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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6:8-11 회개치 아니하더라! 2009. 12. 6

8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1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것이 신약의 첫 설교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세례요한이 외친 선포의 내용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왜 회개를 촉구하는가 하면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면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회개하라고 외치는 소리를 시큰둥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누구이겠습니까?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며 율법을 지킨다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입니다. 이들이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곳에 왔습니다. 이들이 온 것은 회개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도대체 어떤 사람이 회개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지 보려고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그들을 보고 외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임박한 진노가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자 그들이 속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세례요한은 너희가 속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아니하면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일은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이 하시는데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시지만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을 알곡으로 곡간에 들이지만 불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이렇게 선포하던 세례요한은 헤롯을 향하여서도 거침없이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헤롯의 아내와 그 딸의 요청으로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첫 설교를 하신 것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17절입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요한과 다른 것은 예수님께서 천국을 선포하신 분이시지만 예수님 자신이 천국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4-15절을 봅니다.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한 것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기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복음의 내용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바라는 메시아의 상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예수는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할 때에 어떻게 전합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현실로 보면서 예수 믿으라고 전하십니까? 소돔과 고모라성에 떨어지는 유황불을 천사는 보는데 사람들은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천사가 롯의 가족을 손을 잡고 끄집어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본 롯의 처는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엉터리 예수를 믿는 것이 됩니다.

왜 이 땅에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이 쏟아져야 하는 것입니까?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대로 이미 창세기 4장부터 이 땅에는 의로운 자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의 대접을 쏟아 부어야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다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의 대접을 쏟아 붇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의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공의로우신 심판을 집행하시기 전에 먼저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유대인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이방인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먼저 유대인들에게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어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런데 회개를 전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회개를 선포하지 않고 축복과 평화를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환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회개를 요청하는 선지자들을 핍박받고 죽이는 자들은 평소에 죄인이라고 여기는 자들이 아니라 평소에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할례도 행하고 또한 모세의 율법도 지키니 자신들은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회개하라는 것이 남의 말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런 회개란 유대인 가운데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죄인이나 이방인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일순위로 들어가는 자들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에게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회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요한복음 8:31-59절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이라고 하는데도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남의 종의 된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하게 된다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답변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아니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를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죄악의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러나 다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일부 구원을 하십니다. 그들이 긍휼의 그릇입니다.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를 속죄하여야 됩니다. 그 속죄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담당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 믿고 자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서 21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보면 시기, 자랑, 교만, 수군수군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늘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증세가 한 가지만 나와도 그것은 죄의 종입니다. 그래서 사형에 해당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짓을 하고 서로 옳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죄의 종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죄의 열매가 나오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자기가 주인이고 신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죄의 종입니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로마서 1: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도 회개하면 용서해주시는데 나는 회개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회개가 무엇입니까? 회개(悔改)란 말 그대로 하면 뉘우치고 고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회(悔)는 잘 하는데 개(改)가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뉘우친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회개입니까?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행사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8장에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언제 예수님을 보고서 기뻐한 것입니까? 자기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그 순간으로 봅니다. 약속의 자녀로 태어난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그 희생의 현장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본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것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아들의 희생으로 인하여 자신이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예수님만을 믿는 것이 회개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천지 만물을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살게 된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내 좋으라고 다니는 것입니다. 복음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 결혼을 왜 합니까? 내 좋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내 마음에 안 들고 아내가 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이혼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주례를 할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이름으로 약속하고 성경에 손을 얹고 기도한 것도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거저 결혼의 한 예식에 불과할 뿐 그것이 사실로 믿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날 괴롭히는 자는 사람이든 신이든 다 싫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렇게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 결과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밀어붙여 죽여 버린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께서 진노의 대접을 쏟아부어버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시고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심판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노의 대접을 쏟아 붇는 것입니다.

오늘본문 16:8-10절을 봅니다. 네 번째 대접을 해에 쏟아부어버립니다. 그러나 해가 권세를 받아 사람들을 불로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워지는 것입니다. 2012년 영화나 그 이전에 나온 지구의 대 재앙을 다루는 영화들을 보면 바로 이 말씀을 근거로 다룹니다. 태양이 이상 폭발을 일으켜 그 열이 지구를 데워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지구 온난화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에너지로 인하여 그렇게 된다고 하며 녹색성장을 말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탐욕을 멈출 수가 없기에 가만히 두어도 이 세상은 재앙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해에다가 대접을 쏟아버리나 해가 사람들을 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해가 없으면 사람들이 하루도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평생에 이런 해를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시편 136:8절입니다.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러나 그 인자하심을 거두실 때가 된 것입니다. 이 땅이 있을 동안만 밤과 낮, 심고 거둠, 사시사철이 있는 것임을 노아 언약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는 그 해에 진노의 대접을 쏟으므로 사람들이 불에 태워지는데도 사람들이 회개를 하지 않고 오히려 해에게 그런 권세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앙을 당하면서도 회개가 나오지 않는 것이 심판인 것입니다.

10-11절입니다. 다섯째가 짐승의 보좌에 대접을 쏟아버립니다. 짐승의 보좌란 이 땅의 모든 권세들입니다. 이런 짐승의 보좌에 심판을 행하시니 그 나라가 어두워지고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뭅니다. 두바이 사태를 보실 것입니다. 사막에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도로를 만들고 강을 만들고 고층 빌딩을 지었습니다. 빛나는 도시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도시가 망하게 되면 어두운 것입니다. 그 도시에 소망을 두고 산 사람들이 자기 혀를 깨물게 될 것입니다. 두바이만이 아니라 이 세상 자체가 짐승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 죄를 알고 회개하는 것은 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회개가 일어나지 않는 다면 그것이 지금 진노의 자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양심에 화인을 맞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였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회개하라는 소식이 전해지는 지금은 회개할 때입니다. 회개를 할 수 없는 때가 곧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회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참으로 복입니다.

사도행전 17:30절입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사도행전 20:21절입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 한 것이라” 하나님께 대한 회개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입니다. 로마서 2:4-5절입니다. “봉독” 오래 참고 계시는 데도 회개하지 않는 것은 진노를 쌓고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히브리서 6:4-6절을 봅니다. “봉독” 회개란 예수님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들이 과연 예수님만 믿습니까?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인데 이들은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회개가 안 된다는 것은 교회오래 다니면서 여러 가지 은사를 맛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는 짓입니다. 우리는 어느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