 자기의 문제가 심각하여 그런 문제를 생각하지도 않았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내용이 성경에 계시로 기록된 것은 도대체 이들의 믿음이 무엇인지를 봐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복잡한 이론들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쉽고 간단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다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쉽고 간단하게 전해 달라고 합니다. 이런 태도를 십자가 신비와 역설이라는 책의 저자인 차재승 교수는 십자가가 아깝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은 도대체 어떤 믿음입니까?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인 23~26절을 봅니다. “봉독 이 본문의 평행구절인 마가복음을 5:35~43절을 봅니다. “봉독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중에 열두 해 혈루 증으로 앓은 여인을 고치심으로 시간이 지체가 되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회당장이 두려워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열두 해 혈루 증 앓은 여인과 회당장의 믿음이 비교가 됩니다. 겉옷 가에 손만 대도 낫겠다는 믿음과 회당장의 믿음이 비교가 됩니다. 죽기 직전에 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제 죽었다는 말을 듣고 낙심이 되는 회당 장에게 예수님은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시니 사람들이 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시자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 중에 가장 비웃음을 받는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비웃음을 배경으로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들어가셔서 이 소년을 살려내십니다. 사람들이 놀라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실을 그의 부모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사람들이 아이가 죽은 것과 예수님이 살리신 것을 다 아는데 왜 이 회당장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까? 송재근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회당장을 오늘날 목사로 보고서 믿음도 없는 너는 설교할 자격이 없으니 설교하지 말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이 복잡하고 어렵게 들릴 것입니다. 그저 단순하게 믿으면 만사형통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쉬울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도 나와 있는 대로 믿기만 하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할 말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믿기만 하라고 하셨기에 믿기만 하면 병도 고침 받고 죽은 자도 살아나고 경제도 풀리고 원하는 소원도 이루어진다고 믿기만 하라고 또는 믿고 기도만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전개를 하는가 하면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다르게 나오는지를 봐야 하며 또 믿음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말씀의 내용을 한 가지로 요약을 합니다.

 

회당장의 믿음이나 열두 해 혈루 증을 앍은 여인의 믿음이나 간에 두 사건 다 예수님이 부정함을 입게 되는 일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시체에 접촉하심으로 부정함을 입는 것이며 열두 해 혈루 증을 앓고 있는 부정한 여인과 접촉됨으로 자신이 그 부정함을 대신 담당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회당장의 딸이 살아났지만 죽었습니다. 열두 해 혈루 증을 앓는 여인도 병 고침을 받았지만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합니다. 이 구원이란 일차적으로 병 고침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병 고침을 받아도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믿음으로 인한 참된 구원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부정함과 더러움과 죄악을 짊어지신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회당장이나 열두 해 혈루 증을 앓은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올 때는 자신들의 문제로 인하여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통하여 예수님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이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선물로 받은 믿음은 영원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모든 내용들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비록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4:6~7절입니다.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고린도 교인들이 파당을 이루며 서로 자랑하는 것을 책망하면서 한 말씀입니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으며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우리가 일반은총이라고 하는 것만이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 특별은총이라고 하는 믿음과 구원과 은혜와 성령의 임하심과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나 그 어떤 것들이라도 다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다는 믿음이 정말로 선물로 받은 믿음인지 나에게서 나온 것인지 믿음의 주체와 내용을 다음의 말씀으로 점검하여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1~2절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아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구별하여 내셔서 순종하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복음을 통하여 은혜와 평강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됩니다.

 

이어지는 3~9절입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이런 내용이 우리의 믿음의 내용이라면 우리에게서 나온 믿음이 아니기에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어지는 10~12절입니다.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본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이런 믿음이란 단지 죽은 자가 살아나고 병 고침을 받는 내용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이라는 전체의 내용을 봐야 합니다. 마태복음만이 아니라 사복음서 전체의 내용은 다 기승전결이 있습니다. 모든 복음서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활을 더 강조하지만 부활하신 후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이 증거 한 내용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다면 그것은 주님께로부터 온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께로부터 온 믿음이라면 그 믿음의 내용이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낡아지지 않는 내용입니다. 그 믿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을 우리가 보지 못하지만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이 은혜가 이 믿음이 우리에게 부어지면 예수님의 겉 옷 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그 마음보다 더 간절함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로운 믿음이 우리에게도 임하여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