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20:1-2 십계명 서론 2010. 6. 27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을 지켜서 출애굽 합니까? 출애굽하고 나서 십계명을 받습니까? 출애굽 하고 나서 입니다. 출애굽을 구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백성들에게 왜 십계명을 주시는 것입니까?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출애굽하게 된 것은 그들의 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눌러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왜 출애굽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조건을 찾는다면 다른 민족보다 수가 적었다는 것입니다. 수가 적었다는 것은 그들의 자격과 자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 즉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으로서만 구원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주어지기도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일방적인 언약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지를 먼저 보여주고 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인간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서론인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인간은 접근불가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죽임을 당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뵐 수가 없어서 바위틈에 가려놓고 하나님이 지나가신 후에 그의 후광만 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 말씀을 듣는 것조차 두려워서 더 들으면 죽을 것 같아서 듣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거룩하신 분의 계명을 감히 사람이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율법을 왜 주신 것입니까?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구원받아 나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 때문임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율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해하였습니다. 이 율법을 주신 것은 자기들이 지킬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다른 민족에게는 주지 않았지만 자기들에게만 준 것은 자기들만이 특별한 민족으로 선택을 받았기에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도 장님이었습니다. 율법을 받았지만 그것을 볼 눈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나온 결과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10:1-4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열심히 지키면 지킬수록 하나님의 의에 더욱 복종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율법의 마침과 완성이 예수님인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자신하던 바울이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로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던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기 위하여 멀리 다메섹에 까지 가서 잡아올 공문을 대제사장으로부터 받아서 가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대낮에 햇빛보다 더한 빛이 비쳐 사울이 말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때 음성이 들리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당신이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이 오히려 참 하나님을 핍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율법에 대한 바른 해석을 하게 됩니다. 오늘 십계명의 서론의 내용을 이제 알아본 것이라는 말입니다.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제대로 알게 된 것입니다.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언약과 사랑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왜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울의 눈에 비늘이 벗겨진 것입니다. 모세의 얼굴을 가렸던 수건이 벗겨진 것입니다. 이제 율법과 선지서가 무엇을 증거 하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가는 곳 마다 복음을 전하는데 사도행전 13장을 봅니다. 27절을 보시면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안식일마나 외우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정죄하여 죽였지만 이것도 선지자들의 말이 응하였다는 것입니다.

 

28-30절입니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고 한 것도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이 다 응하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 것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의 글도 인용하면서 부활을 증거 합니다. 38-39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한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의 율법이 무엇입니까? 거울과자와 등불의 역할을 합니다. 거울로 우리의 더러움을 보는 것처럼 성경을 통하여 우리 마음의 더러움을 볼 수는 있지만 거울이 우리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틀린 것을 자로 측량은 할 수 있지만 그 자가 우리를 고쳐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등불이 장애물을 비추어주지만 장애물을 제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구원하여 낼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다는 것을 율법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울만이 이렇게 복음을 증거 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도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목격하게 하시십니다. 복음이 사마리아에도 증거 되고 이방인 백부장에게도 증거가 됩니다.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도 아니하려고 하는 베드로를 향하여 주님께서 강권하여 복음을 증거 하게 하십니다. 할례도 받지 않고 십계명도 지키지 않은 이방인들이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이 임하고 구원을 받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유대인들이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도 그러합니다.

 

사도행전 15장을 봅니다. 1-2절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는 형제들을 다시 가르치면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변론과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문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문의하러 보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다 모였습니다. 5절을 봅니다. 예수 믿는 자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8-11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도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고 합니다. 이 멍에가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의 멍에는 자기들의 조상도 자기들도 메지 못하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은혜로 구원 받는 줄로 믿노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은 구원받지 못하는 자로 개같이 여기던 유대인들이 동일하게 은혜로 구원받는 다는 말은 그들의 능력으로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

 

최종적인 마무리를 야고보가 합니다. 베드로의 말이 선지자들의 말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모서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방인들도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별로 놀라지도 않습니다만 유대인들에게 이런 말씀은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자유게시판에 ‘회복’이라는 영화를 꼭 보시기 바랍니다.

 

십계명의 서론이 중요하다는 것은 신약에서 이런 해석을 하고 있기에 중요한 것입니다. 두 곳만 더 찾아보도록 합니다. 로마서 4장입니다. 1-3절은 아브라함이 무엇을 받았습니까? 소떼 양떼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무 할례 시에 되었습니다. 다윗도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김을 받는 자의 복에 대하여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이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13-16절을 봅니다. “봉독”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범법자가 구원받는 길은 오직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란 예수님은 우리의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여러분은 다 알고 믿는다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속에 얼마나 우리 행함에 의미와 가치를 두는지 우리의 일상사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집안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 은혜가 통용이 되는 곳을 보았습니까? 오직 행함의 원칙만 펄펄 살아있는 곳입니다. 지금 신앙상담 코너에 어떤 청년이 질문을 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형제를 미워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고 질문이 시작이 되었는데 자신은 계명을 지킬 의향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저주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을 끝으로 보겠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성령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저주를 대신 담당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 전하는 자들이 와서 예수님만으로 부족하고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자들이 온 것입니다. 이런 말에 사람들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8절을 봅니다.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전하여진 복음이 무엇입니까?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 복이 바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복입니다. 그런데 이 복을 거부하고 자기의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10절에서 저주아래 들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함에도 아직도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의지하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신 저주받으심을 무효화하고 자신이 저주아래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5-22절을 봅니다.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 즉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언약이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율법이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범법함으로 주어진 것인데 언제까지 주어지는 것입니까? 약속하신 자손 약속하신 씨가 오시기까지입니다. 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기능이란 22절에서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하여 우리가 죄 아래 갇힌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갇힌 자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11:32절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율법은 죄 아래 갇혔음을 알게 합니다. 그러니 스스로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그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율법을 볼 때마다 더욱 이 긍휼의 능력을 맛보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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