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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27~34 다윗의 자손이여! 2015. 11. 1

 

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 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지난주에 본 내용은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요청으로 회당장 딸의 주검에 손을 대신 것과 열두 해 혈루증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자락을 잡은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은 둘 다 율법에 의하면 부정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꺼이 자신이 부정함을 입으시면서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목숨처럼 지키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행위를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이유는 율법을 어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넘어서는 일은 유대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에게서 나온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진 믿음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방인들은 인과율을 넘어서야 하고 선악체계를 넘어서야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사람으로 불가능한지 다음의 말씀을 봅니다.

 

고린도전서 1:18~24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십자가의 도는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며 이방인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다 거리끼고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도가 구원의 능력이 된다고 믿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라는 것들로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하고 파악하여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자기 백성을 찾아와서 책망하고 무너뜨리고 십자가로 이끌어 함께 못 박음으로 구원하여 내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여기서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인간의 조건들을 다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두 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음의 것은 27~30절로 두 맹인이 눈을 뜬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 때에 이 말씀은 바로 앞의 내용과 연결하여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장면으로 이동되는 것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맹인이 성경도 보지 못하였을 텐데 어떻게 알았을까요? 물론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고 불치병도 고친다는 소문을 듣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부를 때에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메시아 호칭입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분이 하실 일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7;16~17절입니다.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 드리겠다고 하자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이런 말씀들은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이 영원한 왕위를 이을 메시야로 보고 기다린 것입니다.

 

예레미야 33:20~22절입니다. “2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1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22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 내시는지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낮과 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심정이 정말 괴로운 사람은 해가 뜨는 것이 너무나 싫을 것입니다. 세상이 다 무너지고 세상이 다 캄캄했으면 좋을 정도로 괴로운데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해가 떠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아는 사람은 알 것입니다. 온 인류가 다 달려들어도 낮과 밤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이 절대로 폐하여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다윗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언급합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 곧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한 언약은 영원하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의 주제입니다. 아니 모든 복음서와 모든 성경의 주제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는 분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시작부터 다윗의 자손을 언급하면서 이 다윗의 자손을 알아보는 자가 누구인지를 전개하여 나가는데 그 중에 제일 먼저 알아보고 믿는 자가 두 맹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역설입니까? 처음에 설교제목을 역설이라고 하였다가 다윗의 자손으로 바꾸었습니다만 참으로 복음은 역설로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씀을 다 찾아보겠습니다. 1:1절은 말씀을 드렸고 1:20절에서 요셉을 천사가 부를 때에 다윗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 오늘 본문 9:27절입니다. 그리고 12:23에서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시니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놀랍니다. 15:22에서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따를 고쳐달라고 하면서 다윗의 자손으로 부릅니다. 20:30, 31에서도 맹인 두 사람이 예수님을 부르며 다윗의 자손으로 부릅니다. 21:9에서는 예수님께서 나귀 타고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실 때에 무리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송합니다. 21:15에서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찬송하는 무리들을 보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노합니다. 22:42에서는 예수님께서 먼저 바리새인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고 할 때에 바리새인들도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다윗의 자손을 메시아라 기대하였습니다만 예수님은 다윗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창조주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것은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27~30절을 봅니다. 맹인이 어떻게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두 눈 다 뜨고 율법을 보고 지킨다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귀신 들린 자라고 하는데 두 맹인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의 부르짖음을 못 들은 체 하고 집으로 들어가십니다. 27~28절을 보시면 맹인들이 소리쳐 부르지만 예수님은 집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런데도 맹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맹인들이 믿는다고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면서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만으로도 눈을 뜨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만지시는 것입니까? 저는 이 장면에서 하나님께서 진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시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맹인의 눈을 만지시면서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어 반드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맹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엄히 경고하시면서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퍼뜨립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엄중히 경고하면서 알리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까? 신학적인 용어로 메시아 은닉이라고 합니다만 자신을 알리지 못하게 하신 것은 이런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몰려오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가 하실 일을 하고 계시지만 그것 자체로 메시의 사역의 완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자신을 공개적으로 메시아라고 하신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사상을 예수님께 적용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하시는 것을 보고서는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여 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소문을 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을 들은 자들은 더욱 예수님께 모여듭니다. 구약의 예언들이 메시아가 오면 할 일을 지금 예수님께서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35:5~6절입니다.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하나님의 구원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맹인의 눈이 밝아지고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림처럼 하나님의 구원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메시아를 기다리던 자들이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를 열게 하시니 열광을 합니다.

 

오늘 본문 32~34절입니다. 맹인 두 사람이 고침을 받고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일반적으로 말을 못하는 사람은 귀가 고장이 나서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귀신이 들려서 말을 못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니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합니다. 이 사람이 처음부터 귀머거리였다면 귀가 고쳐져도 말을 알아듣고 말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중도에 귀신에 사로잡힌 모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니 바리새인들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쫒아낸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마태복음 12장에서 귀신의 왕에 대한 논쟁에서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보려고 하는 내용은 평소에 자신들은 귀신 들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입니다. 자신들은 맹인도 아니라서 율법도 잘 보고서 그 율법을 실천하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귀신들린 자로 보는 것이 바로 귀신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입니다. 이들이 차라리 날 때부터 소경이었다면 나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본다고 하니 그 죄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곧 그리스도로 알고 믿는 것은 결코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맹인이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는 일이나 귀신들려 말도 못하는 자가 예수님의 고침을 받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으로 갈 수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입니까? 이 역사 속에서 근원적으로 따져서 올라가면 아담과 하와의 타락부터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인생들은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옛 뱀 곧 마귀에게 속아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그 타락으로 인하여 모든 인생들은 다 아담 안에 속하여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가운데 갇혀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율법을 주시니 율법으로 자신들의 죄를 알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자기를 치장한 것입니다. 마치 선악과 따 먹은 이후에 무화과 잎으로 자기들의 수치를 가리듯이 율법의 의로 자신을 치장하고 있는 자들이 바리새인들이며 이들이 바로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이사야 6:8~13절입니다.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사야의 소명장면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자신이 화로다 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입술이 부정한 자 중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봤기 때문입니다. 이때 천사가 제단 숯불을 입술에 대면서 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주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합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받은 소명은 백성들의 눈과 귀를 막으라고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하면 스스로 돌아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언제까지 그래야 하느냐고 할 때에 이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나라가 망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십분의 일이 남았다면 그 마저도 황폐하게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 베이고 난 후에 그루터기는 남아있듯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남은 자들까지 다 끊어지고 최종 남은 자가 올 때 까지 눈과 귀가 막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에 의하여 지목된 예수 그리스도가 눈을 뜨고 귀를 열어주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령에 의하여 예수님을 증거 한 세례요한도 예수님의 사역이 과연 그리스도인지 의심을 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1:2~6절입니다.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세례요한의 메시아사상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이러한 활동에 대하여 의심이 들어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그리고는 오실 그이가 당신이 맞습니까?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답변하신 내용이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일들을 요약하여 말씀하십니다. 맹인이 보는 것과 못 걷는 자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듣는 자가 듣고 죽은 자가 살아나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증거 된다고 하는 이 말씀을 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분명이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지금 가려진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계십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메시의 일을 하고 계시는데도 예수님을 그리스도 믿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그들의 눈과 귀가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홀로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다 이루시고 그 영을 부어주셔야만 비로소 눈이 뜨이고 귀가 열려서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두 맹인을 눈 뜨게 하신 것과 또 귀신 들려 말을 못하는 자를 고치시고 말을 하게 하신 것은 단지 맹인이 눈을 뜨고 말 못하는 자가 말하게 된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지만 눈을 뜨고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신들은 의롭다고 여기고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의 의를 알아주고 자신들의 공적을 칭찬해 주기를 원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보고서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습니다. 누가 귀신 들린 사람입니까? 평소에 자신들은 본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귀신들려 소경되고 귀머거리 된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9:35~41절입니다.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한복음 9 전체가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이일로 유대사회가 요란해 졌습니다. 이 맹인을 눈뜨게 하시는 일도 땅에 침을 뱉어 이겨 눈에 바르고 실로암게 가서 씻게 하십니다. 이 장면도 오늘 본문의 맹인의 눈을 만지시는 장면과 연결이 됩니다.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는 것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는 장면과 오버랩이 됩니다. 그러자 이 사람의 눈이 밝아집니다. 일대 소동이 일어나서 바리새인들이 이 사람을 소환하고 부모를 소환합니다. 부모들은 유대교에서 출회 당할까 두려워 아들이 성인이니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자 다시 아들을 소환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몰아붙이자 이 맹인이었던 자가 하나님은 죄인의 말을 안 들으시고 의인의 말을 들으시는데 창세 이후로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눈 뜬 자가 없다고 하니 바리새인들이 이 사람을 쫓아냅니다.

방금 읽은 본문은 쫓겨난 이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전에 경기도 모임에 온 세상 교회 목사님이 함께 갔습니다. 가면서 이 본문의 원고를 읽으시고는 쫓겨나야 예수님이 찾아오시구나! 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강의 중에 유대교에서 쫓겨나야 예수님이 찾아오신다는 말을 강의 중에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디서 쫓겨나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대한 유대교 장로회에서 쫓겨나야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에 붙들려 율법의 조문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은 아직 소경입니다. 모세의 수건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귀신 들린 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 너희가 본다고 하니 죄가 그대로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판은 본다고 하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시고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성취입니다. 스스로 본다고 하고 스스로 듣는다고 하는 자들은 아직 맹인이며 귀머거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는 자들은 결코 자신이 보고 듣게 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며 귀머거리였는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게 하셨고 듣게 하셨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오늘도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는 자들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지 한글로 된 성경은 아예 무시하고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을 보면서 그것도 파자까지 하면서 자신들은 다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풀어내면서 자신만이 교회 이천년 역사 속에서 제대로 성경을 풀어내는 자라고 하는 자들이 이단의 교주들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자신이 전적인 죄인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임을 믿게 된다면 이 사람은 오직 주의 긍휼만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