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20:18-21 두렵고 떨리는 말씀 2010. 9. 5

 

18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 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21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십계명의 말씀이 선포되고 나서 백성들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본지라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말하여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연기로 나타내시면 다 죽을 것 같에 모세가 대신 전하여도 다 듣고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십계명의 선포 뒤에 이렇게 두려운 현상이 나타납니까? 모세가 전한 말이 모세의 말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백성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데 모세가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 하지 않게 하려고 하심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19:1-6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3개월 만에 시내 산에 도착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불러올리십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백성들에게 전합니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였는지 너희가 보았으니 온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7-9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자 백성들이 일제히 응답합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겠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이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합니다. 모세는 지금 언약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 삼일에 나를 만난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16절입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세가 전하는 말이 모세 개인의 말이 아니라 두렵고 떨리는 그래서 직접 말씀하시면 죽을 수밖에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임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도 자기들이 직접 들으면 죽을 것 같으니 모세가 대신 전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모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듣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내 산에 오는 3개월 동안에도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물이 없다고 양식이 없다고 원망한 자들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두려운 여호와의 강림을 보았기에 모세의 말을 잘 순종하였겠습니까?

 

사람이 화장실 갈 때 마음하고 올 때 마음 하고 다르듯이 시내 산에 여호와께서 강림하여 계실 때 하고 시내 산을 떠났을 때 하고 마음이 다른 것입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인도하고 계셔도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떠는 마음으로 받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10번이나 하나님을 거역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였다는 것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입니다. 40년에 10번이라 적게 보이십니까?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가 터져 나온 것이니 40년 내내 거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 40년 동안 모세를 거역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고라와 단과 온이 당을 지어서 거역하다가 그들의 가족과 함께 땅이 꺼져 내려가는 죽임을 당합니다. 심지어 모세의 누이조차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한 것을 책망하다가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틈만 나면 모세를 향하여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모세를 대적하는 것은 모세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지를 않습니다. 모세가 싫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싫은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가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이런 모습을 가지고 오늘날 목사들이 어떻게 이용하는지 지난주 뉴스 엔조이에 나온 내용을 잠시 소개합니다. "저는 심히 부족한 종이지만 47년간 목회하는 동안 나를 거역하고 비방하고 공격하며 교회를 소란케 한 사람들은, 후에 보면 10년 안에 아들이 죽거나 딸이 죽거나 손자가 죽거나 본인이 암으로 죽거나 많던 재산이 다 없어지고 알거지처럼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외가 없었습니다." 이런 말에 사람들이 두려워서 꼼짝 못하고 맹종하고 있는 자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주받을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모세시대의 표적이 나타나지도 않는데 사람들이 이런 목사의 말에 꼼짝을 하지 못하는 것은 모세시대 사람들보다 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현실입니다.

 

모세를 보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마 이런 교인들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싫은데, 하나님의 말씀이 싫은데 모세를 거역하니 저주가 내립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순종하는 척 하다가 그 위기만 모면하면 다시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런 백성들을 보면서 모세도 불평합니다. 민수기 11:12절입니다.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만나 질린다고 고기 달라고 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과연 누가 여호와의 말씀 앞에서 두려워 떠는 자가 있습니까? 저주와 재앙이 내리면 그때는 벌벌 떠는 모습을 보이다가 돌아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직접 여호와의 두려운 현현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이렇게 안하면 벌 받을까 두려워서, 혹시나 지옥이라도 있으면 보험 드는 셈치고 교회에도 나오고 헌금도 하지는 않습니까? 이런 행위는 자기 좋으라고 하는 것이니 우상숭배입니다.

 

이사야 66:1-3절입니다. “봉독” 사람들이 성전을 짓는다고 합니다. 소를 잡고 양을 잡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지어드리겠습니까? 땅이 하나님의 발판이신데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지으신 것인데 소를 바친들 양을 바친들 그것들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기들이 좋아서 자기들이 기뻐서 하는 짓입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는 자는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를 돌보신다고 하십니다.

 

아모스 8:11-13절입니다.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물과 양식의 고갈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실상을 소개한 이진용 씨의 글을 복음 칼럼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분도 목회자인데 미국에서 자기 아버지의 제자를 만나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한때 교회의 재정부장 까지 맡은 사람인데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동안 교회를 나간 것은 80퍼센트가 교제를 위하여 나갔고 나머지는 혹시나 해서 나갔는데 하나님도 안 계시고 예수님도 다 만들어 낸 이야기로 목사들이 다 자기 밥 벌어 먹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러자 이 분이 복음을 전했답니다. 한 참 후에 교회 하나 하자면서 자기가 운영을 맡고 그 방법은 노인들 데려다가 돌보아주고 하면 정부의 지원이 나오니 그것이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니 예수님이니 그런 이야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기적을 일으켜야 합니까? 분위기를 잡고서 울도록 만들어야 합니까? 저주로 겁을 주어야 합니까? 예수님이 오신 모습을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직접 들으면 두렵고 떨려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영광을 다 버리고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 영광을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님을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매를 때리고 저주받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죽으신 분이 3일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도들이 이 말씀을 전하였을 때에 사람들이 어찌할꼬! 하며 회개하였습니다. 물론 돌로 들어 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갈라짐의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좋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려워 떠는 일이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면 교회 다니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회 다니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렵고 떠는 자를 하나님께서 돌보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변질 시켜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을 봅니다. 고린도전서 4:11-15절입니다.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바울이 이런 꼴로 복음을 전하는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봅시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사도가 만물의 찌꺼기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말씀이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였는데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다는 이 사실이 두렵고 떨리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고 있는 현장입니다. 이미 구약에서 우레와 나팔 소리와 캄캄한 흑암의 엄청난 두려움과 떨림으로 전하여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이런 방법으로 전하면 믿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표적과 기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의 도로 증거 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18-31절입니다. “봉독”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세상의 지혜와 총명을 폐하시고 미련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을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하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그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됩니다.

 

이 십자가의 도는 표적도 기적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믿는 자들이 나온다는 것이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하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이 자살하려고 하다가 마지막으로 친구 목사에게 기독교가 무엇인지 한번 들어보려고 불렀다고 합니다. 감리교 목사인데 자기도 믿지 않는데 이런 교리가 있었다고 하면서 십자가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 하듯이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자가 울면서 예수님이 나의 죄를 씻었다고 예수님이 나를 살렸다고 하면서 1시간 반이나 울더랍니다. 그 목사는 미쳤구나 하면서 돌아갔는데도 혼자서 그렇게 울더랍니다.  말씀의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