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24:1-8 피로 세운 언약    2010. 12. 19

 

1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2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계약을 하면 공식서류에 도장을 찍고 공증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을 체결하는 장면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시내산 앞에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기에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강림하신 시내산 앞에서 언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있는 자리도 그들의 원한 자리는 아닙니다. 10재앙을 보고, 출애굽이 일어나고, 홍해를 건너고, 구름기둥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하는 수 없이 따라온 자리입니다.

 

그러나 언약의 체결에 있어서 백성들의 동의를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강제로 조약을 맺을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 강대국이 약소국에 조약을 맺을 때에 약속국의 동의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백성들의 동의를 구합니다. 먼저 19:1-6절을 봅니다. 모세가 여호와 앞에 나가서 말씀을 듣습니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는지 너희가 보았다고 합니다. 독수리 날개로 업어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여호와께 속하였는데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며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19:7-9절을 봅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자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백성들이 동의를 합니다. 모세는 언약의 중재자가 되어서 백성들의 말을 여호와께 전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러면 나를 만날 준비를 하라고 하십니다. 그 준비가 19:10-25절까지입니다. 백성들이 준비가 되자 여호와께서 십계명을 말씀하십니다. 백성들이 너무나 두려워서 그 말씀을 모세가 대신 전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한 것이 언약서라고 하는 20장에서 23장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다 전하고서 백성들에게 다시 동의를 구합니다.

 

24:1-3절입니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70인이 여호와께로 올라가서 멀리서 경배하고 모세만 가까이 나아오게 하셔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준행하겠다고 합니다. 19장에서는 서론적인 언약의 동의를 구합니다. 이제는 구체적인 언약의 내용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다 언약에 동의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언약체결 의식을 행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미 F.T.A 협약을 위하여 양국의 대표가 만나 문서로 만들고 그것을 국회에 공개하여 동의를 얻으면 계약이 체결됩니다. 계약을 어기면 어떤 배상을 해야 하는지도 협의문서에 다 들어갑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는 장면과 비슷하지요! 그런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세상의 거래가 아닙니다. 세상의 거래는 수정도 하고 파기도 합니다. 성경의 언약은 하나님의 뜻을 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어 내시는지를 보여주시는 언약체결이라는 말입니다. 그것도 피를 뿌린다는 것은 피는 생명이니 생명을 건 언약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언약의 내용을 말씀하시고 백성들이 동의를 하였습니다. 이제 언약에 체결되었다는 비준예식을 행하여야 합니다. 그 언약비준이 이루어졌다는 예식을 두 번에 걸쳐 보겠습니다. 오늘은 피 뿌리는 예식을 보고 다음 주에는 잔치하는 장면을 보려고 합니다. 24:4절을 봅니다. 산 아래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웁니다. 제단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열두 기둥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청년들을 보내서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합니다. 속죄와 화목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소의 피를 받아서 여러 양푼에 담아서 반은 제단에 뿌립니다. 그리고 언약서를 낭독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그 언약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합니다. 모세가 그 남은 절반의 피를 백성에게 뿌립니다. 피를 뿌리면서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상징하는 제단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피를 뿌림으로 언약이 체결이 됩니다. 오늘날은 사인을 하거나 도장을 찍고 등기소에 등기를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때는 피로서 언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건 언약입니다. 모든 말씀에 대하여 세우신 언약의 피 이기에 한 말씀이라도 어기면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시무시한 언약 체결장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언약의 말씀들을 순종합니까? 순종하지 않습니까?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목숨을 걸고 한 언약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언약을 거절하면 되지 않았겠습니까? 거절할 수가 없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큰 구원을 보았습니다.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건넘과 구름기둥 불기둥을 보고 있습니다. 그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하나님의 영광이 보입니다. 그래서 언약에 동의를 하고 언약을 피로서 체결을 합니다만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거듭 거역한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에게 이런 언약을 주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말씀을 지키지 못할 줄을 아셨습니다. 모세도 알았고 여호수아도 알았습니다. 언약을 갱신할 때 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겠다고 하지만 너희가 지키지 못할 줄을 안다고 하십니다. 신명기 31:16절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어길 것을 아시면서도 율법을 주신 것은 언약을 어겼을 때에 노래로 익힌 이 말씀이 증거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말씀은 그렇게 언약을 어겨도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시 구원하여 내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멸망하게 되면 이방나라들이 자기들의 능력이 뛰어나서 이스라엘을 이겼다고 하거나 자기들의 신이 이스라엘의 신보다 뛰어나서 이겼다고 할까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비록 언약을 어겨 심판을 받아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을지라도 그곳에서 다시 구원하여 내심으로 하나님의 자기 이름,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 분이심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신명기 31장에서 32장에 상세하게 나옵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피로 언약을 세우면서 상호동의하에 언약을 체결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너희가 아무리 맹세하고 언약을 맺어도, 그것이 목숨을 것 피의 언약이라고 하여도 너희가 이루어낼 수가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 모세로 인하여 세워진 율법을 통하여 인간이 어느 정도로 죄인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구약에 다 있지만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그들이 볼 눈이 없었고 깨달을 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율법을 지켜서 자기들이 의를 소유한다고 여긴 사람들이 언약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이 언약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을 봅니다. 1절을 보시면 갈라디아 사람들을 책망합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 의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 십자가가 눈앞에 밝히 보이는데 어리석게도 꾐에 넘어간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누구의 꾐에 흔들리고 넘어가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흔들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음으로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율법이 무엇을 증거 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8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복이요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데 그 복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율법 행위로 의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아래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율법의 행위라는 것이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을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 본문의 말씀에도 이 모든 율법의 규례를 낭독하고 피를 뿌린 것은 한 말씀이라도 어기면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약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박국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지키지 못한 저주는 어떻게 됩니까? 13절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15-17절을 봅니다.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지느냐는 것입니다.

 

모세가 상호언약을 체결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이 창세기 15장에 나옵니다. 이때 언약 체결장면은 짐승을 반으로 쪼개놓고 그 사이로 언약 당사자가 함께 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쪼갠 짐승사이로 지나간 것은 하나님의 상징인 타는 횃불만 지나가고 아브라함은 지나가지 않고 구경만 합니다. 이 언약도 목숨을 건 언약입니다. 언약을 지키지 못하면 생명을 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언약을 일방적인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이 언약 후에 430년 만에 다시 세워지는 모세의 언약이 무효하게 할 수가 없고 오히려 모세 언약을 통하여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방식대로 일방적인 언약으로만 구원을 이루어 내셔야하는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 역사 속에서 처절하게 체험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역사의 고난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 사실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지혜로운 자들에게 감추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범법함을 인하여 더하여진 것입니다. 즉 죄를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인간이 죄 아래 갇혀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22절을 봅시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32절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율법을 통하여 사람들이 죄 아래 갇혔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한 긍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피로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히9:22).

 

끝으로 마태복음 26:27-28절입니다.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최후의 만찬장면입니다. 우리가 성찬식 때 이것을 기념합니다만 성찬식 때만 아니라 모든 삶의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흘리신 언약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받고 사는 사람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억나게 하시는 것도 성령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시고 이것을 믿는 것도 성령님을 보내셔서 믿게 됩니다. 이런 믿음을 받은 자는 예수님의 피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