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0~45 모세가 명한 것 2018. 9. 23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내일이 추석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추석이 되면 좋겠습니까? 요즈음 명절을 없애자는 말들도 많이 나옵니다. 사람들마다 원하는 추석이 다 다를 것입니다. 아이들은 용돈을 많이 받는 것을 좋아할 겁니다. 아직도 가족과 전통을 말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명절이 있어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추석이라서 집으로 갔든지, 주일이라고 교회로 왔든지 간에 우리의 원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원함이 어느 정도로 간절합니까? 나병이 든 사람만큼 간절한 원함이 있을까요?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나병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겁을 주는 이야기가 나병환자가 어떻게 한다는 말들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소록도가 나병환자 수용소로 유명합니다. 시나 소설이나 다큐멘터리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최근에 지상파 공익광고에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들은 40년을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를 위하여 봉사하였습니다. 지금은 나병이라고 하지 않고 한센인이라고 합니다만 성경에서 이 병을 봅니다.

 

레위기 13:45~46절입니다. “45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46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레위기 13장과 14장은 각종 피부병과 함께 나병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병을 진단하는 것과 나병이 나은 것을 정하는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 나병이라고 진단을 내리면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고 외쳐야 합니다. 전염성이 있기에 자신에게 접촉하지 못하게 해야 할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부정하기에 격리되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유대사회에서 나병이 든다는 것은 사회적 격리만 아니라 종교적 격리도 일어납니다. 다른 민족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병은 천형(天刑)이라고 합니다. 몸의 지체들이 뭉개지고 떨어져 나가는데도 고통은 없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전염성이 있기에 이런 질병에 걸리면 가족은 물론이며 어떤 모임에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나병이 있을 동안은 늘 부정합니다. 이 사람이 앉은 곳도 부정하고 이 사람과 접촉하여도 부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본문 40절입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합니다. 나병환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병이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 간구하기를 주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원하지만 그것으로 안 되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만이 고쳐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여 나병은 오직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간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원하신다면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주실 수 있다고 간구합니다.

 

41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십니다. 불쌍히 여김을 받기를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불쌍히 여김을 받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자살까지 합니다. 이 정도로 인간은 자기 자존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병이 들면 그런 자존심을 더 이상 내세울 수 없습니다. 나병이 든 것 자체가 늘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는 그 어떤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주실 것이라고 하는 이 믿음 하나입니다. 물론 이런 믿음이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런 믿음은 주님이 원하시지 않으면 자신은 평생 나병으로 살다가 죽어가도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심이 그 사람에게 구원이 됩니다. 나병이 들지 않은 사람이 나병이 든 사람과 접촉하면 부정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나병환자의 부정함을 자신이 대신 짊어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에 흙으로 빗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장면이 연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만지시고 말씀하셔서 새롭게 합니다.

 

42~44절입니다.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계십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침을 받은 자를 곧 보내시면서 엄히 경고하시기를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잘못된 메시아 개념으로 예수님을 자기들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메시아로 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하지 말고 모세에게 명한 것을 하라고 하시면서 그 나병환자를 보냅니다.

 

본문 45절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44절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들려 그들에게 입증하라고 합니다. 자신이 나았음을 입증하라고 하는데 이 사람이 모세가 명한 것을 다 행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언급을 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주신 이야기를 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오니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모세에게 명한 것을 드리라고 했는데 그 내용들은 언급이 없을까요? 유대인들은 모세가 명한 나병환자의 정결규례를 알고 있기에 생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르니 봅시다.

 

레위기 14:1~9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3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4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5 제사장은 또 명령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6 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7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 8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영에 들어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이레를 머물 것이요 9 일곱째 날에 그는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예수님께서 깨끗함을 입은 나병환자에게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서 입증하라고 하셨는데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되었을 때에 하는 규례입니다. 나병이 나은 사람에게 정결한 새 두 마리를 잡아서 한 마리는 죽여서 그 피를 죽이지 않은 새와 나병환자에게 뿌린 후에 피 뿌림을 받은 새는 날려 보내게 합니다. 그리고 나병환자의 몸을 씻게 하고 몸의 모든 털을 다 밀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진영밖에 7일을 있다가 8일째에 또 다른 예식이 있습니다.

 

레위기 14:10~29절입니다. “봉독8일째는 상당한 양의 제물이 있기에 가난한 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로 해도 됩니다. 염소나 양이나 비둘기도 역시 피를 흘려 나병환자의 오른 쪽 귓불과 엄지발가락과 엄지손가락에 기름과 함께 바르게 합니다. 이러한 모세의 정결규례를 다 행하려면 일주일이 넘게 걸립니다. 그런데 이미 가고 오는 중에 소문이 다 난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명한 나병 환자의 정결규례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말도 없이 예수님의 소문만 났습니다. 이렇게 기록한 의도가 무엇일까요? 모세의 명한 규례들을 누가 성취하는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9:20~21절입니다. “20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것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고 21 제단 위의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

 

제사장 위임식의 모습입니다. 제사장에게 피를 바르는 곳이 나병환자가 피를 바르고 기름을 바는 것과 같은 곳입니다. 나병환자의 부정함을 제사장의 위임식과 겹쳐지게 합니다. 제사장의 오른 쪽 귓부리와 엄지발가락과 엄지손가락에 피를 바르듯이 나병환자에게 바름으로 제사장의 대신 희생으로 인하여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구약의 제사장들이 바른 피는 짐승의 피로서 사람의 죄를 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모든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자의 역할입니다.


신명기 18:15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모세가 말한 이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면서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이 다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신명기 18:15절을 인용합니다(7:37). 예수님은 모든 성경이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5:3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 마을로 실망하며 내려가는 제자에게 자신이 부활한 예수임을 바로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24:27). 그러므로 모세가 명한 것의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5절입니다.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도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제사장은 정하다 부정하다는 선언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장차 올 것의 그림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손을 대시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신 후에 제사장에게 보내면서 모세가 명한 것을 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명한 내용을 행하였다는 것은 하나도 기록이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모세가 명한 그 모든 것을 이루어 내시는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명한 율법의 규례 그 자체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예수님께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모세가 명한 것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나병 환자의 정결규례가 제사장의 위임식의 방식과 같습니다. 이러한 씻음과 피 바름과 기름 바름을 물과 피와 성령이 하나라고 합니다.

요한일서 5:5~9절입니다.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1)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임하신 것입니까?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합니다. 제사장이 물로 씻고 피를 바르는 것과 연결하여도 되고, 예수님의 물의 세례와 십자가의 세례로 말해도 됩니다. 여기에 나병환자가 물로 씻고 피를 바르고 기름을 바르는 방식이 제사장의 위임식과 같은 것을 보면 나병환자가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정결함을 받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물과 피와 성령으로 임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창에 허리를 상하셔서 물과 피를 쏟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온전한 사람으로 임하셔서 대신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거 하는 분이 성령이신데 구약에서는 기름부음으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명한 물로 씻고 피를 바르고 기름을 바르는 것이 제사장이 하는 것인데 나음을 입은 나병환자도 이렇게 하는 것은 그 모든 부정함이 제사장에게 전가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모아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와 성령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물과 피와 성령을 하나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예수님은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 다 이루심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면 자신이 전신이 나병환자임을 알게 됩니다. 부분적으로 나병임을 아는 것은 여전히 부정합니다. 그런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에 나병이 들었을 때에 제사장은 정하다고 해야 합니다(13:13). 만약 자신 안에 온전한 것이 십 퍼센트가 있다면 예수님을 십 퍼센트는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명한 궁극적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전히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성령의 역사로 자신이 부정한 자임을 알수록 기쁜 소식이 됩니다.