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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1~6 실족(失足) 2015. 12. 20

 

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시니라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그리스도 사역에 대하여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서 오실 그 이가 당신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지 묻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답변하신 내용이 자신의 사역이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일이라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자신을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요한이 왜 실족할만한 의심을 하였는지 보려고 합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세례요한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신 마태복음 11:10절을 봅니다.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말라기 3:1절의 선지자가 세례요한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오리라고 한 엘리야가 곧 세례요한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도 말라기 4:5절의 말씀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세례요한의 출생과 그의 사역이 다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역할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한 내용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서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합니다. 이 선포 앞에 많은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이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거침없이 책망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고 하면서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혀서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합니다. 아주 임박한 종말을 선포합니다. 세례요한이 성령의 인도로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메시아가 오시면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세례요한이 메시아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고 또 그렇게 묻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세례요한은 단호하게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기는 그분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자라고 합니다. 메시아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세례는 구원이지만 불의 세례는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증거 할 메시아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타작은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우듯이 메시아는 추수하려고 오신다고 증거 합니다. 그런데 이때에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요한이 말하기를 자신이 예수님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자기에게 오느냐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렇게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길이라고 하여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임하시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것을 직접 목격하고 증거 한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요한복음 1:29절에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지 몰랐지만 성령님께서 알게 하여 주셨다고 증언합니다. 요한복음 1:32~33절입니다.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이런 말씀을 보시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의심하여도 세례요한은 의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례요한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세례요한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지에 대하여 의심을 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세례요한도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수 있다고 외친 사람이지만 세례요한 안에도 선민의식이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죄인들을 심판하시고 의인들을 구원하실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눈으로 직접 메시아 오심을 목격하고 증언하였기에 거침없이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을 향하여도 그의 죄를 책망한 것입니다. 그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책망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옥에서 자기 제자들을 통하여 들려오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자신이 원하는 그리스도가 아닌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외쳤던 타작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인들을 심판하시고 외세를 몰아내시고 다윗의 왕위를 세워서 영원한 메시아 왕국을 이루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오늘 본문 2~4절입니다. “봉독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 곧 그리스도가 당신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할지를 묻습니다. 지금까지 세례요한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증거 하였는지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보았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의심하여도 세례요한은 의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세례요한이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그리스도의 일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말하라고 합니다.

 

그 전하시라는 내용이 5절입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이 말씀은 구약에서 메시아가 하실 일에 대하여 예언한 내용입니다. 이사야 29:18절입니다.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이사야 35:5~6절입니다.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이사야 61:1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지금 그리스도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세례요한에게 그대로 전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살펴볼 내용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61장에서 희년의 선포를 하시는 메시아 사역을 예언하는 부분입니다. 가난한 자란 단지 경제적인 가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려 있는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가난입니다. 장애를 가진 자들이 성전에 나가지 못하는 것도 가난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고침을 받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희년의 선포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61장은 희년의 선포만이 아니라 신원도 하여 주시기에 선지자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 오심이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누가복음 4:16~21절입니다.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성경을 찾은 것이 아니라 회당장이 예수님께 드린 성경이 이사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사야 두루마리를 펼치신 곳이 이사야 61장의 오늘 읽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놀라기는 하였지만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한 것을 보면 네가 무슨 그리스도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엘리야 시대 때에 이스라엘에 수많이 과부가 있었지만 엘리야 선지자가 보냄을 받은 곳은 시돈의 사렙다 과부였고, 엘리사 시대 때 이스라엘에 수많은 나환자가 있었지만 고침을 받은 자는 수리아 사람 나아만이라고 말씀을 하시자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하였습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과부요 나환자가 된 자들을 고쳐주시는 메시아 역할을 하신다는 것을 그들이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은혜를 입은 사건을 예로 드시는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보지 못하겠다고 죽여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말씀하실 때에 단지 실족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똑 같은 유대인들이지만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사상이 다 달랐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달랐고, 사두개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달랐습니다. 에세네파 사람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달랐습니다. 다들 자기중심적인 메시아를 기다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를 원하십니까? 아마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물어보시면 여러분의 구원관이나 그리스도 사상이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메시아에 대하여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8:13~15절입니다. “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14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15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만국의 여호와를 거룩하다 하고 그를 두려워할 자로 삼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성소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 곧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그가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될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보고 걸려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능력으로 실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례요한이 성령의 지시를 따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 성령이 임하심을 보고 하늘에서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한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의심이 들 정도로 자기가 원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정확하게 구약에서 증거 한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실족하기가 쉽겠습니까? 3년 동안 예수님과 동행한 제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실족하기기 쉽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리스도에 대하여 분명한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이것을 네게 알게 하신 이가 혈육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베드로와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 앞에서 다 실족합니다.

 

마태복음 26:31~33절입니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2)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3)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4)버리지 않겠나이다31절의 버리리라는 말씀 앞에 각주가 있습니다. 각주에 보시면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또 나를 인하여 실족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실족이란 곧 예수님을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버린다는 말의 각주를 보면 헬라어로 실족하지 않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베드로와 제자들을 보시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3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삼년을 동행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표적과 기적들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자신들도 기적을 행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다들 실족합니다. 예수님을 버립니다. 물론 제자들은 자신들이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실족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였지만 모두가 다 십자가 앞에서 실족하였습니다. 만약 제자 중에 한 명이라도 실족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 없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실족한 자들이며 예수님을 버린 자들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실족입니다. 세례 요한이 실족하였는지 아닌지 더 이상의 언급은 없습니다만 만약 세례 요한도 십자가를 봤다면 그도 실족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의심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메시아가 오시면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감옥에 가 있는데도 예수님은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소식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리스도 사역이 세례요한의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치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적들을 태워버려야 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례요한의 이런 마음으로 따라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는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합니다. 너희가 다 나를 인하여 실족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실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실족해야 하는 이유는 스가랴 13:7절의 말씀이 성취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8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9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예수님은 스가랴 13:7 앞부분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그 구절 전체를 보시면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집니다. 그런데 흩어진 그 작은 자들 위에 여호와께서 손을 드리우리라고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흩어진 자 중에 남은 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된 자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목자를 칠 때에 다 흩어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다시 주께서 돌이켜서 연단하여 내심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들으시고 이는 내 백성이라고 할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라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스가랴서의 말씀에서도 목자가 침을 당하여 흩어진 자들을 불러내십니다.

 

누가복음 22:31~34절입니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실족한 베드로가 어떻게 믿음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주님이 다시 찾아오시고 끝까지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실족할 수밖에 없지만 주님께서 실족하지 않으심으로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1~13절입니다.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미쁘다는 말은 신실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함께 살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면 함께 왕 노릇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도 다 주를 부인하였습니다. 다 실족하였습니다. 다 주를 버렸습니다. 그러함에도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기에 자기를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나 베드로가 발견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같은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1~4절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와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이 성도입니다. 베드로가 받은 보배로운 믿음이 무엇인지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자신은 실족하였지만, 자신은 주님을 버렸지만 주님께서 그를 끝까지 붙들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같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알아감으로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게 됩니다. 그 신기한 능력과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신 분을 앎으로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보고 배우는 이유가 이런 이유입니다. 그 분의 놀라운 은혜를 알면 알수록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5~11절을 봅니다.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1)주시리라

 

믿음, ,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을 더하라고 해서 이런 것이 무슨 제자훈련 단계처럼 성취하여 가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미 이런 것이 성도에게 있고 흡족하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사람의 어떤 행위로 나온 업적이 아닙니다. 이런 것이 풍족하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앞부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 이러한 열매들이 더욱 풍성하여 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절에서 영생이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열매들이 없다면 9절에서 맹인이라고 합니다. 맹인이라는 말은 우리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타난 죄의 용서를 잊어버리면 자기의 행위로 자랑하는 일이 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육체의 정욕입니다. 그래서 온갖 시기와 질투와 사람들의 자랑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합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신 일은 결코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언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원한 적이 있습니까? 세례요한도 실족하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 실족한 그 십자가를 우리가 택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아들의 언약을 따라 영원 전에, 창세전에 택하신 자들을 때가 되어 불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만 붙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실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실족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실족하였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족하였기에 주님의 신실하심이 더욱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실족하고 주를 버릴지라도 주님께서 실족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