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에베소서 4:13~14 자람 2013. 6. 16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모든 생명은 자람이 있습니다. 자라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자랍니다. 성도에게도 태어남이 있으며 자람이 있습니다. 태어남은 자기 스스로 태어날 수 없기에 항상 수동태로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람을 이야기하기 전에 태어났는지 먼저 점검을 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거듭났습니까? 거듭난 증거가 무엇입니까?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본능적으로 하는 일이 젖을 빠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났다면 반드시 신령한 젖을 사모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2절입니다.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거듭난 자의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태어난 아이가 젖을 먹지 않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말씀을 먹기 싫어한다면 거듭나지 않았거나 심각한 병이 들어있기에 그러할 것입니다. 거듭난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골로새서 3:1~6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다시 살리심을 받은 증거는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위엣 것을 찾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자람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성도의 자람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어떤 오해를 하는가 하면 예수 믿고 나서 괜찮은 자기 만들기로 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흔히 성화라고 합니다. 거룩하여 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여 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미 거룩한 정도가 아니라 영화롭게 되었다고 말씀은 증거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30절을 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미 영화롭게 까지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30~31절입니다.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이미 완성과 거룩함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자람이나 성장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다릅니다. 세상에서 성숙되었다 많이 컸다는 말들은 그 사람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의 자람이란 자신이 점점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고 자기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잘못된 성화주의가 나오면 사람들 사이에 계급과 차별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자기들이 만든 교회성장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는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골로새서 3:11절입니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세상에서 구별되어 부름 받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어떤 차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차별을 한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야고보서 2:9절입니다.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이 말씀은 교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함에 대한 말씀이지만 이런 차별만이 아니라 성경공부를 해도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누어 차별을 합니다. 온갖 교회의 봉사를 점수로 매겨 차별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독려하면서 성장하라고 한다면 이런 것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자란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바울사도가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외식하는 베드로를 향하여 거침없이 책망도 하였습니다(갈2:14). 선교여행에 힘이 든다고 동참하지 아니한 마가를 책망하며 자기를 추천한 바나바와 갈라지기도 하였습니다(행15:39). 그런 그가 노년에 고백한 내용은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합니다(딤전 1:15). 그러므로 성도의 자람이란 자신의 잘남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못남이 더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증거 하는 것이 성도의 자람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자람과 성장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사도는 자람을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3:18절입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성도가 자랐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러한 말을 했다고 베드로 사도가 전하는 것이 바로 앞에 나오는 15~17절을 말씀입니다.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자라가라는 말과 함께 미혹에 이끌려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고 합니다.

 

이제 본문 13절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이 온전한 사람이며 이것이 또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 이르는 것이라는 말씀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 이르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부르심을 받아 지금 그 길로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온전하게 되어야 하고 장성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방해세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온전하여 지는 것을 대적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14절입니다. 성도가 자라야 하는 것은 어린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린 아이는 천국이 어린 아이 같아야 간다는 말씀의 어린 아이의 비유와는 다른 뜻입니다. 천국이 어린 아이 같아야 간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천국이란 인간의 행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만 간다는 것을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의 어린 아이 같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은 어린 아이가 지식이 없기에 판단을 잘 못하여 속임수에 잘 넘어가는 그런 모습을 말합니다. 어린 아이는 사탕 하나에도 장난감 하나에도 유괴범에게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속임수란 주사위 놀이를 하는 것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도박이나 로또나 경마나 경륜에 빠지는 것은 한방을 노리는 것입니다. 신앙도 이런 한방에 해결하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속임수와 간교한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어렵고 힘든 문제가 생기면 능력 있는 주의 종에게 찾아가서 기도한번 받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말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여 무엇이나 빨리 빨리 그 열매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도 화끈하게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을 내면 신앙이 좋다고 합니다. 이런 열심들은 이런 유혹에 넘어갔기에 나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은 나의 일을 해 준다고 합니다. 내가 내 일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내가 하나님을 위해 헌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손 한번 써 주시면 나의 사업은 내가 평생해도 이루지 못할 일을 단번에 이루어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자고 온갖 간증들도 쏟아놓습니다. 다 속임수요 간사한 유혹들입니다.

 

갈라디아서 6:7~8절입니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한다는 일이 성령으로 심는 일이라고 합시다. 말씀과 기도와 헌신 봉사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거두어들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세상의 썩어질 것을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바로 아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런 말씀이 분명한데도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성공과 복을 준다고 하는 것이 바로 사기꾼들이 속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을 얻고자 하면 교회오지 마시고 그 시간에 돈 버시고 교회에 헌금할 돈을 좋은 투자자 만나서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면 돈을 잘 벌게 됩니다. 이것이 심은 대로 거두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둔 것은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섞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며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그런데도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물불 안 가리고 충성봉사를 십년 넘게 하다가 망한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14절을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장성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어린 아이처럼 속아 넘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유혹이나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는 지식의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하여 분명한 판단을 못하고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것입니다. 누가 이 말을 하면 이 말을 따라가고 저 말을 하면 저 말을 따라가는 식이 됩니다.

 

이것이 신앙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누가 어느 기도원에 가서 신비한 능력을 받았다고 하면 그리로 우르르 몰려갑니다. 어떤 이적이 나타났다고 하면 또 그리로 몰려갑니다. 휴거 이야기 나오면 그기에 솔깃합니다. 666 이야기 나오면 그런 것에 흔들립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본질을 전하지 않고 교회 성장에 도움 된다는 온갖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운영하다보니 진리의 지식이 없어서 마구 넘어갑니다. 근본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니 집안 단속만 하느라고 난리입니다.

 

이번 주 시사저널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일본계 종교 야금야금 커진다” 한국 SGI(남묘호렌게쿄, 나무묘법연화경) 교당 수가 365개며 교직자 수가 1,575명에 신도수가 1,550,177명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 일본계의 종교와 중국계의 종교도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 중에 중국계의 가장 큰 단체가 국제도덕협회인데 교당 수가 160개이며 교직자 수가 200명이며 신도 수는 1,300,000명이라고 합니다. 왜 한국에 이런 종교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지 그 기사는 이렇게 전합니다.

 

“한국은 ‘종교 백화점’, ‘종교 시장’이라고 불린다. 한국에 종교단체가 수가 많고, 종교단체들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일종의 선택 가능한 상품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2008년 조사 결과 한국에는 자생종교와 외래 종교 등을 합해 510여개 이상의 교단. 교파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인구 가운데 53% 이상이 스스로를 종교인으로 인식한다. 한국인 절반 이상이 종교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다양한 종교에 시간과 재화를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 종교 백화점이며 시장이라고 합니다.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일종의 선택 가능한 상품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종교는 앞으로 더욱 다양한 상품들을 개발하여 고백의 욕망을 축종시켜 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라는 이름의 종교도 수많은 상품들을 개발하여 내어 놓고 있습니다. 번영신학이 아직 큰 소리 치고 있으며 여전히 신비주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오감을 축종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볼거리 들을 다 동원합니다. 고객의 욕망을 채워주고자 창기의 소굴이 되어버린 것이 종교의 현실입니다.

 

이런 시대에 풍조를 따라 시류를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장성하지 못한 어린 아기 같아서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가지고 구원을 이야기하면서 자기들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대 환난에 들어간다고 위협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구원을 팔아먹는 장사꾼들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영광을 위한 구원인데도 사람들의 원초적인 구원욕망을 자극하여 자기들의 단체에만 유일한 구원이 있다는 자들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에 대하여 성경이 이미 다 예고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3:21~23절입니다. “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이런 말씀이 세대주주의 적인 해석자들처럼 대 환난 때에 일어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계속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말씀하여 두신 것입니다. 이적과 기사를 따르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9~12절입니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능력 표적 기적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좋아하는 것은 어린 아이라는 말입니다. 영화와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어린 아이입니다. 어깨에 붉은 수건만 걸치면 자기도 슈퍼맨처럼 하늘을 나는 줄 압니다. 진리를 냉철합니다. 그런데 이런 나타나는 신기한 것들에 마음이 빼앗기는 이유는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아서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에 심판 받는 자들이 이런 것을 좋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전한 복음이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11:4절입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다른 자들이 가서 다른 예수를 전하고 다른 영을 받게 하고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 너희가 잘 용납한다고 책망합니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고양시키는 것입니다. 참된 복음은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훌륭하고 멋있는 나를 구축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얼마나 멋있게 나타나는지 봅니다.

 

고린도후서 11:13~15절입니다.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사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겉은 양의 옷을 입었지만 안은 노략하는 이리입니다(마7:15).

 

거짓 사도들이 이렇게 나타나면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아십니까? 20절입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거짓 사도의 종이 되고 잡아먹히고 빼앗기고 뺨을 맞아가면서도 용납을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거짓 사도들에게 복종을 하는 것입니까? 이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하며 바울은 어떤 모습입니까?

 

이어지는 21~33절을 봅니다. “봉독” 이런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 그 약함을 자랑하는 복음이 과연 좋겠습니까? 그러므로 장성하지 못하면 어린 아이처럼 이리 저리 휘둘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바로 알기를 힘쓰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제 젖만 먹는 자기 아니라 단단한 식물도 먹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그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