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23:29-33 기업을 얻을 때까지 2010. 12. 12

 

29 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30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31 내가 네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32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 33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 하게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지난주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시고 주의 사자가 앞서서 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의 사자가 앞서서 인도하시고 심지어 팔로 안고 독수리 날개로 엎어 내시는데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는 이유는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말로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 내시는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이 약속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완성하시고 낡고 없어질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앞서서 준비하심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앞서서 인도하시는 주님을 알지 못하였다는 말씀을 호세아 11:1-11절에서 한 번 더 봅니다. “봉독”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 들여 놓았지만 그들은 다른 신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오늘 본문 32절에서도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너희가 내게 범죄 하게 할 것이기에 그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고 하였지만 거듭하여 그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럴 때 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돌아오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부를수록 점점 멀리하고 바알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함에도 걸음을 가르치고 팔로 안았지만 그들은 자신을 고치는 줄을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팔에 안겨가면서도 믿지 아니하였다는 신명기 1장의 말씀이나 호세아 11:3절의 말씀이 같은 내용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줄로 이끌고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어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셨는데도 계속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가 쳐들어와서 그들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하여도 끝끝내 하나님에게서 물러가고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고 하여도 돌아오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라면 진노하셔서 다 버리셔야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8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마음이 속에서 긍휼이 불붙듯 하셔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시고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겠다고 하십니다. 9절을 보시면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민수기 23:19절입니다. “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옛날 성경에는 식언(食言)치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인간은 거짓마을 밥 먹듯이 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말을 먹어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시기에 앞서서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앞서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인도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30절을 보시면 그 기업을 얻을 때 까지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천천히 하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일 년 안에 한꺼번에 쫒아 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땅이 황폐하게 되어 사나운 들짐승들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그들을 조금씩 쫓아내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의 땅의 다 차지할 때 까지 여호와께서 앞서서 인도하시고 약속의 땅을 다 차지하도록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기업을 차지 하리라고하신 최초의 약속은 창세기 15:18절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주신 것은 아브라함이 자식도 하나 없는 때에 주신 것입니다. 이 약속을 주시고 이 약속을 아브라함이 믿기 까지 여러 번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갈대아 우르에게 부르시고 가나안 까지 오게 하시며 바로 왕에게서 구원받은 경험과 자기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하여 소돔과 고모라 성을 공격한 연합군을 무찌른 경험들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보호자가 되시며 상급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받는 상이라는 것이 세상의 상과 다릅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의 상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함에도 아직도 천국의 상급이나 상급의 차등을 말하면서 경쟁을 시키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은혜로 얻는 것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아브라함이 여러 가지 시련과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고서는 자식을 낳지도 못하는 처지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됩니다.

 

그 약속의 내용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 땅을 차지할 것인데 이방의 객이 되어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이 괴롭힘을 받고 그 나라를 하나님께서 징벌하고 나서 큰 재물을 이끌고 나서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사백년 또는 사대 만에 돌아온다고 하신 것인데 아브라함의 후손이 들어가고 출애굽하고 하는 과정을 포함하면 약 5백 년 전에 주어진 약속을 지금 모세가 다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땅이 애굽 강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까지입니다. 나일 강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며 요단강 좌우에서 지중해 바다까지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무언가 좀 갑갑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차지할 것을 말씀하시고 친히 인도하시면서 그 기업을 얻을 때까지 인도하신다고 하시는데 그 약속을 받을 때부터 5백 년이 지나서 그 약속의 실현을 눈앞에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습니다. 광야 40년을 지나야 하고 그 약속의 땅을 다 차지하려면 천천히 하신다고 하셨는데 여호수아 때에 그 땅을 다 차지 못합니다. 여호수아 사후에 사사시대에도 그 땅을 다 차지 못합니다. 그들의 믿음 없음으로 인하여 진멸해야 할 그들과 더불어 살게 됩니다.

 

사사기 3:1-6절을 봅니다. “봉독” 가나안 원주민을 다 몰아내지 못한 이유가 그들의 믿음 없음만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남겨두신 이유가 몇 가지 더 나옵니다. 여호와의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전쟁 즉 붙여주시는 전쟁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시기 위함이며 또 모세로 하여금 그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시험하기 위하여 다 멸하지 않고 남겨두셨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과 언약하고 결혼하고 함께 어울려 살게 됩니다. 그 결과 대적들에 의하여 수많은 고생을 하게 됩니다.

 

성도에게 적이 없으면 안 됩니다. 깨어지고 넘어져야 자신이 무능한 죄인인줄 알게 됩니다. 그런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만을 의지해야 하는지를 압니다. 대적에게 패하여 보지도 않고 유혹도 받지 않는다는 사람은 아직 제대로 적수를 만나지 못하였거나 내 버려둔 사람입니다. 텔레비전 프로에 승승장구라는 것이 있지요! 승승장구하는 사람들 조심하셔야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에 승승장구한다는 사람들의 간증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날마다 깨어지고 넘어지고 부수어지는 사람은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성령이 충만한 바울사도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합니다.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합니다. 두렵고 떨린다고 합니다. 춥고 배고프다고 합니다. 임 집사님이 얼마 전에 사진을 올려놓았는데 기계공고 시절 사진인데 밑에다가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한 바울이 춥고 배고프게 살았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했느냐고요? 살 소망 까지 끊어지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잡을 만한 지푸라기 까지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약속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사사시대 약 4백년이 지나도록 약속의 땅을 다 차지하지 못합니다. 사사시대 말기에 사무엘이 왕을 세웁니다. 사울이 왕으로 세움을 입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 사울도 버림을 받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어 세우시면서 다윗의 왕위를 영원하도록 하시겠다고 언약을 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원한 마음과 또 사울의 특징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힘 있고 능력 있는 왕이 되어 대적에게서 자신을 지켜달라는 그런 왕이 아니라 아직 소년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 다윗이 왕이 되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다 정복하고 다스리게 됩니다. 열왕기 상 4:21절입니다. “솔로몬이 그 강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그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겼더라” 솔로몬은 정복전쟁을 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정복한 지역을 솔로몬이 다스리는데 그 지경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경계입니다. 이 약속의 땅을 아브라함에게 하시고 모세에게 다시 말씀하시고 다윗이 차지하기 까지 무려 천년이 걸립니다.

 

이 말씀을 들으니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은 자기 약속에 신실하셔서 천년이 되어도 반드시 자기 언약을 이루어내신다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인하여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신뢰하게 됩니까? 아니면 갑갑한 생각이 듭니까? 아마 후자가 많을 것입니다. 아니 약속을 하시면 빨리빨리 이루어주셔야지 무련 천년을 지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주시면 백년도 채 살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기다리느냐고 할 것입니다. 성질 급한 대한민국 사람들은 인내를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도 하나님 빨리 인내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언약을 천년이 되어도 반드시 이루어내심을 통하여 자기 언약에 신실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느긋하게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믿음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나의 눈에 성과물이 빨리빨리 보여야 합니다. 사업을 하여도 빨리빨리 성공해야겠다고 무리수를 둡니다. 교회를 개척하여도 빨리빨리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모세에게 다시 말씀하시면서 기업을 차지할 때까지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대로 천년 만에 약속의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만 그 경계를 유지하지만 솔로몬 사후에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북은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은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기까지 5백년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됩니까? 천년에 걸쳐 이루어진 약속이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무너졌는데 다윗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왕위는 어떻게 됩니까?

 

이때 수많은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이 땅의 나라가 아니라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임을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하였습니다. 유다가 멸망하고 다시 약 5백년이 지나서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영원한 왕이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31-33절입니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수태고지를 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에게 다윗의 왕위를 주어 영원히 다스리게 하시며 그 나라가 영원무궁하리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약속이 천년에 걸쳐 이루어진 나라가 다윗의 왕국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그림자요 모형이기에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다시 천 년 만에 아기 예수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로 시작하셔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펼쳐지는 모습이 세상의 권세 있는 모습이 아니라 겨자씨와 같고, 가루 속에 있는 누룩과 같고,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은 방식입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만 발견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이 밭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보다 더 가치 있고 영원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이미 이 땅에 도래하여 있기에 이 나라가 온 우주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그 날을 사모하면서 사는 자가 성도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연말이라고 조급해 하지 마시고 이미 이루어내신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