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20:7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2010.7.11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망령(妄靈)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은 허망하게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들은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도 어른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이름에 대하여는 발음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네 문자가 나오면 발음을 하지 않고 주(主)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야훼 이렇게 발음하지만 그것은 네 문자에 주라고 하는 아도나이의 모음을 붙여서 읽었기에 이런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이름을 알려주시고서 왜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까? 이름이란 그 사람의 특성을 담아냅니다. 우리가 누구의 이름을 부르면 이름 세 글자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한꺼번에 다 생각이 납니다. 착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나에게 득이 되는 사람인지 손해가 되는 사람인지 이름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우리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말해도 결국 자기를 중심으로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좋고 나쁘고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물은 사건 두 곳을 봅니다.

 

창세기 32:29-30절입니다.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야곱이 하나님의 이름을 물으니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붙들고 싸웠던 그 분이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짓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야곱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부르시고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3:13-15절입니다.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모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물었을 때에 답변하신 이름이 ‘나는 나다’입니다. 이런 호칭은 누구에게 해당이 되는 것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알아야 그 이름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대로 기억한 하나님의 칭호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어떻게 다루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방적으로 부르시고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신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인 것입니다. 모세의 질문에 답변한 하나님의 이름이 바로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입니다. 그 언약대로 출애굽 시키기 위하여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가운데서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겠습니다. 레위기 24:10-23절입니다. “봉독” 이스라엘 여인과 애굽 사람을 아버지로 둔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 사람을 잡아서 모세에게 끌고 왔습니다. 그들이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렸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였습니다. 그를 이끌어 내어 그 말을 들은 모든 자들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회중이 돌로 치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두려운 여호와의 이름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였을까요? 여호와의 이름은 언제 부르게 됩니까? 기도를 할 때나 예언을 할 때나 백성을 축복할 때에 사용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맹세를 할 때에 사용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도 또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맹세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면 다윗은 온전히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을까요? 처음 등장할 때에 골리앗을 어떻게 이깁니까? 사무엘상 17:45절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물리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싸우는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윗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데 자기 잘못을 모릅니다. 사무엘하 12:5-6절입니다.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다윗이 간음과 살인을 했습니다. 그때 나단 선지자가 비유를 들어서 책망을 합니다. 어떤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자라서 양과 소가 심히 많고 한 사람은 암양새끼 한 마리만 있어서 그의 가족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자에게 손님이 왔을 때에 자기 양을 아껴서 잡지를 않고 그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아 대접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이 한 말이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율법에 의하면 양을 훔치면 네 배로 물어주어야 합니다. 다윗은 이런 율법도 잘 압니다. 그런데 그 죽어야 마땅하다는 자가 자기 자신인 줄도 모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한 것입니다. 이때 나단이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 왕, 우리들도 흔히 성군 다윗 왕이라고 합니다만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도 이런 모양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이름을 더럽혀 놓습니다.

 

에스겔 36:16-32절을 봅니다. “봉독”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에 살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힌 것입니다. 그것은 우상숭배로 인함입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아 각국에 흩어졌습니다. 이렇게 흩어진 것은 전적으로 백성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무능하여 적들에게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여호와의 이름을 일컬음을 받는 성전조차 파괴되어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러나 이러 일들로 인하여 이방나라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의 이름을 아끼시는 것입니까?

 

21-23절입니다. “봉독”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지만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아껴서 그 거룩함을 드러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는 것입니까? 24-30절을 봅니다. 여러 민족 가운데서 인도하여 고국으로 데리고 가서 맑을 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하고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또한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뿐 아니라 곡식도 풍성하게 하셔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을 보면서 이런 랍비 아브라함에 요수아헤셜의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망치고 하나님은 이루시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는데 오히려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아끼고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범죄 한 그들을 구원하시고 깨끗하게 하시고 안전하고 풍요롭게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자들은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31-32절입니다. “31 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그런데 이런 말씀이 언제 성취가 되었습니까? 바벨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돌아왔지만 이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내용은 예레미야 31장의 내용과 함께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의 특징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이루어진 새 언약의 사람들에게 새 영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새 영이 임한 자들은 자기의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인하여 스스로 자신을 밉게 보며 부끄러워하고 한탄하게 됩니다.

 

그러나 새 언약을 받지 않으면 인간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맹세하여도 그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줄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33-37절입니다. “봉독” 사람들이 맹세를 할 때에 자기보다 높고 영원한 것을 들어서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로도 땅으로도 예루살렘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한 네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희고 검게 할 수 없는 주제에 무슨 맹세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급하면 자기 부모의 이름까지 걸고 맹세하고, 종교인이라면 자기 신의 이름으로도 맹세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맹세들이 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잘 섬긴다는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행하는지 마태복음 23:16-22절을 봅니다. “봉독” 성전으로 맹세하여 지키지 않아도 아무 일이 없지만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였다면 반드시 지키라고 합니다. 이런 말들은 결국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까? 돈을 사랑한 것입니다. 이러한 헛된 맹세들이 지금 이 땅에 없습니까? 인간들이 신의 이름을 가지고 이렇게 망령되이 행하고 있음을 예수님이 다 들추어 내어버립니다.

 

누가복음 19:38절에 보시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무리들이 이렇게 외칩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예수님인 것을 바리새인들이 싫어하여 잠잠하게 하라고 하자 예수님은 이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잡아서 재판할 때에 대 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면서 예수님을 보고서 신성을 모독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묻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유일하게 공경하신 분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아끼십니다. 자기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 일하심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십자가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만 천하에 알리심으로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아끼시고 거룩하게 하신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부터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행2:21, 롬10:13).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이 소식을 전한 사람들이 바로 새 영이 임한 사람들입니다. 새 영이 부어진 자들은 물로 씻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자에게 금과 은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을 줍니다. 교회는 무엇 때문에 모인 것입니까?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어야 합니다. 그런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히브리서 10:28-29절입니다.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하나님의 아들,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 이를 증거 하는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여기는 것입니다. 이들이 받을 심판이 얼마나 무거운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부름이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