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20~27 강한 자를 결박함 2018. 11. 18

 

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지난주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내용을 보았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신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고 전도도 하게 하시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도 하게 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이 세상의 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귀신 들린 자들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 자기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바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공중 권세 잡은 자 아래서 살아간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이 죄와 사망의 왕이라는 그 권세아래 붙잡혀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죄와 사망의 권세를 파하시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사탄을 멸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3:11절입니다.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마가복음 5:7절입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귀신들은 자기들의 운명이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멸망할 것을 압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탄의 속임에 넘어가서 예수님을 몰라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 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 받기위하여 몰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도 쫓아 내셨다는 소문도 퍼진 것입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친족들이 그를 붙들러 왔습니다. 예수님의 친족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는 평범하게 사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전도하러 다니시고 병자를 고쳐주신다는 소문이 들리니 친족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여 잡으러 왔습니다.

 

마가복음 3:31~35절입니다.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3)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3)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3)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3)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예수님의 친척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붙들러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동생들도 함께 왔습니다. 친척들이 예수를 미쳤다고 왔으니 마리아와 동생들도 걱정이 되어서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족이 찾아 왔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들이냐고 하시면서 자기 둘레에 있는 자들을 향하여 내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내 어미라고 합니다. 가족들이 예수님의 이런 언행을 보고서 정말로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친척과 가족만이 아닙니다.

 

본문 22절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서도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서기관들이 예수가 어떤 자인지 검정하려고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진단을 한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성경 전문가들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고 실천하고 가르치는 자들이 성경이 증거 하는 메시아가 예수님임을 믿지 않고 귀신의 왕의 힘을 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귀신에 붙들린 모습입니다.

 

본문 23~26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을 불러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고 하십니다.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듯이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한다고 하십니다.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그들이 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은 사탄의 일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28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평행본문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이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육신과 공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펼쳐내고 있는데 이 모습을 귀신의 힘으로 보는 것 자체가 정말로 귀신 들린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본문 27절입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강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강탈하려고 한다면 그 강한 자를 결박하여야 그 집의 세간을 강탈해 낸다고 하십니다. 이 비유의 강한 자란 사탄이며 사탄을 결박하여야 사탄에게 붙들려 있는 자들을 구원하여 낼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그 강한 자를 결박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5:17~19절입니다.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오늘 본문을 바울사도가 해석한 것과 같습니다. 죄와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곳에서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곳으로 옮기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강한 자가 세간을 지키듯이 강한 사탄이 사람들을 붙들고 있으니 더 강한 자가 와서 사탄을 결박한다는 말씀을 가지고 자꾸만 이 세상의 힘으로 생각을 합니다. 전도를 하는 것도 세상의 잘 됨이나 힘으로 전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강한 자를 결박할 뿐 아니라 강한 자를 이기시고 그 강한 자에게 붙들려 있는 자들을 구원하셔서 생명이 왕 노릇하는 곳으로 옮기시는 일을 예수님께서 무엇으로 하십니까?

 

히브리서 2:9~10절입니다.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2)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구약의 시편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사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었다는 것은 죽음의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천사는 죽지 않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으신 것입니다. 그 죽으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맛볼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을 맛보면 그것이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으신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기에 죽음을 실제로 맛을 보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기에 죄와 사망에서,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죽어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을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셨다는 것은 자기 백성들을 죽음의 고난으로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3~18절입니다.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4)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의 혈과 육을 지니신 이유는 죽기 위함입니다. 그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는 것이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살고 있습니다.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죽음이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도 죽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사회적인 죽음도 있습니다. 인격이 모독을 받아도 인격살인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런 저런 죽음의 종노릇 하고 있지만 그 죽음의 종노릇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강한 자가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강한 자를 이기시는 길이 오직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기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7~18절입니다.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사탄이 강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못 박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누가 빼앗아 갈 수가 있겠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고 얻을 권세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미 죄와 사망으로 버림받은 우리들과 연합하기 위한 죽음입니다. 죽어 있는 자를 살리시려면 생명이신 분이 스스로 자신을 죽은 우리에게로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 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버리시는 것이 십자가의 살 찢으심과 피 흘리심입니다.

 

누가복음 22:19~20절입니다.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떡이 자신을 살이라고 하시고 잔을 자신의 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피가 새 언약의 피라고 하십니다. 새 언약이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완성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 곧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들이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이것은 성찬의 의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영원히 예수님을 먹고 마셔야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이십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혈과 육에 속하여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주심으로 우리와 연합되어 함께 살리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23~26절입니다.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1)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바울사도는 최후의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주께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기 보다는 예수님의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떡이 예수님의 몸이라고 합니다. 잔을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고 증거 하면서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찬식만이 아니라 성도가 주님의 말씀을 나눌 때 마다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강한 자를 결박하고 그 강한 자에게 잡힌 우리를 해방시켜 의와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