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29:38-46 상번제(常燔祭) 2011. 4. 3

 

38 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39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 40 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와 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더할지며 41 한 어린 양은 저녁때에 드리되 아침에 한 것처럼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삼을지니 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43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44 내가 그 회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45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46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키신 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것이 원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올 마음이 없었습니다. 단지 고생만 면하면 살만하다고 여기고 4백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셔서 출애굽을 명하니 고난이 가중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벌을 내려달라고 합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언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편함에 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10가지 재앙을 쏟으시고 애굽에서 출애굽 시켜 내시는 이유는 언약의 신실함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으로 언약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내시고야 맙니다. 그러면 이렇게 출애굽 시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것이 불쌍해서 구원하여 내셨으니 이제는 자유인으로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 목적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인간의 구원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성경을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민중신학이니 해방신학이니 하는 내용들은 사회를 개혁하고 정치와 경제를 개혁 하여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보는 것을 진보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보수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성경을 봅니까?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신학의 입장은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은 신학의 문제보다 신학외적인 문화의 영향을 마치 성경의 신학인양 받아들인 것이 문제입니다. 미국의 자본주의와 세계패권주의가 마치 성경의 사상인양 대중 집회를 통하여 성조기를 휘날리며 기독교의 이름으로 집회하는 것을 보면 가관입니다. 이런 모습도 결국은 또 다른 인본주의입니다. 그런 모습을 오늘날 한기총의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출애굽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45-46절을 봅니다. “봉독”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기 위하여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하기 위함이 출애굽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기 위하여 무슨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뵙고는 죄인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 장치가 성막이며 제사장제도입니다.

 

38-41절입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양을 한 마리씩 번제로 드려야 합니다. 양만이 아니라 밀가루 기름을 더한 것과 포도주도 함께 드립니다. 밀가루로 드리는 것을 소제(素祭)라고 하고 포도주를 붓는 것은 전제(奠祭)라고 합니다. 이렇게 드려지는 제물들이 일상적인 양식들입니다. 이런 양식을 드림으로 먹고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일상적인 삶에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특정한 날과 절기에만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상번제입니다.

 

42-44절입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과 늘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늘 만나기 위하여 늘 거룩한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에 거룩하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기에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제사 드리는 그곳에서 만나주시고 하나님께서 임하심으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을 세워서 아침과 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리게 하시는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살기 위한 장치가 됩니다. 그런데 왜 번거롭게 매일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까? 일주일에 한번만 드리면 안 됩니까? 이런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인간은 죄인이라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죄를 일주일에 한번만 짓는 것 같으면 일주일에 한번만 제사를 드려도 되겠지만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기에 항상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제사를 드리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이런 속죄가 없이는 하나님과 함께 살기는커녕 죽을 수밖에 없기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 조치가 제사입니다. 그래서 제사로 언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제사의 법들을 받아 제사를 드렸는데도 거룩하신 하나님과 제대로 함께 거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편 50:1-6절을 봅니다. “봉독”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 까지 세상을 부르십니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십니다. 하나님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 광풍이 붑니다. 참으로 두려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소집하시는 이유는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기 위함입니다. 5절을 봅니다.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하나님의 성도는 제사로 언약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시는데 제사가 잘못 되었다고 하십니다.

 

7-13절을 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신다고 합니다. 왜 대적이 되시는가 하면 제물 때문이 아니랍니다.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다고 합니다. 상번제가 드려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네 집의 수소나 네 우리의 숫염소를 가져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는 모든 산들의 가축이 다 하나님의 것이며 산의 새들과 짐승도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가령 주려도 너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다 내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제사를 잘못 드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드리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엄청난 제물을 드리지만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며, 공의와 긍휼을 잊어버렸고, 귀찮아하고, 조건부로 드리고, 뇌물처럼 드리고, 눈가림식으로 드리는 온갖 죄악들이 제사에 다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제사를 늘 드리기는 하지만 그런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입에는 하나님의 율례를 전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17-20절에서 봅니다. “봉독” 말로는 언약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교훈을 미워서 뒤로 던져버리고 도둑과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료가 되고 입을 악에게 주고 혀로 거짓을 꾸미며 형제를 공박하고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잠잠하시니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합니까? 21절입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같은 줄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네 죄를 네 눈앞에 낱낱이 드러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를 찍으리니 건질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제사로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바른 제사는 14-15절과 23절을 보시면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제사를 드리게 하신 것이 이스라엘의 복입니다. 그런 제사를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사를 멸시하였습니다.

 

이런 말씀을 오늘날 적용한다고 하면서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이 성공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일 예배만이 아니라 모든 예배에 목숨을 걸라고 합니다. 그러나 최초로 믿음의 제사를 드린 아벨이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형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적용을 하려면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죽습니다. 구약의 모든 언약과 제사를 다 완성하신 자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18-21절입니다.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상번제를 드리시는 분이 지금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제사제도를 주셨지만 그들은 제사에 실패하였습니다. 시편 50편에서 보았습니다만 구약 전체를 통하여 보아도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도 우상으로 가득 채워 우상의 신전으로 만들었으며 제사는 제사장들의 이익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저주를 피하고 복을 받기 위하여 억지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게 무슨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모습입니까? 오늘날 이 땅의 예배가 마치 이런 모양은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실패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15:13절을 봅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이런 주의 일로 인하여 주변이 두려워 떱니다. 17-18절을 봅니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이것이 출애굽의 목적입니다. 오늘 우리가 애굽같은 이 세상에서 부름을 받은 목적도 이와 같습니다. 이제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구약에서 모형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온전하지 못합니다. 온전하게 완성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온전하게 주의 백성을 만들어 내십니다. 그 사건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그리스도의 영을 자기 백성들에게 부어주십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거처를 삼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그 사람이 성전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신데 그 성전에 붙어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지금도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제사로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늘 살아계셔서 상번제를 드리고 계시기에 온전하게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이런 성전이 다 완성되려면 복음이 땅 끝가지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어 주의 백성이 다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됩니다. 이것이 이 땅의 역사의 종결입니다. 그 모습을 요한계시록 21:1-4절입니다. “봉독”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서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다시는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습니다. 이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은 지금도 상번제를 완벽하게 드리고 계시는 예수님 때문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성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