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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35~10:1   추수    2015. 11. 8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지금 가을 추수가 한창입니다. 일 년을 한 단위로 보면 백년도 일 년의 반복입니다. 그러므로 가을 추수를 우리의 일생에 비유하여 보아도 됩니다. 지금 계절이 가을 추수철이기에 우리의 인생도 가을 추수 때로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심고 가꾸고 거두어들이고 있는지를 이 가을에 생각을 해 보자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7~8절입니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을 우리가 다 압니다. 그런데 성경은 종두득두(種豆得豆)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썩는 것과 썩지 아니할 것을 말씀합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한 썩을 양식을 위하여서도 마땅히 땀 흘려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다가 아닙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은 일이 있습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일은 성경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보고 믿고 얻고자 하는 것은 썩을 양식이 아닙니다. 그런 양식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열심히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양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무엇인지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다고 합니다. 이것을 많은 교회에서 교회의 삼대 목표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교회, 복음을 전하는 교회, 치료하는 교회라는 표어를 많이 보았습니다. 물론 교회가 마땅히 이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태복음 4:23절에도 거의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이런 패턴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가르치십니다. 가르치시는 것과 천국복음의 전파는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치유하시는 장면이 8장에서 9장까지입니다.

 

그러므로 9:34절까지가 한 큰 단락이 되고 오늘 본문 35절부터 다시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치료하시는 내용이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는 일에 제자들을 부르셔서 동참을 시키십니다. 그러므로 10:1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능을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십니다. 전도할 때에 일어나는 내용들을 10장에서 말씀하시고 나서 11:1절을 보시면 가르치시고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치료가 빠지고 있습니다. 이후로 치료하시는 장면이 몇 번 나오기는 하지만 갈수록 치료의 장면은 없습니다. 갈수록 천국복음의 전파와 가르침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추수를 한다는 거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신 복음을 증거 함으로 추수하는 것입니다.

 

본문 36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기를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우리의 자존심이라는 죄가 남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살이를 죽을힘을 다하여 악착같이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불순종아래 가두어 두신 이유는 긍휼로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로마서 11:3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 얻은 자는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자신은 남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지금 백성의 지도자들이라는 자들이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 의하여 착취당하고 정죄당하는 자들을 예수님께서 목자 없는 양 같이 불쌍히 보십니다.

 

그러므로 추수라는 것은 목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있기는 하지만 이 목자들이 다 강도와 도둑과 같은 자들이라서 이들에게서 추수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리는 것이 추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추수 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신천지가 떠오릅니다. 이들이 기존교회에 침투하여 추수를 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기존의 교회들이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들만이 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처음 교육은 기존의 교회들의 잘못을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이단들의 특징이 그러하듯이 결국은 이만희 총회장만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주는 보혜사라고 세뇌를 시킵니다. 그런데 여기서 교육장까지 지낸 신현욱이라는 사람이 탈퇴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말도 들어보면 교회가 바른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빠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목자 없는 양 같은 자들을 추수하는 것이 무슨 내용인지 성경 전체를 살펴보겠습니다.

 

민수기 27:16~20절입니다.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모세가 므리바 사건으로 약속의 땅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서 기도하기를 한 사람을 이 회중위에 세워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가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이기에 그를 안수하여 세우라고 합니다. 율법을 받은 모세가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 들여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가 인도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모형이 됩니다. 여호수아가 신약에서 예수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목자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모든 양들은 목자 잃은 양과 같이 유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목자라고 하시며 그들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목자들이 한 짓이 무엇입니까?

 

에스겔 34:1~5절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3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5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6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 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목자가 양을 기르는 것은 양의 털과 젖과 고기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가 양을 잘 돌보지는 않고 맡겨진 양들을 잡아먹기만 하는 목자라고 책망을 합니다. 이런 목자란 바로 백성의 왕이라는 자들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을 말합니다. 그 결과 지금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지경입니다. 목자들이 제대로 목자 노릇을 못하였기에 양들이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잡아 먹혔습니다. 이제는 이방 나라의 왕들이 쳐들어와서 하나님의 양들을 잡아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양들이 흩어지고 흩어진 것입니다. 들짐승들의 밥이 되고 양 떼가 유리되고 흩어졌는데 찾고 찾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목자 없는 모습입니다.

 

미가서 3:1~5절입니다. “1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2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3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4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시리라 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르시되이스라엘의 목자라는 자들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살을 뜯어 먹고 뼈까지 고아 먹습니다. 이런 죄를 책망할 선지자들은 이에 물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지만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않으면 전쟁을 준비합니다.

 

이어지는 9~12절을 봅니다. “9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오늘날 이 땅의 세상 현실이 이렇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교회에서도 이런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에 예루살렘이 이런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양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현실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 경기도 모임에 30년을 넘게 성당을 다니시던 두 사람이 왔습니다. 한 사람은 정통 교리를 배우면서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또 한 사람은 성당에서 성령 운동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은데 성당에서 일이 자꾸만 힘들고 지쳐서 죽을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찾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금요일 성경공부 때에 광주에서 몇 분이 왔습니다. 이분들은 어떤 교회에서 십자가 복음을 들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그곳에서 이제 뿌리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신사도 운동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곳까지 왔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로 이렇게 해매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말을 하니 우리 교회는 바른 복음을 전하구나 하는 착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봐서 말씀을 드리는데 여기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가 잃어버린 양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지신 그분에게로 가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추수란 바른 복음을 증거 하여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중매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7~38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배경을 지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당시에 제사장들이 없었습니까? 성전이 없었습니까? 율법을 가르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없었습니까?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백성들의 목자라고 하는 그들이 다 강도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의 눈에는 구약의 모든 거짓 목자들에 의하여 유린당하고 있는 그 잃어버린 양들을 추수하여 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을 끊으면 안 됩니다. 원래 성경은 장절 구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장절이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 굉장히 방해가 됩니다. 장절이 있으므로 성경을 찾아보기는 쉽게 되어 있지만 원래 성경의 장절이 없다고 보시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일을 예수님께서 지금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10:1절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권능을 주시고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파송하시는 장면이 10장에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수하시는 주인이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세상에 추수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에스겔 34:10~16절입니다. “10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13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14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15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잃어버린 양을 누가 찾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내신다고 하십니다. 그 일을 지금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추수 하신다는 것은 거짓된 목자들에 의하여 유린당하는 자들을 찾아내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을 지금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잃은 양을 찾는 이 추수하는 일에 제자들을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수는 이미 종말입니다, 우리가 에스겔과 미가서를 통하여 잡아먹히고 있는 양들을 거짓 목자들에게서 빼앗아 내시는 분이 오신다고 합니다. 그 선한 목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한 목자입니다.

 

그러므로 추수란 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서 거짓 목자들에 의하여 기진하며 죽게 된 그 양들을 예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찾고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셔서 자기 양들을 찾아내시는 것이 추수입니다. 이 추수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이미 종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추수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종말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추수하신 내용을 보고 십자가로 다 이루신 후에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추수가 어떤 것인지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3:10~12절입니다. “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타작하시는 분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우시는 분으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등장이 이제 세상의 끝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4:34~38절입니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여인과 말씀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먹을 양식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은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긴 자들을 다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추수입니다. 그래서 들판을 보라고 합니다. 아직 밀과 보리를 추수하려면 넉 달이 지나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일하심이 종말의 추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추수는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38절에서 노력하지 않는 것을 거두러 가는 것입니다. 수많은 전도 프로그램들은 우리가 노력을 안 하면 전도가 안 된다고 합니다. 전도는 지상명령 이라면서 늘 전도를 강조합니다만 그런 전도들이 정말 십자가의 복음이 전하여 지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란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일에 우리가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람을 꼬여서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이 전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너와 내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그 복음을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전하면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누어집니다. 십자가의 도를 전했는데 누가 믿게 되었다면 이것은 전혀 우리의 노력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놓으신 그 추수에 참여하는 즐거움입니다. 저도 너무 소심한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에게 전도를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한때 전도훈련을 받아서 몇 년 동안 길에서 무릎 꿇고 기도 한 후에 핸드 마이크 들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고 다녔습니다만 지금은 등 떠밀려서 십자가를 전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정말 제가 한 것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이루어 놓은 일에 참여되는 즐거움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알리는 세례요한의 증거가 예수님은 타작하려고 오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초림부터 이미 추수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 추수를 하시는 내용이 십자가이기에 예수님은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성령을 제자들에게 부어주십니다. 이 날이 오순절입니다. 오순절을 처음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절기입니다. 이제 이 추수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오늘 이곳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것이 추수의 마지막입니다. 추수의 마지막은 수장절입니다.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들여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추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14~16절입니다.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인자가 되신 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추수 당하는 자는 구원의 추수가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이 일어나는 자는 이 역사 속에서 잘려집니다. 잘려진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리면 자기 백성을 그 십자가로 이끌겠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2:32~33절입니다.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이것이 인자에 의하여 추수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이 역사에서 잘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잘려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 추수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의 추수가 또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17~20절입니다.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져지는 추수가 있습니다. 이 추수는 인자가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다른 천사가 합니다. 그러므로 추수에는 반드시 알곡의 가라지의 분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알곡의 추수란 이 역사 속에서 잘려서 하늘의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 것을 반드시 찾게 됩니다. 이것은 분명한 방향성이 정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의 추수 곧 진노의 추수는 이 땅에 속한 것만 추구하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교회 와서도 땅의 것과 썩어질 것만 구한다면 이 사람은 아직 추수가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추수를 안다면 이 가을 추수의 계절에 나는 어느 추수에 들어가는 자인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이 역사 속에서 잘려져서 예수님이 들리신 그 십자가로 끌려가는지 아니면 더욱 땅에 뿌리박고 영원히 살려고 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