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0:1-3 사탄의 결박 2010. 2. 28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필요하십니까? 금요일 서점에 갔더니 어떤 아주머니와 아들이 성경을 고르고 있는데 아들이 기분이 상해있는 것입니다. 제가 책을 계산하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가 목사님이세요? 그러는 것입니다. 자기 남편이 새신자인데 어느 성경이 좋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적당한 것을 골라주고는 아들이 마음에 드는 성경이 없나봅니다. 그랬더니 이 아들이 하는 말이 ‘성경 필요 없어요!’ 화를 내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필요 없다는 이 아들의 말이 솔직한 말이지 않습니까? 목사 앞에서 그 말을 들은 어머니가 성경을 들고서 아이를 패는 시늉을 하면서 성경이 얼마나 큰 무기인지 아느냐고 하였습니다. 아마 아주머니는 성경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큰 힘도 되고 무기도 되는 것으로 여겼는지 남편에게도 성경을 사 주고 아들에게도 성경을 사주려고 한 것입니다. 이번에 성경을 새롭게 사면서 좀 아까운 마음은 없었습니까? 그대로 쓰면 될 텐데 괜히 바꾸어가지고 돈만 몇 만원씩 더 들어가고 식구가 많으면 제법 큰돈이 들어가는데 말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립니다. 시찰 회 모임을 돌아가면서 하는데 이번에 간 교회는 나환자들이 정착한 마을입니다. 전에 고속도로가 나면서 보상을 받았는데 이번에 또 교회당 쪽으로 길이 난다고 하니 다른 교회로 떠났던 사람들까지 돌아온다고 합니다. 교회가 교회유지재단으로 등록이 되어있지 않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상이 나오면 각자 나누어가지겠다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그대로 유지해야한다는 사람은 아주 적은 소수라고 합니다. 다른 교회들도 많으니 그런 곳에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도 걱정이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인이나 목사나 간에 무엇에 더 관심이 잇는 것입니까? 자본주의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힘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나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투자할 가치를 느끼는 것으로 보는 것이 우리들의 타락한 본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20:4절 말씀에 보면 천년 왕국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천년 왕국에 참여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4절에서 보니 예수님을 증거 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자라고 합니다.

 

성경이 필요 없다고 고함을 지르는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필요로 하든지 아니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내시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종 심판이란 요한계시록 19:15절에서 나온 것처럼 백마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으로 심판을 하는데 이 검이 바로 말씀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말씀에서도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하는데 검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두 가지 예를 든 것도 사람들의 관심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보시고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은 말씀에 의하여 심판을 당한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나왔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어떤 부자관원이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계명을 아나니 그 계명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 관원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네게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리고 나서 나를 따르라고 하시자 그 부자 관원은 큰 부자이기에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큰 부자가 아니라도 이런 말씀을 순종할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이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합니다. 이러자 제자들이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하였을 때에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영생이니 구원이니 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사람이 할 수 없는가 하면 이미 어떤 세력에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시는데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 1-3절을 봅니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습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입니다. 실제적인 짐승이 아닌 용이 옛 뱀이라고 하는 것은 곧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그 뱀을 말하는 것입니다. 뱀의 모습으로 왔지만 그 배후는 마귀요 사탄인 것입니다. 마귀와 사탄을 결박하며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을 쳐서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일 것이라고 합니다.

 

2절에서 결박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결박을 했다는 것은 영원한 심판에 처하기 전의 상태를 말합니다. 3절에 보면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지만 이것은 전에 결박당하기 전에 행하던 짓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결박이라는 것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가 하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진 것이며(눅10:18) 더 구체적인 승리는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를 하여서 사탄이 결정적으로 패배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2:29절입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귀신이 들려 눈이 멀고 말도 못하는 자를 고쳐주셨을 때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귀신의 힘을 입어서 고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서로 분쟁하는 나라는 망한다고 하시면서 예수님의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내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은 강한 자가 자기 집의 세간을 지키고 있는데 그 세간을 강탈하여 내어오려면 더 강한 자가 와서 그 강한 자를 결박하여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한 자란 마귀 사탄입니다. 더 강한 자는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세간은 누구입니까? 죄와 사망의 권세에 묶여 꼼짝하지 못하는 인간의 신세입니다. 냉장고와 세탁기기가 스스로 집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누가 들여다 놓아야 하고 또 들어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강한 자가 와서 처음의 강한 자를 결박하여야만 끄집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집의 가구들로 말하였지만 바로 죄에 빠진 인간의 신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누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누가 마귀와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탈출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탈출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 불가능한 것인가 하면 사탄이 제공하는 세계가 너무나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벨론의 영광인 것입니다. 바벨론의 영광을 버려두고 왜 이런 세상에서 탈출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노아 방주 때처럼 왜 방주에 타야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처럼 그 중에 특히 롯의 사위들처럼 말씀을 들어도 농담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사람의 믿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영광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다 안개와 그림자와 같은 세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만 남기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 사탄을 결박하고 끄집어내어진 사람들입니다.

 

스가랴 3:1-5절을 봅니다. “봉독”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 앞에 섰는데 그 모습이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백성들의 모습은 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참소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더러운 자들이니 심판을 당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답변은 오히려 사탄을 책망하시면서 내가 택한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내개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고 하시기에 정결한 관도 씌워달라고 하니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스가랴서의 말씀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 재건을 하는 중에 받은 말씀입니다만 그렇게 지어지는 성전이 아니라 장차 나타날 새로운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기 백성들의 죄가 사하여지고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히시는 것을 미리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와 사탄을 결박하고 그 속에서 죄로 더렵혀진 자기 백성을 끄집어 내셔서 정결한 신부로 만드시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천년동안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년이란 문자적인 시간의 개념으로 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천년을 좌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현재의 인간은 백년입니다. 창세기에서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천년을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손 쓸 수 없는 시간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시는 것이 바로 사탄을 결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천년기간도 사람들의 이해할 수 있는 시간관념으로 해석을 하려고 하니 여러 가지 설들만 나오는 것입니다.

 

잠간만 천년설을 이야기하자면 천년 왕국이 예수님의 재림전이냐 후냐의 문제로 전 천년설과 후 천년설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이 재림하고 천년 왕국이이루어진다는 것이 전 천년설인데 여기서 세대주의와 역사적 전 천년설로 나누어집니다. 한국의 부수적인 해석자들은 대부분 이 설입니다. 후 천년설은 이 세상이 복음이 증거 되어 복음의 황금기인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면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설은 지금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설이 무 천년설입니다. 무 천년이라는 말이 천년이라는 기간을 역사적인 시간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결박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하시고 재림하실 때 까지 자기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기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은 어떤 기간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사탄이 결박당한 상태입니다. 강한 자를 더 강한 자가 결박하여 놓고 그 집의 세간을 끄집어 내 듯이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셔서 자기 백성을 끄집어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는 자신이 어디에서 빠져나왔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스가랴서의 말씀처럼 자신이 타는 불에서 끄집어내어진 불에 그슬린 막대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대로 두었다면 그냥 불살라졌을 인생입니다. 그런데 끄집어내어졌으니 이제부터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이루어져야만 하는 삶입니다. 사탄이 결박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아니할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처음 받는 성도들은 이 말씀이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지금 비록 그들이 이 세상에서 끄집어내어져서 하나님의 나라에 소속이 되었지만 온갖 고난이 닥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과연 승리하신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사탄이 결박당하였기에 더 이상 그들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참소를 하여도 오히려 사탄을 책망하시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어떤 세상의 환난을 당할 지라도 사탄이 결박당하였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는 것으로 인하여 성도는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