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방송프로그램 에러로 녹화못하고 녹음도5분후부터함

요한계시록 21:9-21 어린 양의 아내 2010. 4. 11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오늘 본문은 21:2절을 상세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21:2절부터8절을 21:9-22:19절까지 반복하여 상세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린 양의 아내에 대한 것입니다. 2절에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합니다. 이 새 예루살렘이 황금보석 꾸민 건물로 된 성읍이 아니라 성도라는 것을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구약으로 하면 선택받은 이스라엘이며 신약으로 하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의 신부란 구약과 신약의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9절입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요한에게 말합니다. 일곱 대접은 마지막 재앙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재앙이 끝나고 어린 양의 신부가 찬란하게 등장하는 것입니다. 재앙과 정 반대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 어린양의 신부를 보여주기 위하여 10절에 보시면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구약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당장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것입니다.

 

에스겔 40:1-2절입니다. “1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중에 여호와의 권능에 이끌려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본 것이 에스겔 40장에서 48장까지 나오는 새로운 성전입니다.

 

그러면 에스겔을 통하여 왜 새로운 성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까? 에스겔 8:16-17절입니다. “16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17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또 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성전 안에 우상이 가득합니다. 그 성전에서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에게 경배하고 있으니 이런 성전을 파괴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성전을 에스겔이 보았습니다. 그 내용들이 요한계시록에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이상 중에 본 내용들 중에 성이 네 방향에 세문이 있고 그 성안의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내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계시록에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에스겔 역시 건물 형태로 묘사를 하지만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시며 그로 인하여 생명수 강이 흘러나오는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 생명수가 바로 예수님임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좀 복잡한 느낌이 들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성막과 성전과 함께 연결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언약을 받고 언약궤를 모시는 곳이 성막의 지성소입니다. 모세로 하여금 성막의 설계도를 주시면서 만들게 하셨는데 성막이 완성되어 봉헌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임하였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하였지만 그 손에 피를 흘렸기에 다윗은 준비만 하고 솔로몬이 건물로 된 성전을 지었습니다. 성전을 봉헌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습니다.

 

성막이나 성전의 핵심은 지성소에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만 있습니다. 이 언약궤에 일 년에 한번 대 속죄일에 대 제사장이 양의 피를 들고 일곱 번을 뿌립니다. 그 언약궤의 뚜껑 이름이 속죄소입니다. 루터는 시은 좌라고 하였습니다. 죄가 속하여지고 은혜가 베풀어지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 제사장이 이 지성소에 나아갈 때에 어떤 복장을 하고 가는가 하면 제사장의 복장을 하고 갑니다.

 

출애굽기 28:9-12절입니다. “9 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10 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11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12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에봇 위의 어깨받이에 호마노 둘을 금 테에 물려 붙이는데 한 쪽에 이스라엘 지파 이름 여섯을 또 한 쪽에 여섯을 나이순대로 새기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8:15-21절을 이어서 봅니다.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의 이름을 두 곳에 새기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각 지파별 한 개의 보석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 보석의 이름들이 홍보석, 황옥, 녹주옥,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 호박, 백마노, 자수정, 녹보석, 호마노, 벽옥입니다. 지파별 이름을 새긴 보석을 어깨에도 달고 가슴에도 붙여서 지성소로 양의 피를 들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여 들어가서 속죄를 받는 것입니다. 이런 보석의 이름들이 거의 비슷하게 오늘 읽은 본문에도 나오는 것입니다.

 

계시록 20:11절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고 합니다. 성막과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이 완성되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그 성이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신 모습과 비교하여 볼 수가 있습니다. 계시록 4:2-3절을 보시면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새 예루살렘의 모양과 어울립니다.

 

12-13절입니다. 성문이 열 두 개입니다. 21절입니다. 그 열두 문이 열두 진주로 되어있고 각 문 마다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일차적인 대상은 이스라엘입니다. 마15:24절입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가나안 여인이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하는 간청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주인의 떡을 개들에게 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옳다고 하면서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떡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믿음을 크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방인이 여기에 포함이 되는 것입니까? 로마서 11:11-12절을 봅니다.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유대인들이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었다는 것은 그 자리에 이방인이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돌아오면 그 충만함이 어떻겠습니까?

 

에베소서 2:11-18절을 봅니다. “봉독” 에베소서를 구역공부시간에 다 하였지요! 바로 앞부분에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가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이방인이 어떻게 구원받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과 아무른 상관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십자가로 한 새사람을 만들어 하나님과 하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열두 사도들이 열두 기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 21:14절을 봅니다.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열두 사도가 누구입니까? 가룟 유다는 배신하여 잘렸습니다. 그 자리에 사도들이 제비를 뽑아서 맛디아를 세웁니다. 그러나 맛디아는 이름만 사도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사역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실질적인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바울로 보아야 합니다. 바울도 유대인이지만 그는 이방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을 건물의 형식으로 말하지만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2라는 숫자가 새 예루살렘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15-17절입니다.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다고 합니다. 네모반듯한 곳이 성전의 지성소입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온 우주를 지성소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크기가 일만 이천 스다디온입니다.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란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2만4천 킬로미터입니다. 그런데 그런 숫자로 환산하기 보다는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란 12곱하기 1000입니다. 선택한 열두 지파 또는 열두 사도에 곱하기 천이라는 것입니다. 천이란 완전하고 충만함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배나 되게 하소서! 그런 말을 할 때에 숫자상의 천배가 아니라 완성과 충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성소가 완전하고 충만하게 되는 것이 새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곽도 144규빗이란 12곱하기 12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보혈(寶血)이라고 합니다. 보배로운 피가 뿌려진 사람은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 보배를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4:7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보배로운 피가 뿌려져서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되는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안다고 합니다. 자기 능력으로 스스로 구원을 받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앞의 말씀을 보시면 이 세상의 신이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보혈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의 보석에만 관심이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 5.6캐럿 블루다이아몬드가 72억에 낙찰이 되었다고 하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홍콩의 소더비경매장에서 이루어진 낙찰이라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누가 그런 반지를 끼고 사는가 하면서 부러움이 드는 것이 여성분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두움에 빛이 있으라고 하신 그 창조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복음의 광채를 비추어주신 것입니다. 그 복음이 광채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알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그릇이지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면 하나님의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보배가 있는 사람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잠시 당하는 환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세리와 창기와 강도도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나라의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어린 양의 아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