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20:16 거짓 증거 하지 말라 2010. 8. 22

 

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말씀을 다른 번역에 보면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좀 더 넓게 보면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이웃이란 함께 애굽에서 빠져나온 경험이 있는 자들입니다. 애굽은 거짓의 세상입니다. 거짓의 권력 하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곳에서 어린 양의 피로 빠져나왔기에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 애굽이 거짓의 권력 하에 있는 것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입니다. 이것이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방의 나라들이 다 거짓의 권력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시편 114:11절입니다.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여호와의 기름 부은 받은 다윗을 죽이려 하는 자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손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은 받은 자를 대적하는 나라가 모든 이방나라입니다. 시편 2편에서도 열 왕들이 분노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은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여 그 맨 것을 끊어버리기 위하여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이방나라들이 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권세아래 놓여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사실인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도 해당됩니다. 지금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고 있는데 장관 내정자들이 어떤 거짓으로 살아왔는지 다 드러납니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장관들도 범법을 하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는 비켜나는 것 같습니까? 전에 강대범씨가 올린 글에서 사람이 하루에 거짓말을 몇 번 하는지 과학적으로 조사를 하였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몇 번을 거짓말 할까요? 흔히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고 하는데 그래봤자 하루에 세 번입니다. 그런데 그 조사에 의하면 사람이 8분에 한 번씩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 180번입니다. 거짓말을 함으로 이익이 된다면 거짓말을 하겠다는 계산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순간적으로 거짓말이 먼저 나오는 것을 다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거짓된 세상에서 구원받아 나왔다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3:1-3절을 봅니다. “봉독”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고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고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두둔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오히려 이웃에게 거짓 증언을 함으로 이웃을 해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를 보게 됩니다. 어쩌다 한 번씩 일어나는 거짓 증언이 아니라 아예 총체적으로 거짓을 좋아하는 백성이 된 것을 봅니다. 이런 거짓 증언으로 의인을 죽이는 것을 봅니다.

 

지난 수요일에 야베스의 기도를 보면서 아합과 이세벨을 예로 들었습니다. 아합이 자기 궁 앞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이 좋아서 돈을 주고 사려고 합니다. 또 다른 포도원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봇이 거절합니다. 율법에 땅을 사고팔고 할 수가 없기에 왕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것으로 근심하고 있는 왕을 보고 이세벨이 나섭니다. 나봇이 사는 성의 장로와 귀족들에게 아합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성에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높이 앉히고 불량자 두 사람이 나봇에 대하여 하나님과 왕을 모독하였다고 거짓 증언하게 하여 돌로 쳐 죽이게 합니다. 두 사람의 증언이면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라는 악한 왕과 왕비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이사야 30:8-10절입니다. “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이들이 얼마나 패역하고 거짓말 하는 자식인지 하나님께로 돌이키려고 하는 선견자들과 선지자들에게 선견하지 말고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고 합니다. 부드러운 말을 하고 거짓된 것을 보이라고 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송사합니다. 그런데 그런 송사를 듣기 싫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드러운 말을 하고 거짓된 것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다를 바가 있습니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왜 나옵니까? 지난주에 저희 숙모가 별세하여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제 동갑내기 사촌의 남편이 자기 아내가 입원하여 있으니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합니다. 스스로 자신은 잡신을 섬긴다고 하면서 결혼할 때에 장모가 교회에 나와야 된다고 하기에 나온다고 하고 결혼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일 년에 몇 번씩 교회에 나가는데 특히 연초에 나가면 목사님이 참 좋은 말을 해 주더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면 좋은 말을 해준다고 합니다. 그 좋은 말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위로하고 희망을 가지게 만들고 행복하게 살도록 해 주면 좋아합니다. 그런데 설교 때 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하면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하는 그런 설교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십계명을 살펴보았습니다만 그 계명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나왔습니까? 결국 예수님을 죽이는 일로 결론이 납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주어진 것은 인간이 죄 아래 갇혔음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거짓된 일들이 가득하였는지 예레미야 5:30-31절을 봅니다. “30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무섭고 놀라운 일이 무엇입니까?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는데 백성들이 그것을 좋아합니다. 자기의 이익을 얻으려고 재판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총체적으로 부패하였습니다. 이런 나라가 망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 6:9-15절을 봅니다. “봉독” 아무리 경책하여도 그들의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자신들에게 욕으로 들립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심판을 하십니다. 13절을 봅니다.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합니다. 여기에 거짓 선지자의 특징이 또 나옵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평강하다고 합니다. 거짓 평강을 전합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짓 증언을 함으로 이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율법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아직까지 이 율법의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오고 하면서 순간순간은 회개를 합니다. 수요일 저녁에 기도를 통하여 보았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 같은 경우에 자신과 자신의 조상들이 범죄를 하였기에 멸망하여도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이만큼 이라도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다시 범죄 하였다고 회개하니 백성들도 동참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입니다. 그 다음에 또 다시 범죄 하는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23:29-36절을 봅니다. “봉독”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선지자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면서 자기들은 조상 때에 있었다면 참 선지자를 알아보고 피를 흘리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출애굽기를 보면서 우리는 그렇게 반역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현장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기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을 보고 예수님은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하십니다. 자신들은 의롭기에 참 선지자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가만히 두겠습니까?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에서도 보았습니다. 이들이 평소에 살인하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들이 대시니 죽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구약에서 검증된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좋아하고 참된 선지자들의 말은 욕으로 듣고 그들을 죽인 사람들의 후손임이 지금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여야 하는데 증인이 없으면 죽이지 못합니다. 그것도 두 사람의 증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할 때에 증인을 찾습니다.

 

마태복음 26:59-68절입니다. “봉독”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습니다. 60절에 보시면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해야 하는데 서로 틀린 말을 하면 증언으로 채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두 증인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하루 동안에 지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이 침묵하십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답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구약에서 메시아의 모습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하는 말이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겠느냐고 합니다. 70명의 산헤드린 공회에서 공개적으로 한 말이니 다른 증인이 필요 없습니다. 재판 석에서 재판관들 앞에서 한 말입니다. 너희의 생각이 어떠하냐고 물으니 사형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고 하신 율법을 받은 자들이 참된 진리를 증거 하신 예수님을 죽입니다.

 

이어지는 69-75절을 봅니다. 예수님이 심문을 받고 있으면 제자가 나서서 변호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고 증거 하여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제대로 된 신앙고백도 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베드로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죽는 자리까지 함께 하겠다고 하고서는 배신합니다. 세 번이나 저주하며 맹세하면서 부인합니다. 이것도 거짓 증거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자기 살기 위하여 거짓 맹세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작거나 크거나 간에 나에게 이익 되는 일에 얼마나 거짓말이 술술 나옵니까?

 

이런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오셔서 사랑하시느냐고 물으십니다. 사랑한다고 장담을 하지 못합니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이 고백을 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주를 배신하지 않아서 목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배신하였기에 맡기십니다. 그러면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의 양을 먹일 때에 무엇을 증언 하겠습니까? 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죽는 자리에까지 함께 갔다는 것을 증거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주를 배신하고 맹세하고 저주하면서 부인하였는데 예수님이 다시 나를 찾아주셔서 용서하시고 사랑하셨다는 것만 증거 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1:18-19절입니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이란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말을 자기들이 지킬 수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거짓 증거로 점철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거짓 증거로 죽이는 일을 행한 것이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입니다. 여기에서 구속을 받았다는 것은 어떤 인간도 자기의 행위로 구속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없어질 것이란 썩어질 것입니다. 없어지고 썩어질 것이 아니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만 구속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 하는 것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