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20:3-6 신과 신들 2010. 7. 4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들을 다 엉터리며 가짜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이신데 왜 다른 신들이 등장하는 것입니까? 그런 다른 신들이 엉터리며 가짜며 우상이기에 다 없애버리시든지 아니면 아예 등장하지 못하게 하시면 되실 텐데 왜 이렇게 세상에 신들이 많은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마치 선악과를 왜 만들었으며, 만들었더라도 따 먹지 못하게 하지 않느냐는 의문과 같은 것들입니다.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신명기 4:4-5절입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한 여호와라고 합니다. 유일(唯一)이란 오직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피조물 된 인생의 삶의 목적이며 그 목적 안에 있을 때에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이런 말씀들을 유대인들과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떻게 오해하고 있습니까? 단일 신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약속 하시고(딛1:1-3) 그 약속대로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그 창조는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하신 것(골1:16)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곧 그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요17:3). 이것이 영생입니다. 이런 것이 다 유일한 내용들입니다.

 

3절을 봅시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런 율법이 주어지는 것은 인간이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소에 나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율법의 서론에서 율법이 주어진 것은 율법이 우리를 죄 아래 가둔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죄가 없었는데 일부러 죄 아래 가둔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죄 아래 갇혀 있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아니었다면 죄 아래 갇혀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5:12-13절입니다.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율법이 없었을 때에도 죄가 있었습니다. 그 죄란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하여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이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이 있기도 전에 죄가 있었다는 이 죄가 무엇입니까?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덴동산의 모든 과일은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네게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단 하나의 금지명령이었습니다. 피조물과 창조주의 경계입니다. 선악에 대하여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금지명령에 틈을 노리고 뱀이 유혹합니다. 창세기 3:4-5절입니다.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와가 그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보았습니다. 아마 유혹을 받기 전에는 그런 충동이 없었을 것입니다. 먹으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혹이 오고 나서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먹고 아담에게 주니 아담도 먹었습니다. 이 범죄 이후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무화가 잎으로 가린 것을 가죽옷으로 대신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3:22절입니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기서부터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선악을 알면 안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께서 위치시키신 자리에 있는 것이 선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선악을 알아버렸기에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선과 악을 구별하면서 살겠다는 것이 신이 된 모습입니다. 선은 권장하고 악은 멀리하면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은 더 이상 자기를 지으시고 자기를 돌보시는 신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이 신들이 된 것입니다. 세상에 다른 신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이 신들이 되었기에 인간의 자의식의 깊숙한 자리에 이미 자신이 신이라고 여기며 살게 된 것입니다. 참된 신의 특징은 자신이 언약하신 바를 자신이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가짜 신이 되어버린 인간들도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의식에 있는 소원들을 던져놓고 그것을 자기에게로 회수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그 소원들이 신이 되고 싶은 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어떤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까? 신에게 소원을 아뢰지만 그러나 신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 됨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신에게 소원을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이 종교를 가진다는 것도 결국 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한 발판인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세속적인 모습으로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초인사상입니다. 그래서 꿈을 가지라고 하고 비전을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는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 이루고 싶은 것이 바로 전능한 신의 자리인 것입니다.

 

종교든 사업이든 정치든 교육이든 우리의 모든 일상사가 신들의 자리에서 유일한 신의 자리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신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행이나 금욕으로 신의 경지에 이르고자 합니다. 사업에서 성공하면 신화라고 합니다. 다른 신들을 다 무찌르고 나만 홀로 신이 되어야 하겠다는 싸움들이 온 세상에 가득한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당대표 출마자가 13명이나 나왔다고 합니다. 어느 초등학교 교문에 목숨 걸고 공부하자고 현수막을 걸어놓았습니다. 이것이 경쟁입니다.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인 것입니다. 이런 결과로 나온 것들이 바로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4-5절을 봅니다.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하늘에나 땅에 있는 것이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그것에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형상물만 우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골로새서 3:5절에서는 탐심이 우상이라고 합니다.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탐심으로 교회오든지 절에 가든지 목사가 되든지 중이 되든지 교인이 되든지 보살이 되든지 간에 다 우상숭배입니다. 그 우상숭배가 되는 탐심이란 4절에서 ‘자기를 위하여’입니다.

 

나무나 돌을 다듬어 세워놓고서 왜 그것에 절하며 섬기는 것입니까? 나무와 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목적입니까? 아니면 그렇게 정성을 바치는 자기를 위한 것입니까?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수천억을 들여서 교회당을 짓고 절간을 짓는 것은 신을 위한 것입니까? 자기를 위한 것이니까? 말로서는 신을 위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까? 결국 인간은 자기를 위한 자기 사랑입니다. 그렇지 않고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 있다면 소개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사를 해야 하는데 2년마다 수 천 만원씩 전세 값은 오릅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른 조건과 이유 없이 그냥 돈을 좀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도 무엇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을 우리가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따른다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우상숭배자이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우상이 이렇게 많고 신들이 이렇게 많은 것은 인간이 신들이 되었으니 인간의 수만큼 신들이 많은 것입니다.

 

로마서 1:18-25절을 봅니다. “봉독”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천지만물이 다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25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더 섬기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하여야 하고,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도록 하여야 하는데 우리가 과연 그렇게 살아갑니까? 우리 자신이 바로 우상이며 우상숭배자 이기에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원수들을 어떻게 하셔야 자신이 피조물임을 알겠습니까? 지난주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어야 한다고 장로님이 기도하셨는데 그 지혜가 바로 우리 모두가 죽는 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왜 사람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까?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인생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피조물의 자리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으로 남고 싶은 인간들을 하나님은 낮추시고 약하게 하시고 병들어 죽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아멘이 되십니까? 왜 안 되는 것입니까? 이미 신들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낮아지면 안 되고, 병들어도 안 되고, 실패해도 안 되고, 죽어도 안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들에게 신을 잘 섬기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여 준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신이든지 섬기겠다고 나옵니다. 그런 신이 바로 자기를 위한 신이기에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모르기에 우상숭배를 하는지 모르지만 저는 우상숭배자이며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죽이시고 지옥에 보내셔도 전혀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있습니다. 로마서 5:8-10절입니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이런 일을 우리가 요청하였습니까? 우리에게 물어보고 하십니까? 죄인과 원수에게 물어볼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시기 위하여 창세전에 선택하신 것입니다.

 

끝으로 5절 중반에서 6절까지입니다. “봉독”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면 그 저주는 삼사 대까지만 이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풉니다. 저주와 은혜의 비교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가 크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녀가 저주를 받겠습니까? 은혜를 받겠습니까? 저는 저의 행위를 보면 저의 자녀들이 저주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런 저주를 누가 대신 받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갈3:13). 저주 받아야 마땅한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에게 돌리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고후5:19-21).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는 정죄함이 없는 것(롬8:1)입니다. 이 자리에 있어야 신들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