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으로 설교10분후부터 녹화.녹음되엇습니다. 이해바랍니다]

      [음성 설교]

출애굽기 28:31-43 여호와께 성결 2011. 3. 20

 

31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 32 두 어깨 사이에 머리 들어갈 구멍을 내고 그 주위에 갑옷 깃 같이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고 33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석류를 수놓고 금방울을 간격을 두어 달되 34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 방울, 한 석류, 한 금 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35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올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36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37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 38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39 너는 가는 베 실로 반포 속옷을 짜고 가는 베 실로 관을 만들고 띠를 수놓아 만들지니라 40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41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 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42 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속바지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두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 43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짊어진 채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그의 후손이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자칫 잘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직분이었습니다. 분향을 하는 불을 잘 못 담았다가 아론의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35절과 43절을 보시면 이렇게 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잘못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얼마나 거룩하신 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거룩하신 분 앞에 나아가는 것은 특별한 제사장의 복장을 갖추고서 나아가야 하는데 그 조차도 죽임을 당할 수 있기에 주의하라는 말씀이 주어집니다.

 

출애굽기 30:17-21절도 봅니다. “봉독” 성막 마당에 물두멍이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게 합니다.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데도 물로 씻어야 죽기를 면할 것이라고 합니다. 레위기 16:2, 12-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12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13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씻어야 하고 향으로 가려야 죽지 아니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거룩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제사를 제대로 드렸다면 온 백성들은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제사를 받아 주셨는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제사를 다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알 수가 있지만 그 전에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의 옷 끝에 금방울을 달아서 소리가 나게 합니다. 31-34절입니다. 에봇 받침 겉옷을 어떻게 만들지를 말씀하시면서 그 에봇의 끝에 석류를 수놓게 하고 그 석류 사이에 금방울을 달게 합니다. 이런 금방울을 왜 달게 합니까?

 

35절을 보시면 성소에 들어가고 나올 때에 이 소리가 들리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대 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하고 속죄의 피를 뿌릴 때에 금방울 소리가 나면 지금 제사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신호가 됩니다. 그런데 아무 소리가 나지 않으면 죽임 당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제사장의 발에 줄을 묶고 들어갔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만 성경에는 그런 말은 없습니다. 대 제사장이 여호와께 들어가는 일이 자칫 하면 죽임을 당할 정도로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속죄를 마치고 나오면 백성들은 환호를 지를 것입니다.

 

36-38절을 봅니다. “봉독” 제사가 온전히 드려지기 위하여 제물도 흠이 없고 온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드리는 제물에 흠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온전한 제물이 됩니까?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방법으로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기고 제사장의 관 전면에 매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어야 그 성물을 여호와께 받으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제물을 가져온다고 다 받아지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이마에 금으로 된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거룩하고 성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39-48절에서는 베 실로 속옷을 만들게 합니다. 베로 속바지를 만들어 하체를 가리게 합니다. 하체가 보이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 가나안 종교와 구별하기 위함이라고도 합니다. 가나안은 그들의 제의가 성적인 제의가 있기에 금하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20:2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이방의 제사란 사람의 생식기가 숭배의 대상이 됩니다. 세계 곳곳에서 남근석이 숭배가 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생산의 능력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식을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려야 합니다. 생식의 능력이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합니다.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인간의 혈통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기에 아브라함이 자기의 혈육의 능력으로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약속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으시고 할례를 행하게 하신 후에 낳은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인정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사람의 생식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4:14-17절입니다.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들여진 자는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부정하기에 도저히 용납되지 못함을 알고 제사장의 처분에 맡깁니다.

 

지금 우리가 구약시대라면 대 제사장이 지성소에서 분향을 하고 피를 뿌리고 있다면 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금방울 소리가 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성소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다 행하고 밖으로 무사히 나오면 밖에 있던 백성들이 어떻게 하였을까요? 감사와 찬양을 올릴 것입니다. 제사장이 제대로 제사를 드림으로 백성들이 다 용납이 된 것이기에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받아 주심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모습을 열왕기상 8장에서 봅니다. 10-11절입니다.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성전이 완공되고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지성소에 두고 나옵니다. 이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셨다는 표가 됩니다. 이때 솔로몬이 기도하고 나서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성전을 지은 솔로몬의 말이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용납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하나님이 계시겠느냐고 합니다. 다만 언약하신 대로 이 성전을 향하여 여호와께서 보아달라고 합니다. 성전에는 언약궤가 있고 피 흘림의 제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를 지어 여러 가지 벌을 받을 때에 성전에서 기도하든지 아니면 포로로 잡혀갔을 지라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 기도 후에 솔로몬이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54-61절은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이 중에 56절을 보시면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은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하였으니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세상에서 여호와만 참 하나님이시니 그만 섬기라고 합니다.

 

러자 백성들이 솔로몬을 축복합니다. 열왕기상 8:66절입니다.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여 주신다는 것에 대하여 왕과 백성들이 다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진멸당해야 마땅한 자들임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한 일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행한 일을 보면 압니다. 그러함에도 진멸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제사로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무사히 제사를 마치고 나왔다면 백성들은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자신들을 용납하여 주신 주께 드릴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은 구약의 제사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주님께 받아들여졌다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가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예배 시간은 그야말로 감사와 감격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셨다는 기쁨은 자신들의 노력으로는 결단코 받아들여지지 않는 죄인임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기쁨이 됩니다. 자신의 정성과 열심을 바쳐서 무언가 받아내겠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받아주심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정성과 열심을 바쳤는데 신이 나에게 당연히 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감사와 기쁨이 아니라 거래가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할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제사장이 제사를 무사히 마치고 나왔을 때에 백성들이 환호하고 기뻐하는 그런 감사와 찬양이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구약의 제사와 같은 의식이나 제물을 바쳐야하는 제사로 봅니까?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위하여 속죄할 제사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7:22-28절을 봅니다. “봉독” 구약의 제사장들은 항상 있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셔서 영원히 계십니다. 구약의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고 무사히 나오면 기쁨과 찬송이 나옵니다.

 

그러나 새 언약에서는 그런 제사장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기에 그 직분이 갈리지 않습니다. 25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우리가 우리의 힘과 정성과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힘입어 나아갑니다. 예수님을 이런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항상 살아 계서서 그들의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6-28절을 계속하여 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고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십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여호와께 성결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10:1-22절까지도 봅니다. “봉독” 단번에 영원히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율법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대제사장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성소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영원한 속죄를 드리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구약 식으로 말하면 하늘 지성소에서 금방울 소리가 계속 들리며, 여호와께 성결의 패를 붙이시고, 성결하고 흠과 점과 티가 없는 거룩한 자기 피로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그 효력이 영원함을 오늘도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는 기뻐하며 감사하며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 예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