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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1:1-5 새 예루살렘 2010. 3. 28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1절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 바다는 없어져야 할 만큼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전하여야 할지를 생각하는 중에 이런 뉴스를 보았습니다. 밀양 하남의 낙동강 둔치에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삽니다. 그런데 4대강 살리기를 한다고 불도저와 포클레인으로 갈아엎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밀양시에 따르면 2004년까지 농민들에게 저가로 강제수용한 곳입니다. 이때 저가로 매입하면서 농사는 계속 짓도록 하겠다고 하였답니다. 그러나 작년에 4대강 정비 사업을 위하여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하였는데도 농사를 지었기에 보상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화가 나서 농기구들을 들고서 집단으로 항의를 하여 공사를 하러 온 사람들에게 상해를 가하고 또 죽여 버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정부에서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범죄자를 잡아서 벌을 줄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니다. 한 주인이 포도원을 다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떠났습니다. 때가 되어 세를 받기 위하여 종들을 보냈는데 세를 주기는커녕 때리고 죽이고 쫒아버린 것입니다. 두 번 세 번 해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인의 아들을 보냅니다. 그러면 공경할 줄 알았지요! 그런데 그 아들을 마저 죽여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일임을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된다는 예언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창세기 3장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의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는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나는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환경에 적응하는 척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속으로는 나는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하늘과 땅과 바다가 다 하나님의 것인데 인간들이 자기들의 것인 양 무단 점유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밀양이라는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온 세계의 문제입니다. 국가들마다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입니까?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 운동장에서 줄을 그어놓고서 병뚜껑으로 땅 따먹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놀이하면서 땅을 많이 확보하면 이기는데 그런데 그렇게 이겨서 차지한 땅이 과연 자기 땅이 됩니까? 그것은 학교운동장입니다. 수업종만 치면 발로 썩썩 지워버리고 교실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땅 확보를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이 땅이 누구 것입니까?

 

레위기 25:23절입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2)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또는 소작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 토지법입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못하게 합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며 너희는 소작인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토지경제 정의를 실현하자는 모임도 있습니다. 토지를 개인이 독점하게 됨으로 오는 피해가 온 세상에 가득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름으로 등기하여 놓고서 자기 땅이라고 합니다.

 

사람들마다 자기가 주인이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진짜 주인이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라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동안 우리가 주인이 아닌데 주인으로 살아왔으니 회개하면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있는 것을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도 믿는 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는 다 우상 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에도 우상숭배가 가득하고 이방나라도 우상숭배가 가득한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은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특징을 요한계시록 20장까지 보면서 다 살펴보았습니다. 바벨론을 중심으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사치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이 순식간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옛 하늘과 옛 땅에 속한 자들은 탄식하며 통곡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 속한 자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 옛 하늘과 옛 땅에 속한 사람이라면 이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두려울 것입니다. 세상만이 아니라 내 가정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는 것도 두려운 것입니다. 아프고 병들고 늙고 죽는 것이 다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8절을 보시면 두려워하는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들은 둘째 사망에 참여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반면에 새 하늘과 새 땅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어떤 흉한 소식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성도란 이미 세상에 어떻게 될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말씀을 믿는다면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2절을 봅니다. 또 내가 보니,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고나서 또 보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이란 지상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새로운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이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새 예루살렘이 건물이겠습니까? 황금보석으로 꾸민 성을 말하는 것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의 구원받은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9절을 봅니다. 일곱 대접을 가진 한 천사가 어린양의 신부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성령으로 요한을 데라고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인 것입니다. 어린 양이 건물로 된 성을 데리고 살겠습니까? 그러므로 건물이 아니라 이어서 나오는 말씀대로 그 문은 열두지파의 문이며 그 성곽의 기초 석은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인 것입니다. 성도들이 어린 양의 신부이기에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니 천국에 가서 황금보석 꾸민 집에 산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 오후에 요한계시록 성경퀴즈를 하면서 일곱 교회의 모든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생명의 면류관, 흰 돌, 만나 여러 가지를 말하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말할 때에 내가 영생이라는 티켓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구원조차 자기의 소유물 관리하듯이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이란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26절입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하갈은 땅의 예루살렘을 말하지만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2:22-24절입니다.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새 언약인 예수님의 피로 마련되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3절을 봅니다.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납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하여 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15:13절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구속하신 백성을 주의 힘으로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 거룩한 처소가 어디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일차적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과연 주의 인자와 주의 힘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광야 40년 동안 처절하게 절감합니다. 10번이나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진멸당하여 마땅하지만 자기 이름으로 언약하신 주의 이름 때문에 이들을 가나안에 들여놓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17-18절입니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 시키신 이유가 주의 처소를 삼기위한 것이 최종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도 이 세상에서 우리를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의 피로 구원하신 것은 내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처소삼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1-22절을 봅니다. “봉독” 우리는 이방인으로 아무른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안에서 예수의 피로 소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 담을 허시고 한 새 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심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퉁이 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게 위하여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사는 동산에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한 것이 죄가 됩니다. 그러면 구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우리의 소유물이나 티켓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과 함께 살지 않고서 나중에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예수님과 영광중의 만나 함께 살 것을 고대하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처소를 만드시는 일에 실패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처소를 만드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셨고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예수님의 피로 한 새 사람을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오늘도 복음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새 사람이 된 사람들은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너와 나의 차별이 없습니다. 주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처소를 만들어내신 결과가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4절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처소삼아 함께 사시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우는 자들입니다. 눈물을 강물처럼 쏟아야 하는 사람이며 마음을 물 붙듯이 주님 앞에 쏟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자녀를 위하여 울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믿음 때문에 고난의 눈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눈물을 다 닦아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는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것입니다.

 

5절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말씀하시는 것을 기록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고 합니다. 그 말씀은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이 새로워지는 것은 갱신설이냐 새 창조설이냐 무수한 말들이 있지만 만물이 새로워지는 오직 하나님의 인자와 하나님의 힘으로만 조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 이런 자들은 더 이상 자기에게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어린 양의 피에만 머물게 됩니다. 이들이 새 예루살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